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덕 칼럼] 슬럼프 與, 8·15가 ‘요변(窯變)’ 타이밍이다
與 위기 체감 못해 총선 낙관 어려워
변화 선언해 실적과 ‘감성’ 신경 써야
보수중도연대, 주요인물 총동원 필요
물이 비등점에 가까워지기 전에는 뜨거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동물들이 있다. 요즘 여유를 부리는 여권의 풍경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밑바닥까지 추락하지 않아서인지 여권 인사들은 아직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여당의 일부 인사들은 “내년 4월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부와 여당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많다”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과연 근거 있는 자신감일까.
7~8년 전 상황을 복기해본다. 2016년 4·13 총선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보수 정치 세력 몰락을 가져왔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123석)보다도 1석 적은 122석을 얻어 참패했기 때문이다. 한국갤럽이 4·13 총선을 8개월여 앞둔 2015년 7월 5주차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직무 수행 지지율은 34%였다. 새누리당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은 각각 40%, 22%를 기록했다.
요즘 지지율은 어떤가. 한국갤럽이 7월 18~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 지지율은 33%였다.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은 각각 33%, 30%로 나왔다. 조원씨앤아이가 7월 22~23일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34.2%로 민주당(45%)보다 크게 뒤처졌다. 집권 2년차인 윤 대통령과 집권 3년차였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 차이는 크지 않다. 그러나 여당의 최근 지지율은 8년 전의 고공행진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아 위험 수위에 있다.
여권의 지지율 약세는 경제 침체와 정치 실종, ‘보수·중도 연대’ 균열, 수해 참사를 비롯한 각종 사건·사고가 중첩된 결과다. 거대 야당이 입법 폭주와 괴담 유포 등으로 국정 발목 잡기를 해왔지만 국정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과 집권당에 있다. 그런데도 여당과 대통령실은 매사 책임을 전(前) 정권과 야당 탓으로 돌려왔다. 여당의 안이한 자세와 무기력, 대통령실의 취약한 대응 능력 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은 이른바 ‘신(新)적폐’ 청산에 앞장서왔다. 문재인 정권이 밀어붙여온 포퓰리즘과 좌파 정책을 막고 부수는 데 주력해 일부 성과를 거뒀다. 윤 정권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자유·공정 가치 실현’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 등의 구호를 외쳤으나 가시적 실적은 미미했다.
이대로 가면 내년 4·10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 체제가 계속될 것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제1당 자리를 놓고 혼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윤 정부가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집권 2기의 안정적 국정 운영과 3대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여당이 흔들리는 ‘스윙보터(부동층)’의 마음을 얻고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면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총선 직전인 올해 말 이후에 변신을 시도한다면 유권자들은 “선거용 쇼”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정 바뀐 모습을 보여주려면 올해 8·15 광복절을 계기로 변화의 길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도자기 전문가들은 이를 ‘요변(窯變)’이라고 한다. 도자기를 구울 때 불을 조절하는 방법 등으로 가마 속에서 변화가 생겨 도자기의 빛깔이나 모양이 희귀하고 오묘하게 변하는 것을 뜻한다. 한 전문가는 “요변을 통해 하나밖에 없는 명품이 탄생한다”고 했다.
윤 정권이 요변을 시도해야 할 때다. 물론 신적폐 청산과 헌법가치 수호 등 정체성 확립 과제는 계속 수행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경제 침체 극복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성과, 대화·타협의 정치와 국민 통합 추구 등 정치 복원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그래야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대선 때처럼 보수·중도 연대를 복원하려면 일부 분열 세력을 제외한 당 안팎의 모든 인물들을 총동원해야 한다. 김영삼 정권은 1996년 총선을 앞두고 대중적 지지가 높은 이회창·박찬종과 일부 진보 인사들까지 영입했다.
이번에는 당내의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행정부의 원희룡·한동훈 장관뿐 아니라 당 바깥 거물들의 힘과 지혜를 모두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2016년 총선 당시 여당의 ‘진박 공천’과 당내 분열 증폭으로 참패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정치는 이성을 넘어 감성까지 잡아야 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직구’만 던져온 윤 대통령이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면서 국민들에게 감동을 줘야 여권이 슬럼프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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