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증상을 왜 남편에게 묻죠?…장애친화 병원 가봤더니

김윤주 2023. 7. 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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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당사자가 본 장애친화 산부인과
노수경 서울대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 코디네이터가 3일 이동식 전동 리프트 사용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장애인은 산부인과 한 번 가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정말 ‘큰 일’이 생기지 않으면 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서지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2014년 마지막으로 산부인과 치료를 받은 지 무려 9년만인 올해 자근근종(자궁 근육층에 생기는 종양) 발병으로 동네 의원과 종합병원 산부인과를 찾았다. 언어 장애가 있고 혼자 보행이나 일상생활이 어려운 뇌병변장애인인 그가 느끼는 불편함은 9년 전 산부인과 진료 때와 다르지 않았다. 우선, 병원 진료를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것부터 다른 사람의 조력이 필요했고, 병원에 가기 전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지도 알아봐야 했다. 병원에서 옷을 갈아입고 휠체어에서 산부인과 진찰대(진료 의자)로 이동하는 데도 조력이 필요한데, 의료진의 도움만으론 충분치 않아 활동지원사가 동행해줄 수 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근육 강직 때문에 진찰대에서 진료를 받기 위한 자세를 취하려면 누군가 양다리를 고정해줘야 하고, 체중을 재려면 휠체어에서 내려와 체중계에 기어 올라가야 한다. “병원에서 체중을 잴 때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싫었어요.”

최근 보건복지부 ‘장애친화 산부인과’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이런 불편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진료실이 문을 열고 있다. 복지부는 여성 장애인이 산부인과 진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설과 장비, 인력을 갖춘 의료기관에 시설 개보수 및 장비 비용과 인건비 등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2021년부터 전국 8개 시·도 10개 병원을 장애친화 산부인과로 지정했고, 그 중 시설 정비를 마친 전북 전주 예수병원, 경기 고양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이 올해 차례로 장애친화 산부인과 운영을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장애친화 진료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지난 3일 찾은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한쪽에는 ‘장애친화 진료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 산부인과 진료실까지 도착하기 쉽도록 산부인과 안팎 복도에 손잡이를 설치하고, 장애친화 진료실 앞 복도의 폭을 넓혔다. 장애친화 진료실에는 휠체어 전용 체중계, 이동식 전동 리프트, 특수휠체어 등을 구비해뒀다. 휠체어 전용 체중계를 이용하면 휠체어를 탄 채 체중을 잴 수 있다. 리프트는 환자를 휠체어에서 진찰대로 옮길 때 사용하는 장비다. 특수휠체어는 등받이를 탈부착할 수 있어 상반신 엑스레이 촬영 등에 사용한다. 이곳 산부인과 진찰대는 높낮이와 다리 각도가 자동으로 조절돼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한 자세를 쉽게 취할 수 있다. 이 병원 ‘장애친화 산부인과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는 노수경 간호사는 “진찰대에 올라가고 자세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중증장애인 등을 돕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 코디네이터는 장애인 환자가 진료를 예약할 때부터 수어통역 등 필요한 지원을 준비하고, 환자의 이동 등을 돕는다.

서지원 활동가는 장애친화 산부인과에 대해 치료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시설과 물리적 접근성보단 장애인을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짚었다. “병원에서 제게 직접 증상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항상 활동지원사 등 동행인에게 묻고, 설명도 동행인에게 하죠. 함께 간 남편에게 뜬금없이 ‘착하다’고 하거나, 제가 뭔가 말하려고 하면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끊는 일도 있고요.”

최근 찾은 병원으로부터 권유받은 시술 등에 대해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 그는 결국 ‘장애 감수성이 있는 의료진’이 있다고 생각하는 병원을 찾았다. 앞으로도 웬만한 증상이 있어도 장애친화 산부인과보단 이런 의료진이 있는 곳을 찾을 것 같다고 했다. 앞서 두 차례 종합병원에서 출산한 경험이 있는 그는 아이를 낳기 전에 의료진들로부터 임신중지를 할 것 아니냐는 식의 말을 듣기도 했다. 복지부 사업에 앞서 지자체별로 지정한 장애친화 산부인과에 대한 이용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이 2020년 펴낸 ‘장애친화 산부인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장애 특성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의사소통을 위해 비장애인을 동반할 것을 요청했다’, ‘의료진이 전동휠체어 작동법을 몰랐다’, ‘의료진이 뇌병변 장애인 응대 방식을 몰랐고,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등이 반응이 나왔다. 이런 문제는 복지부 사업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장애친화 진료실 앞에 마련된 휠체어 전용 체중계.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장애친화 산부인과 의료진은 진료를 시작하면서 장애인 환자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정태원 예수병원 산부인과 과장은 “산부인과는 재활의학과, 신경외과처럼 장애인 환자를 주로 보는 진료과가 아니다 보니 환자가 어떤 불편함을 겪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의료진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은 국립재활원 중앙장애인보건의료센터가 상시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을 받게 돼 있다. 박중신 서울대병원 진료부원장(산부인과 교수)은 “온라인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의료진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원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전문의도 “사업에 참여하는 의료진이 장애인 당사자로부터 교육을 받는 방식으로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의과대학에서부터 장애인 환자를 만나보는 경험 등을 통해 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좀 더 익힐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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