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사회
[세상읽기]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차고 투명한 유리 같은 두려움이 팽팽한 조직은 굳어 있기 마련이다. 무의식이 말을 단속하고, 속 깊은 결핍은 이내 공격 성향으로 드러난다. 손쉽게 동원되는 자경 수단은 침묵이다. 외면은 얼마나 간편한가. 복잡한 일에 휩쓸리지 않으려 할 때는 탁월한 보호색이 된다.
두려움의 친한 벗은 규정 집착이다. 행여 발생할 수 있는 책임 추궁에서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 무난한 조직 생활을 위해서는 의자나 식탁 바라보듯 사람을 약간 사물처럼 대하는 편이 낫다. 괜한 애정이나 관심을 드러냈다가는 정서적 끈에 못 이겨 골치 아픈 사건에 휩쓸리기 쉽다.
위와 같은 인간 행동은 일반 행정체계나 기업 조직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그렇기에 경영학에서도 ‘스스럼없고, 위계를 벗어난 제안’을 강조한다. 달을 더 잘 관찰하기 위해 망원경의 성능을 개선하기보다는 달 탐사선을 발사하는 게 더 낫다는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은 혁신적 기업가들의 필수 덕목이 된 지 오래다.
침묵의 정서가 학교와 교실을 지배한다고 상상해보라. 교사는 아동학대 신고를 두려워한다. 예민한 아이에게 자칫 눈 흘김 한번 잘못 하면 신고당할 수 있다. 변호사를 앞세운 학부모가 교장실 소파에 버티고 앉아 있으면, 담임은 물론 교감이나 교장도 찻잔 든 두 손을 부르르 떨 수밖에 없다. 힘든 아이들을 초인적 사랑으로 품어 안는 것으로 유명한 한 대안학교 교장을 얼마 전 만났다. 그분은 “최근 휴대폰 ‘통화 녹음 어플’을 깔아 두었”노라고 암담한 표정으로 고백했다. 이제 학교에서 아이와 학부모, 교사가 서로의 대화나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게 일상이 됐다.
문자메시지 알림에 학부모 이름이 뜨면 교사는 가슴부터 덜컹 내려앉는다. 언젠가 한 학부모가 ‘담임교사와 소통이 너무 안된다’고 내게 호소해왔다. 양해를 얻어 그 교사의 통화기록을 살폈다. 25분, 37분, 19분. 낮밤을 가리지 않고 여러 날에 걸쳐 수차례 통화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학부모의 ‘소통 부재’ 호소는 교사가 자기 자녀 처지에서 사안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에게 ‘설명하려 들던’ 태도에 대한 불만 토로였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교사의 비극적 죽음 소식 이후 하루도 마음이 편치 않다. 이번 일은 학부모의 부당한 민원 제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교사의 부당한 행동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던 숱한 학부모들의 처지 역시 얼마든지 취합될 수 있다.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비난하는 ‘제로섬 게임’으로는 이번 사태를 냉철하게 바라보기 어렵다.
문제의 본질은 성적과 학력 높이기에 목숨을 건 듯한 공교육 체제에 도사리고 있다. 학교폭력 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고 결정한 순간부터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 기록은 ‘성적 산출’과 다름없어진다. ‘학폭’이 발생했을 때 학부모는 자녀의 불이익을 막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자원을 총동원할 수밖에 없다.
극심한 경쟁은 불평등 격차를 더 벌린다. 모든 이들의 눈이 서로를 감시하는 폐회로 카메라가 된다. 배려와 존중으로 서로를 보듬으며 살아가야 할 학교 구성원들의 마음에 불안과 공포가 자리한다. 학부모가 법률대리인을 앞세워 학교를 찾게 되는 배경이다. 교육청이나 교장, 교감은 이런 사회심리 변화에 익숙하지 않다. ‘시스템’이 함께 책임지고 풀어야 할 자리에 교사만 홀로 외롭게 남는다.
한 교육시민단체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고통과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학교’라 표현했다. 동의한다. 어쩌다 우리 사회는 학부모가 변호사를 찾고, 교사는 신경정신과로 달려가는 시대를 맞았는가?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한 결과 ‘다 함께 죽는 상황’이 빚어졌다. 더는 이대로 내버려둘 수 없다.
‘두려움 없는 조직’의 저자 에이미 에드먼슨은 “팀원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팀은 어떤 환경 아래서도 탁월한 성과를 낸다”고 진술한다. 그가 말한 ‘심리적 안정감’이란 인간관계의 위험으로부터 근무환경이 안전하다고 여기는 믿음을 뜻한다.
상식 밖 언행으로 교사를 위협하는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해 교육청은 법률대응팀을 구성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 교직 사회의 ‘심리적 안정감’을 확보한 연후에 어떻게 하면 학교문화를 덜 경쟁적으로 만들고, 학생들의 성장을 함께 도모할지 궁리하면 좋겠다. 최선을 다해 학교를 ‘교육적 환경’으로 되돌려놓는 일이 최고의 추모 행위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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