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현수막' 제한하자는 지자체 vs 법 따르자는 정부…국회는 뒷짐만

이지현 기자 2023. 7. 2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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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오전 인천시 연수구에서 연수구청 관계자들이 시 조례위반 정당현수막을 강제 철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2일, 인천시가 횡단보도 교통 신호기에 걸린 정당 현수막을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현수막이지만, 인천시 조례를 어긴 현수막들입니다.

인천시가 최근 옥외광고물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마구잡이로 내걸린 정당 현수막에 보행자가 걸려 넘어져서 다치거나, 보기 안 좋다는 시민들 목소리가 컸기 때문입니다.

바뀐 조례는 ▲지정게시대에만 게시해야 하고 ▲지정게시대에 설치하는 개수도 선거구별 4개소 이내로 제한하며 ▲혐오와 비방하는 내용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2일부터 철거를 시작한 인천시는 어제(26일)까지 총 451개의 현수막을 철거했습니다. 인천시 조례에 어긋난 현수막을 정당들이 자진 철거한 경우도 포함된 수치입니다.

광주광역시도 인천시처럼 옥외광고물 관련 조례를 개정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광주시의 조례 개정안에는 ▲횡단보도, 버스정류장에서 30m 이내에 설치됐거나 ▲신호기·도로표지·가로등·가로수 등에 연결된 경우 ▲어린이·노인·장애인 보호구역에 설치된 경우 ▲도로변에 2m 높이 이하로 설치된 현수막을 정비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문구나 개인 인격을 비방할 목적의 명예훼손 문구는 표시하지 못 하게 하는 조항도 담겼습니다.

지자체의 이런 움직임은 더 확산할 전망입니다. 17개 시·도지사가 모인 시도지사협의회가 오늘(27일) 공동 결의문을 통해 아무런 규제 없이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도록 한 옥외광고물법 조항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행안부 “상위법 위반”…지자체에 제동



그런데 행정안전부가 지자체의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행안부는 인천시의 조례 개정과 관련해 지난달 대법원에 조례 무효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도 했죠. 조례의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당 현수막 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걷는 보행자들. 〈사진=이지현 기자〉

현행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정책과 정치 현안을 다루는 정당 현수막은 별도 신고나 허가 없이도 자유롭게 걸 수 있습니다. 정당명과 연락처, 설치업체 연락처 등을 표시하고, 현수막을 게시하는 기간(15일)을 표기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 법은 지난해 개정된 것입니다. 원래 정당 현수막도 일반 현수막과 똑같이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규제를 받아왔지만, 국회가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면서 지난해 법을 바꾼 거죠.

행안부는 현행법이 이런데, 지자체가 조례로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건 위법이라면서 대법원에 제소한 겁니다.

행안부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는 광주광역시에도 조례 개정안이 상위법에 어긋난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인천시는 이런 상황에서도 현수막 강제 철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천시 관계자는 “행안부의 대법원 제소와는 별개로 인천시 조례에 따라 현수막 강제 철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아직까지 현장에서 현수막 철거에 대해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경우는 없었다”면서도 “적극행정 면책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적극행정 면책은 공무원이 적극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위반 사항이 발생하더라도 공익성과 타당성이 인정되면 불이익을 주지 않는 제도입니다. 현수막을 철거하는 공무원들이 고소·고발당하거나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경우를 우려해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겁니다.

법 바꿔야 하는 국회는 뒷짐만



지자체와 행안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면 법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작 현수막을 규제 없이 내걸 수 있도록 법을 고쳤던 국회는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국회 앞에 내걸린 정당 현수막들. 〈사진=이지현 기자〉

국회도 문제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해 정당 현수막을 규제 없이 걸 수 있도록 옥외광고물법을 개정할 때부터 문제 제기는 꾸준히 있었습니다.

당시 국회행정안전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소속 위원들은 정당 현수막이 마구잡이로 내걸려 도시 미관을 해치고 보행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으며, 다른 일반 현수막과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견은 반영되지 않은 채 개정안은 통과됐습니다.

결국 문제가 현실이 된 뒤 올해 3월부터 국회에서는 또다시 개정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정당 현수막 개수나 규격을 제한하자는 법이었죠.

관련 법이 지금까지 7개 발의되어 있지만, 아직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당들이 현수막 게시를 제한하는 법안을 적극적으로 논의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국회 행안위 관계자는 “아직 소위 심사가 진행되지 않아 법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크게 쟁점이 있는 법안은 아니어서 9월 정기국회 때는 논의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만, 일정에 따라 개정안 통과 시기는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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