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조민과 기소유예
죄가 있어도 검사 재량으로 기소하지 않는 게 기소유예(起訴猶豫)다. 한마디로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고 봐주는 거다. 물론 보기 힘들 만큼 딱하고 가련한 정상(情狀)을 참작(參酌)할 만한 사정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다면 입시비리 피의자인 조민 씨에게도 정상참작 사유가 있는지 한번 보자. 일단 기소유예 요건인 범행동기·수단·결과로 판단하면 용서가 힘들다. 7개 스펙을 조작해 가장 공정해야 할 입시의 근간을 무너뜨린 중대 범죄여서다. 광의의 피해자인 국민과 합의한 것도 아니고, 피해가 회복된 것도 없다. 다만 전과가 없고, 범죄에 연루된 가족을 한꺼번에 다 처벌하지 않는 사법 관행은 유리한 사정이다. 부모 모두 영어의 몸이거나 그렇게 될 개연성이 큰 상황에서 딸까지 기소하는 건 과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시험답안을 유출한 아버지는 물론 미성년자인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도 기소한 바 있다. 가장 큰 정상참작 사유인 반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조씨는 반성했나. 지난 2월 조씨는 "나는 떳떳하다.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며 일말의 뉘우침도 없이 너무도 당당했다. 그러더니 요사이 고려대·부산대 의전원 소송을 취하하는 등 자숙 모드로 확 돌아섰다. 최근까지 멸문지화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온 조국 씨 부부도 "자성한다"며 몸을 낮췄다. 이들이 갑작스레 왜 이러는지 알 사람은 다 안다. 다음달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일단 기소는 피하고 보자는 생각일 것이다.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검찰도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기소유예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건 직무유기다. 야당과 조국 지지자들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 쉬운 길을 찾는 듯하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조씨 동정론을 원천 차단하려는 정치공학적 판단하에 기소유예 꼼수를 쓴다면 이거야말로 국민 기망이다. 정치 검찰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태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개전의 정을 의심받는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는 건 법과 사회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공정하지도 않다.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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