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 확 풀어 기업형 벤처캐피털 키우자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은 일반적으로 대기업이 설립해 대주주로 있는 벤처캐피털을 말한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에 투자해서 재무적인 수익을 획득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열사와의 연계성을 고려해 전략적인 투자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기업이 투자기관인 벤처캐피털을 설립하고 소유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 금산분리 원칙 외에도 대기업이 유망 벤처기업 기술을 헐값에 사들일 수 있다는 우려와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벤처 투자 시장 분위기가 확장에서 축소 기조로 완전히 돌아섰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스타트업에 투자 혹한기가 닥친 것이다. 실제 지난해 국내 벤처 투자 시장은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대기업들도 투자 심리가 위축돼 사내 유보금을 쌓아두는 것이 당연해졌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대기업 지주회사도 벤처캐피털을 소유하고 혁신 기업에 투자할 수 있게 허용해줬다.
물론 산업자본이 투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지만 국내 CVC 투자는 해외에 비하면 아직 미약한 실정이다. 2020년 기준 150조원에 달하는 벤처 투자 규모를 자랑하는 미국은 전체 벤처 투자에서 CVC가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5년 사이 30%에서 50%로 급성장했을 정도로 CVC 투자가 활발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23%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구글 벤처스, 인텔 캐피털, 세일즈포스 벤처스 등 세계 유수의 글로벌 기업이 설립한 CVC가 공격적으로 투자를 주도해 나가기 때문이다. 각 분야에서 막강한 노하우를 가진 글로벌 기업들은 혁신적 자원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끌어들이고 개방형 혁신을 하는 데 있어서 '투자'라는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성공 잠재력이 있는 기업을 먼저 발굴하려는 선의의 경쟁도 생겨난다. 또 투자받는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화 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 외에 모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유·무형 자산을 자연스레 습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업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이나 경영 노하우, 네트워크 등을 공유받기 때문이다. CVC를 매개로 해 기업 집단의 기술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CVC 육성을 통해 벤처 투자 수요 창출에 기여하고, 나아가 세계 투자 시장과 경제를 이끌어갈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CVC는 혁신 기업을 발굴하는 한편 민간 투자 활성화라는 현 정부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필요한 주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외 투자 비율 제한이나 펀드 결성 시 외부 자금 비율 제한 등 CVC 활성화를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정비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그래서 지난 24일 서울에서 개최된 CVC 얼라이언스 출범식은 뜻깊은 의미가 있다. 포스코기술투자, 효성벤처스,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 등 국내 주요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설립한 CVC가 서로 지혜와 힘을 모으기로 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CVC들의 투자 성공 사례가 많아지면 우리나라 CVC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나 국제적 영향력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기술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한 사회가 꾸준히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비결이다. 그런 의미에서 CVC는 사회 전체의 혁신을 활발하게 자극하는 훌륭한 촉매제나 다름없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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