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어반브레이크서 본 K아트의 미래
MZ컬렉터 열정은 여전해
또래 예술가 작품 구입해
가능성에 투자하고 밀어줘
미술시장 잔치는 끝난 줄 알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 거래액(811억원)이 지난해의 반 토막(56%)에 불과했다.
암담한 시장을 살려낼 희망의 불씨를 지난 13~16일 코엑스에서 열린 '어반브레이크'에서 봤다. 20·30 MZ세대들이 대거 몰려와 미술품을 구입했다. 취향을 저격한 그라피티 등 스트리트아트와 팝아트, 아트토이, 힙합, 웹툰 등을 펼친 예술축제에서 그들은 진지한 컬렉터(수집가)가 됐다. 특히 1992년생 다다즈(DADAZ), 2000년생 빈룸(Binroom) 등 또래 작가들의 작품에 지갑을 열었다. 동시대를 사는 작가들의 예술에 교감하고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훗날 유명 작가가 된다면 재테크에도 성공해 일종의 동반 성장이 가능해진다.
젊은 관람객들은 그들의 스타가 열광하는 예술가의 작품에도 마음을 활짝 열었다. 방탄소년단(BTS) 멤버들이 구입한 카우스(KAWS) 특별전과 김우진 사슴 조각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인공지능(AI)과 대체불가토큰(NFT) 등 디지털 예술에 대한 관심도 뜨거웠다. 어반브레이크 현장을 방문한 유인촌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은 "새로운 미술시장을 열어가는 출입문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MZ 컬렉터들의 열정을 확인한 어반브레이크는 나흘간 총관람객 6만1200명으로 지난해 5만명보다 늘었다. 미술시장 불황에도 젊은 컬렉터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크리스티 경매의 구매 고객 중 31%가 신규 고객이었고 그중 38%가 밀레니얼 및 그 이하 연령층이었다. 회색빛 추상화로 미국 사회를 담아내는 재미교포 작가 애나 박(29), 밝은 색채로 환상적인 세계를 그리는 미국 작가 세라 휴스(42), 젊은 세대 방황을 표출하는 쿠바 출신 에르난 바스(45) 등 개성 넘치는 작가들이 그들의 주요 타깃이다.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하면서도 100만달러(약 12억원)를 넘지 않는 미술품들이 잘 팔린다. 서양 현대미술에만 관심이 그치지 않고 동양 고미술 작품 구매도 22%나 늘었다. 시대를 초월한 매력을 지닌 문화유산 수집 열망이 강해졌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지갑을 닫는데도 불구하고 MZ세대는 왜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일까. 재테크뿐만 아니라 심미안을 충족시키는 가치재이기 때문이다. 고상한 취미를 플렉스(Flex·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돈을 벌어 가치 있게 쓰고 싶은 젊은 세대들이 이건희 회장을 롤모델로 삼고 미술품을 수집하고 있다. 사회적 선순환에 대한 깨달음이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수백만 원짜리 한정판 운동화를 사던 플렉스가 미술품으로 옮겨온 것도 열풍의 한 원인이다. 과거 고가 미술품이 탈세 수단이 됐던 시절에는 세무조사가 두려워 소장품을 숨겼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랑하는 것을 즐긴다. 2007년 '묻지마 투자'로 미술 호황을 주도한 복부인들과 달리, 요즘 MZ세대는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가지고 체계적인 투자를 한다. 해외 갤러리와 미술관 동향을 수집하고 좋아하는 작가의 SNS를 폴로한다. 올해 상반기 국립현대미술관 방문객 중 20·30대 비율이 67%에 달할 정도로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작가들을 학습한다.
이들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작가들의 성장을 돕는 투자를 계속한다면 미술시장 미래가 밝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유입된 젊은 컬렉터들이 충성 고객으로 남게 하려면 시장의 노력도 필요하다.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사기만 하면 몇 배 올라 큰돈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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