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대규모 예금인출 시 새마을금고 등에도 유동성 지원
적격담보 범위도 지방채·우량채로 확대…대출 채권 포함 여부 추진 중
(시사저널=김은정 디지털팀 기자)
한국은행은 새마을금고를 비롯한 농협·수협·신협·상호저축은행 등의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이 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길 경우 신속히 나서서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 은행이 대출이나 차액 결제 거래를 위해 한국은행(한은)에 맡기는 담보 증권의 범위를 공공기관이 발행하는 채권을 비롯해 은행채·지방채·우량 회사채 등으로 확대하고, 향후에는 대출 채권도 추가하는 안을 추진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부각된 대규모 예금인출 확산 가능성에 대비하고자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출 제도 개편안'을 의결했다고 27일 밝혔다.
현행 한은 대출 제도는 주요국에 비해 은행에 허용하는 담보증권 범위가 넓지 않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따라 대규모 예금인출 시, 일시적으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예금취급기관을 지원하는 데 있어 한계에 부딪혀 대책을 수립했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아울러 한은법상 금융기관 범위가 은행(및 은행지주회사)으로만 한정된 데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한 한은법 제80조의 요건도 엄격한 편이라, 이들 기관은 자금 조달 과정에서 큰 차질이 발생해도 신속한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다.
한은은 우선 상호저축은행과 신협·농협·수협·산림조합·새마을금고 등의 비은행 예금취급기관이 자금 조달에 문제가 발생하거나 발생 가능성이 높은 경우, 한은법 제80조에 근거해 이들 기관의 중앙회에 유동성을 공급할지 여부를 최대한 신속히 결정하기로 했다. 또한 비은행 예금취급기관 중앙회에 대출을 해 줄 때는 은행(자금조정 대출)에 준하는 적격담보 범위를 적용하기로 했다.
홍경식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지난해 흥국생명 사태,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은행들이 자금조달을 해왔는데, 그런 상황을 넘어서는 어려움이 있을 경우, 중앙은행이 보다 신속하게 유동성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제도 개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런 개편안을 둘러싸고 도덕적 해이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건전성 문제가 있는 기관을 지원하겠다는 게 아니라, 불안 심리가 확산해 시장 혼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겠다는 차원"이라며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규제·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한은은 이번 개편안을 통해 기존 '상시 대출제도(Standing Lending Facility')인 자금조정 대출의 적용 금리, 적격담보 범위, 최대 만기 등을 조정해 중앙은행 대출 제도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기로 했다.
먼저 현재 '기준 금리+100bp(1bp=0.01%p)'인 대출 금리를 '기준 금리+50bp'로 대폭 낮추기로 했다. 여기에 앞으로는 은행의 적격담보 범위에는 9개 공공기관의 발행채, 은행채, 지방채,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우량 회사채가 추가로 포함된다. 이렇게 넓혀진 적격담보 범위는 일중당좌 대출, 차액결제 이행용 적격담보 증권 및 금융중개 지원 대출에 모두 동일하게 적용될 예정이다.
앞서 한은은 레고랜드 사태로 유동성 경색 우려가 커지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은행이 자금을 빌리고 맡기는 담보(적격담보 증권) 범위를 기존의 국채, 통안증권(통화안정증권), 정부 보증채 등 국공채에서 9개 공공기관의 발행채, 은행채 등으로 한시적으로 확대한 바 있다.
한은은 은행의 적격담보 범위에 대출 채권을 포함시킬지 여부는 약 1년간의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쳐 금통위에서 의결한 후 시행하기로 했다. 한은은 "예금취급기관은 (보통) 자산의 70∼80%를 대출 채권으로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를 활용할 경우, 필요시 중앙은행으로부터 충분한 유동성을 적기에 공급받을 수 있으며, 시장성 증권 투매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을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 채권을 비은행 예금취급 기관의 적격담보로도 인정할지 여부는 한은이 자료 제출 요구에 관한 제도적 여건이 갖춰진 이후 검토에 착수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존에는 대출 만기를 최대 1개월 범위 내에서 연장 가능했지만, 앞으로는 최장 3개월 범위 내에서 연장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홍 국장은 대규모 예금인출(뱅크런)의 우려가 더 큰 2금융권 아닌 일반 은행을 지원하는 이유에 대해 "한은법상 유일하게 은행만 금융기관으로 분류돼있어, 이번에 은행에 대한 자금 지원을 좀 더 용이하게 한 것"이라며 "2금융권이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을 하고 있기에 그들에게는 간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은은 지난 1998년 한은법 개정 이후 위기 때마다 한시적으로 담보 범위를 확대해 왔는데, 이번 개편을 통해 담보 범위가 더욱 커진 동시에 상시화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적격담보 대출 범위 확대로 한은은 자금조정 대출을 통해 총 90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은행에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비은행 예금취급기관도 은행에 준하는 넓혀진 적격담보 범위가 적용되면서, 이들 역시 유사시 금통위 의결을 거쳐 총 100조원까지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을 것으로 한은은 전망했다.
이번 대출 제도 개편안은 오는 31일부터 시행된다. 다만 지방채, 기타 공공기관 발행채 그리고 우량 회사채를 적격담보 범주에 포함하는 안은 오는 8월31일부터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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