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도 무릎 꿇었다, 케네디 골프채 쟁취한 K수집왕
30년 모았다, 이랜드 컬렉션 50만점
1996년 뉴욕 소더비 경매장 '발칵'
이름도 생소한 한국의 패션기업이
미국 유력 정치인과 배우들 제치고
존 F 케네디 골프백 최종 낙찰받아
오드리 헵번 드레스·조던 운동화 등
매일 46개씩 30년 동안 모아온 셈
소장품 전시할 뮤지엄 건립 예정
1996년 5월, 미국 뉴욕의 소더비 경매장에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 등장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35대 대통령이 재임 시절 애용한 골프백과 골프채 2세트였다. 그의 손때가 묻은 애장품은 당대 미국의 유명 배우와 정계 인사 등이 앞다퉈 소장하길 원할 정도로 인기였다. 그런데 이변이 발생했다. 이름도 생소한 한국의 패션 기업 이랜드가 38만7500달러에 최종 낙찰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랜드의 ‘행운’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는지는 같은 날 나온 케네디 대통령의 또 다른 골프백이 누구에게로 갔는지 밝혀지면서 입증됐다. 이랜드가 가져간 것의 두 배에 달하는 77만2500달러에 주인이 정해졌다. 주인은 케네디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아널드 슈워제네거였다.
‘터미네이터’를 이긴 이랜드 경매팀
1990년대에 아시아의 낯선 기업이 미국 정계의 상징과도 같은 경매품을 가져갈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경매에 참여한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현지 문화에 대해 철저하게 사전 조사하고, 예상 경매가와 지급 가능한 한계 가격을 미리 정해두는 등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했다”며 “누구보다 빠른 정보 습득이 필요한 만큼 집착 수준의 관심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잉글랜드’를 모방해 사명을 지은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은 당시 어떤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일까. 언론을 비롯해 공개 장소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박 회장 스타일상 그의 생각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박 회장과 이랜드 임직원이 약 30년의 세월에 걸쳐 50만여 점에 달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물건’을 중단없이 꾸준히 수집해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의 꿈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세계 명품 기업들처럼 브랜드 히스토리와 산업의 역사를 잊지 않고 후대에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며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는 순간 발생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문화에 대한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30년의 세월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필생의 신념이었던 문화보국(文化保國: 문화로 나라를 지킨다)을 이랜드 임직원이 대중문화 영역에서 실천에 옮긴 것이다.
존 레넌 슈트와 밥 딜런 하모니카도
이랜드가 보유한 소장품은 대중문화(음악, 영화), 스포츠, 현대사 등 크게 세 분야에 집중돼 있다. 음악 분야 소장품으로는 △비틀스 멤버의 친필 사인 기타와 존 레넌이 입었던 슈트 △팝의 제왕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공연 재킷과 MTV 어워드 △포크록 창시자 밥 딜런의 하모니카 △엘비스 프레슬리의 누디콘 아이코닉 골드 수트 △테일러 스위프트의 실착 의상 △제1회 그래미 어워드 트로피(최초의 그래미 시상식 수상자 더 챔프의 트로피) 등이 있다.
영화 부문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메릴린 먼로가 입었던 의상 △오드리 헵번의 할리우드 데뷔작 ‘로마의 휴일’ 영화 의상이자 생애 최초 아카데미 어워즈 여우주연상 수상 때 입었던 지방시 럭키 드레스 △찰리 채플린의 상징인 중절모와 대나무 지팡이가 이랜드 컬렉션에 포함돼 있다.
스포츠 분야 컬렉션도 역대급이다.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첫 투구의 주인공인 사이 영의 보스턴 레드삭스 실착 저지 △베이브 루스의 500홈런 달성 경기 볼과 콜 샷 시즌 배트 △마이클 조던이 1986년 미국 NBA 플레이오프 한 경기 최다 득점(63포인트)을 기록했던 래리 버드와의 경기에 신고 나온 에어조던1 농구화 등이 조만간 전시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이랜드는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 등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휘호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생전 가장 사랑하며 평생 소장했던 보석으로 1968년 5월 16일 리처드 버턴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전한 다이아몬드,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영화 ‘시민 케인, 1941’의 연출·제작·주연을 도맡은 오선 웰스가 받은 아카데미 상은 해외 거물급 컬렉터들도 탐내는 물건이다.
50만 점 소장품 컬렉션, 조만간 한자리에
이랜드는 30년간 50만 점의 소장품을 모았다. 매일 46개 이상의 물품을 수집해야 달성할 수 있는 규모다. 박 회장은 지금도 해외 출장을 가면 플리마켓(벼룩시장)에 빠짐없이 들를 정도로 소장욕을 불태우고 있다.
이랜드는 현재 서울 여의도와 강원도 평창 켄싱턴호텔 라운지, 제주 이랜드뮤지엄, 인천 부평 수장고, 서울 답십리 패션샘플실 등에 흩어져 있는 50만 점의 컬렉션을 한데 모을 수 있는 공간을 물색 중이다. 서울 마곡 연구개발(R&D)센터가 이랜드뮤지엄의 유력 후보지다. 다만, 서울시 허가가 아직 남아 있다.
이랜드의 목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중문화 뮤지엄을 건립하는 것이다. 얼마 전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진행한 BTS 이벤트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랜드뮤지엄 사업본부 관계자는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면서 문화 예술 계통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증대되고 있다”며 “언제든지 찾아와 글로벌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 소통의 공간을 실현하는 것이 사업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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