40만년전에 그린란드 얼음 통째로 녹았다… 폐쇄된 美 비밀기지의 경고
[박건형의 홀리테크] 지구 온난화 비밀 풀 ‘캠프 센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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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미국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 같은 얼음의 땅에 터널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옛 소련과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냉전 시대에 탐지가 어려운 그린란드의 북서부 빙상 속에 핵미사일을 숨기기 위한 이른바 ‘아이스웜 프로젝트(Project Iceworm)’였습니다. 당초 계획은 그린란드 북부를 가로지르는 총연장 3000㎞의 거대 터널 21개를 연결한 뒤 원자로를 설치하고 600개에 이르는 핵미사일을 배치해 언제든 옛 소련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캠프 센추리(Camp Century)로 불리는 이 거대 지하 기지 건설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남극과 달리 대륙이 아닌 북극의 거대한 빙상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움직인다는 것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를 보관하거나 원자로를 지어 기지에 동력을 공급하기에는 위험한 장소라는 것이죠. 결국 1966년 미국은 캠프 센추리를 폐쇄하고 터널이 무너지도록 내버려뒀습니다. 그런데 60년이 넘게 지난 현재, 이 기지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원이 남긴 마지막 유산이 지구온난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지가 폐쇄되기 전 무슨 일이 있었고, 연구원들은 무엇을 남겼을까요.
◇그린란드는 과거 툰드라였다
기지를 떠나기 전 미군 연구원들은 빙상에 4550피트(약 1386m) 깊이 구멍을 뚫어 바닥에 도달했습니다. 이어 12피트를 더 뚫어 얼어붙은 모래와 얼음, 자갈, 진흙 등으로 된 아이스 코어(빙핵) 샘플을 채취했습니다. 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에 따르면 이 샘플은 1970년대에 버펄로대로 옮겨졌고 1990년대에 덴마크로 옮겨져 냉동 보관됐습니다. 와이어드는 “2017년 코펜하겐대 냉동고의 병에서 이 샘플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후 이 코어는 미국으로 다시 옮겨졌습니다.
미국 버몬트대를 비롯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지난 21일(현지 시각)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논문에서 “캠프 센추리의 빙핵 샘플을 분석한 결과, 이 지역이 40만년 전 간빙기(interglacial period) 시대 얼음이 없는 툰드라였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얼어붙은 아이스 코어 샘플 속에서는 나뭇잎 화석과 벌레, 나뭇가지, 이끼 등이 들어 있는 퇴적층이 나타났는데 이는 오늘날 1.6㎞ 두께의 얼음이 있는 곳이 과거에는 땅이었다는 뜻입니다. 분석 결과 이 퇴적층은 얼음이 없는 환경에서 흐르는 물에 쓸려와 쌓이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거 과학자들은 그린란드의 얼음이 약 250만년 전에 형성돼 계속 현재처럼 얼어붙은 상태로 보존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지난 100만년 사이에 그린란드에 얼음이 녹거나 사라졌던 시기 이른바 ‘간빙기’가 있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MIS-11기’로 불리는 간빙기는 42만4000년~37만4000년 전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캠프 센추리 연구원들은 우연히도 정확히 이 시기의 증거를 수집했던 것이죠. 연구팀은 “그린란드에 과거에 어떤 생물이 있었는지 보여주는 타임캡슐이었다”고 했습니다.
◇40만년 전의 흔적
연구팀이 퇴적층의 연대를 측정한 방식은 ‘발광 연대측정 기술’입니다. 해당 샘플에는 유기물질이 포함돼 있었지만, 탄소 연대 측정을 시도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래되고 훼손돼 있었습니다. 실제로 연구팀이 작은 나뭇가지와 잎을 뽑아 측정했지만, 방사성 탄소의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연구팀은 대안으로 퇴적물에 묻힌 장석 조각의 방사성 동위원소의 발광을 이용했습니다. 햇빛에 노출된 광물의 발광 신호는 점차 줄어들지만, 얼음 아래 묻혀 태양광을 받지 못하면 다시 전자가 축적됩니다. 빛을 오래 보지 못할수록 더 많은 발광이 나타나는데, 이를 역산하면 장석이 마지막으로 햇빛을 본 것이 언제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해당 샘플이 41만6000년 전에 형성된 생태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추정했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을 예측할 수 있는 분석 결과도 나왔습니다.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죠. 연구팀은 40만년 전 그린란드 빙상이 녹으면서 현재보다 6~13m 높았던 간빙기 당시의 해수면 높이가 추가로 1.4m 상승했을 것으로 봤습니다. 현재 지구의 육지 상당수가 바다에 잠겨 있었다는 겁니다.
특히 현재 상황은 과거보다 더 심각합니다. 연구팀은 40만년 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약 280ppm으로 계산했는데, 현재는 442ppm에 이르고 빠르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의 온도 역시 지금의 지구 평균 기온보다는 낮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팀은 “우리는 이전에 그린란드의 얼음을 광범위하게 녹이고 툰드라 생태계를 만들었던 조건을 초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린란드를 비롯한 극지역에서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얼음이 녹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린란드의 얼음만 모두 녹는다고 가정해도 지구의 해수면은 7m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뉴욕, 마이애미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같은 바닷가 주요 도시 대부분에서 사람이 살 수 없게 되는 수준입니다.
◇과거는 미래에 대한 단서
뉴욕타임스는 “이번 연구는 지구온난화가 그린란드 같은 극지방의 빙상을 사라지게 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라며 “과거에 녹았던 빙상은 언제든 다시 녹을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연구를 이끈 폴 비어만 교수는 “과거의 자연을 보면 미래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면서 “대기에서 탄소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빠르게 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는 또 “미래를 두렵게 만드는 현상이지만, 우리는 도망칠 것이 아니라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했습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그린란드와 남극에서 더 많은 과거의 흔적을 확보해 분석할 계획입니다. 그 과정에서 과연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 지구적 위협에 대한 대응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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