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자 칼럼] 휘둘리지 않고, 그냥 나로 살아남기

한겨레 2023. 7. 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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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칼럼]여름은 더워야 한다. 더위에는 더위의 맛이 있다. 아무리 더워도 시원한 그늘이 있고 바람이 부는 숲이 있다. 겨울엔 눈보라 치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다. 외투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던 때, 볕이 나면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놀던 유년의 기억이 있다. 손등이 터서 거북이 등처럼 돼도 불행감은 없었다. 이제 삼복더위 속,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이경자 | 소설가

1. 바보 되지 않기

어느 날 아파트 승강기를 탔더니 문 오른편 벽면에 끌 수 없는 화면 하나가 붙어 있었다. 아주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데, 찔끔 뉴스가 몇가닥 문장으로 나온다. 그걸 다 읽기도 전에 상품 광고가 줄줄이. 이건 아주 유익한 물건, 값도 싸다, 오로지 구매자의 이익만을 위한 것이다….

광고 문안이나 그걸 선전하는 낯익은 유명인의 설명을 대충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치솟는 게 가격인데 싸다니! 거기에다 품질도 좋고! 오로지 소비자만을 위한다니! 마음이 움직인다. 하지만 눈을 아래로 뜬다. 화면을 외면한다. 손해 보는 장사가 어디 있겠나. 광고나 선전이란 건 상품을 사도록 말과 행동으로 유혹하는 거 아닌가. 호객행위니까. 호객행위에 넘어가면 바보 되는 거지. 광고는 상품 정보가 아니잖아!

마음을 정리하고 승강기에서 내린다.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지나가는 버스 옆구리의 상품 광고. 시원하고 맛있다는 음료수, 기운이 번쩍 든다는 무엇무엇, 기타 등등 광고가 지나간다. 버스를 탄다. 운전기사님 자리 뒤편에 매달린 모니터. 재미와 상품 광고를 곁들인 화면들이 오락가락.

농수산물을 직거래한다는 대형마트에 왔다. 지나가는 곳마다, 심지어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내리는 그 사이에도 상품이 놓여 있고 벽면에도 광고님들!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켜면 기나긴 광고를 봐야 한다. 어떤 광고는 재미있고 심지어 예술작품 같기도 하지만 그런 건 아주 일부. 이런 것도 안 살래? 이걸 안 사면 혼날 줄 알아!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줘야 한다는, 그래서 한달에 단돈 1만~2만원도 안 낼래? 이렇게 짐짓,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광고도 있다.

2. 사람만 사나?

요즘은 좀 줄어든 것 같은데, 뉴스를 보다 보면 전쟁이란 말이 참 많이도 들렸다. 올해는 덥다, 더위와 전쟁! 춥다, 추위와 전쟁, 장마가 온단다, 장마와 전쟁, 폭설이 내린단다, 눈과의 전쟁 등등.

도대체 어떻게 자연과 전쟁을 한단 말인가! 사시사철, 이십사절기엔 자연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우리는 그 마음이 가진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 먹고사는 문제를 고려하며 적응해왔다. 어떻게 잘 적응할 수 있는지 그걸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들을 훌륭하다고 믿으며 지도자로 여겼다. 생물은 조건이 되면 생겨나고 살아간다. 그 생물엔 사람 목숨에 유익한 것도, 해로운 것도 있다. 유익한 것은 좋아하고 해로운 것은 미워한다. 미운 것을 없애야 하니 죽여야 하고, 그것이 나라나 민족 사이 문제가 되면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으로 이익을 얻는 쪽은 불행을 먹고 사는 다양한 종류의 업자뿐. 민족과 나라 사이에, 사랑의 매라는 것은 없을 테니.

어떤 곳에서 잠시 만난 적 있는 민족. 타고 가던 말이 말썽을 부렸다. 길가에 세워놓고 화냈다. 하지만 그 말이 받은 화, 그러니까 미움의 기운이 말의 심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가슴에 포근히 품어서 사랑과 존중의 감정을 전했다. 사람과 말 사이이건만 그 생명 존재에 대한 존중과 평등한 태도는 오래됐어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기본으로 가진 민족은 거의 도태되고 멸종 중.

여름은 더워야 한다. 더위에는 더위의 맛이 있다. 아무리 더워도 시원한 그늘이 있고 바람이 부는 숲이 있다. 겨울엔 눈보라 치고 매서운 추위가 닥친다. 외투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던 때, 볕이 나면 그곳에 쪼그리고 앉아 놀던 유년의 기억이 있다. 손등이 터서 거북이 등처럼 돼도 불행감은 없었다. 더위와 추위를 미워하지 않았다. 이제 삼복더위 속,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한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진다.

나는 모자와 겉옷을 들고 다닌다. 에어컨의 위세를 견디기 위해!

3. 다양성의 아름다움, 상호존중의 선량함을 원한다.

가끔 부자는 무슨 재미로 살까? 마음속으로 자문하거나 아는 이들에게 말해 본다. 그럼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냉큼 부자로 살아본 적 있어? 책망하듯, 아니 비웃듯 묻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코가 납작해진다. 부자의 삶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생활의 조건이나 환경으로는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이 생각이 없어지기는커녕 그렇다는 확신마저 든다. 이 생각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돈은 그 속성에 필연적으로 욕망이라는 연료가 필요하지 않을까? 욕망의 속도에서 균형 잡기는 어려울 것. 특히 나 같은 나약한 평화주의자에겐.

어쨌든 삶의 속도가 자기 생명력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균형이 깨질 것. 치솟은 욕망은 당연히 균형을 깬다. 균형이 깨진 한편에 저 가난한 직업군들, 모든 종류의 청소, 기초노동 종사자들의 좌절감을 두고 절대소수 부자는 평화로울 수 있을까? 상대적 열등감이나 박탈감은 그 반대편에 대한 잠재된 불행이며 혹은 공포일 수 있다. 모든 종류의 고독감과 공포감을 잊기에는 마약만한 것이 없다는 게 상식이 되는 세상은 지옥일 테니.

요즘 왜 자기 생긴 대로 살기 어려울까. 아니 생긴 대로 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돈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얼굴은 물론 몸매도 만들 수 있다.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장미라고 가정하자. 돈만 있으면 민들레도 장미가 될 수 있고 채송화도 장미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해보자. 장미만 있는 세상! 장미로만 가득한 세상!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미칠 것 같다.

과학의 발달은 사람을 저 달에도 가게 하고 화성에도 가게 한단다.

사람의 뇌를 대신할 것을 만들고 사람의 생각을 대신할 것을 만들어 결국 사람은 없어지고 가짜인간만이 존재해서 진짜 사람이 쓸모없어지는 세상. 이것이 과학이고 진보이며 발전인가?

사람다움이 쓰레기 처리되는 세상. 불행과 존재박탈감을 달래줄 새로운 약,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약이 불티나게 팔리는 세상이 올까 두렵다.

달리는 기차, 속도에 자지러진 생명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혼신을 다할 것이다. 그 노력이 어떤 모습일까. 증오의 도가니이거나 자연재해일 거라 상상하는 건, 제발, 생명 자체에 대한 모욕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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