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돌아온 작가들의 작가…"당신은 돌이 되는 법을 아시나요"

최지희/성수영 2023. 7. 27.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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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미술관
리움 김범 대규모 개인전
언론 노출 극도로 꺼리는 '미술계 괴짜'
뉴욕 등 전세계 큐레이터들이 '광팬'
영양이 치타를 사냥하는 '볼거리'
약육강식의 논리 재치있게 비틀어
대표작인 몸통이 불룩한 '임신한 망치'
사물에 생명력 불어넣어 새로운 것 탄생
세로 5m, 가로 3.5m 그림 '친숙한 고통'
관객이 미로 풀 때 작품 의미 비로소 완성
김범 작가의 개인전 ‘바위가 되는 법’ 전시 전경. 리움미술관 제공

‘작가들의 작가, 큐레이터들의 스타.’ 작가 김범(60) 앞에는 이런 수식어가 붙는다. 작가와 큐레이터 등 미술계 종사자 중 김 작가의 ‘광팬’이 많기 때문이다. 해외 미술계 인사들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클리블랜드 미술관, 홍콩 M+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작가다.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데다 워낙 작품 수가 적은 편이라 좀처럼 전시회를 열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 국내 전시가 13년 전이었을 정도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김범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는 소식에 미술계가 술렁인 건 이런 이유에서다. 전시를 탐탁지 않아 하는 작가를 리움이 적극 설득해 어렵게 전시를 성사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1990년대 초기작부터 2016년까지 그의 작품 70여 점이 나왔다. 작가의 개인전 중 최대 규모로, 김범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극히 드문 기회다.

 ‘극한의 I형 예술가’…오래 봐야 보인다

볼거리(2010)


김범은 재치있는 아이디어를 통해 고정관념을 뒤집고 현실을 풍자하는 개념미술가다. 지난 16일까지 리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벽에 테이프로 바나나를 붙인 작품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마우리치오 카텔란과 주제의식은 비슷하다.

하지만 성향과 작업 방식은 정반대다. 성격유형검사 ‘MBTI’로 치면 카텔란은 전형적인 외향적 인간(E), 김범은 내향적 인간(I)이다. 김성원 리움 부관장은 “카텔란이 아이디어를 과장해 강렬하게 전달하는 맥시멀리스트라면, 김범은 오랫동안 숙고한 아이디어를 최대한 간결하게 풀어내는 미니멀리스트”라고 했다. 또 “무심코 보면 김범의 작품은 평범하지만, 주의 깊게 관찰하고 오래 볼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전시장 초입에 있는 1분7초짜리 영상작품 ‘볼거리’가 단적인 예다. 치타가 영양을 추격하는 장면 같지만, 자세히 보면 영양이 치타를 사냥하고 있다. 실제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에서 따온 영상으로 만들었다. 이를 통해 김범은 우리가 약육강식의 논리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노란 비명 그리기(2012)


‘임신한 망치’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사물에도 생명력과 영혼이 있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망치의 손잡이 부분을 임산부의 배처럼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뭔가를 두드려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망치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크기가 세로 5m, 가로 3.5m에 육박하는 거대한 미로 그림 ‘친숙한 고통’은 관객이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고 감상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김 부관장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난관을 미로로 은유하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작품”이라며 “관객이 미로를 풀 때 작품의 의미가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미술관에서 갑자기 비명이?

임신한 망치(1995)


전시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2012년 제작한 영상작품인 ‘노란 비명 그리기’다. 상영 공간에 들어가기 전부터 웬 “으아아악!” 하는 비명 들리기 때문이다. 작품 속 남자는 노란색 물감에 여러 색을 섞어 가며 다양한 종류의 노란색을 만드는데, 이를 캔버스에 칠할 때마다 비명을 내지른다. 어두운 노란색엔 낮은 톤으로, 밝은 노란색엔 높은 톤으로 ‘으악’ 소리를 지르는 등 색깔마다 비명이 다르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개념을 표현하려는 예술가의 애환을 드러냈다.

위층 전시장에서는 종이를 접어 가위로 사람의 모습을 오려낸 ‘무제’가 눈에 띈다. 수많은 사람의 무늬들이 마치 살기 위해 서로 손을 맞잡고 매달린 듯한 느낌을 준다. 돌 등 무생물에게 뭔가를 학습시키려 시도하는, 일종의 부조리극을 담은 설치작품들도 인상적이다. 돌에게 정지용의 시를 읽어주고 설명하는 영상작품 ‘정지용의 시를 배운 돌’이 단적인 예다.

김범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는 깊이 있으면서도 위트 넘치는 사유가 담겨 있다. 누구나 주의 깊게 관찰하고 생각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김범의 재치 넘치는 작품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전시는 오는 12월 3일까지.

최지희/성수영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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