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장도리'의 완성은 70%가 대본 29%가 감독, 내 몫은 1%" [인터뷰M]
류승완 감독의 신작 '밀수'에서 역대급 킹 받는 캐릭터 '장도리'를 연기한 박정민을 만났다. 박정민은 카리스마 있는 '춘자'와 '진숙' 사이에서 찍 소리 한 번 못해보고 막내 역할에 충실해온 '장도리'로 잠시 이들의 밀수판에 공백이 생기자 자신도 한번 인생을 바꿔볼 수 있겠다는 야망을 갖게 된 인물을 연기했다.
박정민은 데뷔작 '파수꾼'부터 '동주' '그것만이 내 세상'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의 영화에서 온몸을 던져 캐릭터에 몰입하며 파격적인 변신을 해 왔다. 하지만 이번 '밀수'에서의 박정민은 기존에 보지 못했던 또 새로운 모습, 새로운 연기를 보였다. 김혜수의 말을 빌리자면 "박정민의 앞으로의 연기는 '장도리'를 넘어서느냐 아니냐가 관건"일 정도로 호평받는 연기를 했다.
류승완 감독의 오랜 팬이었다는 박정민은 "그런 감독님이 저에게 중요하고 좋은 역할을 주신 것부터 특별했다. 그래서 너무 잘 하고 싶어서 현장에 덜덜 떨면서 갔는데 현장이 너무 즐겁고 편했다. 감독님, 김혜수, 염정아가 현장을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애정이 많이 가는 영화다. 신경도 많이 쓴 작품이고, 어떻게 나왔을지 궁금하고 잘 되길 바라는 영화"라며 '밀수'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박정민이 연기한 '장도리'에 대해 그는 "눈앞의 이익만 쫓고 사는 인물이다. 훈육이나 조언을 받지 못하고 떠돌며 살다가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에 이미 자란 어른이다. 그때그때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만 쫓던 사람이라 생각해서 연기할 때도 상황에 맞춰 선택이나 말투를 많이 고민했다."라며 캐릭터를 설명했다.
악역이지만 전형적인 악역과 달랐던 캐릭터를 만들어 낸 박정민은 "악역이니까 나쁜 놈 연기를 하기보다는 자꾸 어긋난 선택을 하며 자연스럽게 나빠져버린 사람으로 빌드 업했다. 지질함과 지능이 모자라 보이는 디테일이 있는 인물. 머리도 나쁘고 바보 같은 애가 사리사욕에 심취해 나쁜 선택을 하다 보니 보는 사람은 열받을 수밖에 없고, 이런 사람이 의도한 대로 일이 풀려가니까 더 열받게 되는, 그렇게 연기했다."라며 연기하며 신경 쓴 부분을 이야기했다.
'장도리'를 완성하기 위해 처음에는 벌크업을 하려고 했다는 그는 "몸을 만들기 전 살크업 되어 있는 걸 감독님이 보시더니 그냥 이대로 나와보는 건 어떠냐고 하시더라. 그래서 살찌운 그대로 운동을 중단했다."라며 10kg이나 증량해 지금껏 보지 못한 통통하고 탐욕스러운 비주얼을 만들어 낸 비결을 밝혔다.
킹 받게 하는 '장도리'의 디테일은 어떻게 만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제가 만든 건 거의 없고 70%가 시나리오에 있었고 29%는 감독님이, 잘 찾아보면 제가 만든 게 1% 정도 있다."라고 겸손하게 답을 했다. "감독님께서 본인이 잘 아는 고향 아저씨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라고 하시면서 그분이 어떻게 걷는지, 어떤 제스처를 하는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많이 이야기해 주셨다. 감독님이 너무 잘 아는 캐릭터라 디렉션을 많이 주는 거지 제가 연기를 못해서 그런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라며 캐릭터에 얽힌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감독님이 만들어 준 장면이 굉장히 많다며 그는 "대본 리딩을 할 때도 '손 안 넣었다고'라는 제 대사를 '손 안 넣었었었는데'라고 하라시더라. 호텔에서의 액션신도 저는 어떻게 연기해야 '권상사'가 더 열이 받을지 모르겠던데 그때 감독님이 '혀를 날름거려봐라'라고 하셨고, 배에 나무판을 대는 장면도 원래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하는 건 대본에 없던 건데 한번 해보라고 해서 나온 장면이다."라며 강렬했던 장면이 류 감독의 아이디어로 나왔음을 이야기했다.
그런 연기가 박정민에게 아주 큰 깨달음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를 추구해왔던 박정민은 "만화적인 액션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극박한 액션 한 가운에 데서 그런 표정과 동작을 한다는 게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것만 좋은 연기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연기도 충분히 납득된다는 걸 그 신 찍으면서 깨달았다."라는 말을 해 앞으로 박정민의 연기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하게 했다.
호텔 액션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영화 중반 이후 엄청난 긴장감을 안긴 조인성과의 액션에 대해 질문했다. 전반부 여성 중심의 해양 액션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텐션을 가진 액션에 대해 박정민은 "대본을 볼 때부터 그 장면이 좋았다. 대본에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라는 곡이 깔린다고 쓰여있어서 노래를 찾아 들어보니 너무 리드미컬하고 세련된 반주가 나오는데 흥분이 되더라. 그래서 그 신을 찍을 때 더 리듬감 있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흐르는 연기가 아닌 딱딱 찍고 갈 수 있게, 예를 들어 문 앞에서 입을 쫙 벌리고, 얼굴을 탁 털고 들어가는 식으로 더 강하고 힘 있게 연기해서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이 다 같이 심장이 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기했다."라며 색다른 텐션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었던 비결을 밝혔다.
이 장면에서 조인성과 함께 연기하며 조인성이 새삼스럽게 멋지게 보이는 효과를 얻었다. 박정민은 "현장에서도 다들 모니터를 보면서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조인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어? 이게 뭐지?' 하는 반응이 나왔다"라고 전해 웃음을 안겼다.
영화 후반부 박정민이 중심이 되는 롱테이크 액션신도 눈길을 사로잡는 주요 장면 중 하나다. 이틀 동안 찍었다는 그 신에 대해 "미리 액션스쿨에서 합을 짜서 찍은 게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 간 장면이었다. 너무 많은 남자들이 서로 몸을 섞으면서 싸우는데 체력적으로 힘들고 무서웠다. 두세 테이크 가고 나니 힘들어서 소파를 못 들겠더라. 내가 나이를 먹었나 싶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오랜 팬이었던 류승완 감독과 작업을 해 보니 어떻더냐는 질문에 그는 "더 팬이 될 수밖에 없더라. 감독으로의 역할뿐 아니라 배우 생활, 앞으로 영화를 계속할 사람으로서의 시선이나 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팬을 넘어선 인생에서 의지할 분으로 자리 잡았다."라며 류승완 감독을 이야기했다.
박정민은 "제 마음가짐이 바뀌었다. 감독님들이 그 어떤 것도 허투루 하는 게 없으니 저도 방심하면 안 되겠더라. 내 마음가짐에 따라 신이 바뀐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신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예 내가 보이지 않는 신으로 만들어지는데, 내가 준비를 조금이라도 해가면 그 신에서 어떤 역할이든 하고, 그 신이 더 풍성해지더라. 중요하지 않은 신은 없었다. 100을 120으로 만들어주는 배우의 준비 자세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게 해줬다."라며 좋은 감독과의 작업 후 얻게 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 '밀수'는 7월 26일 개봉했다.
iMBC 김경희 | 사진제공 샘컴퍼니,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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