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유방암 치료제, 韓환자에 도움 확신"
첨단 유방암약 '엔허투' 개발
10여년간 연구개발 뚝심
미국 암학회서 기립박수 받아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
한국서 하루빨리 보험 적용돼
더많은 환자 혜택 누리길 기대
지난해 8월 국회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신약을 "신속히 허가해 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해당 신약은 일본 제약사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유방암 신약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 청원은 단 1주일 만에 2만명의 동의를 얻었고 이후 5만명을 돌파하며 9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올해 초 엔허투는 또 한 번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했다. 건강보험급여 승인으로 약값 부담을 줄여 달라는 청원이 올라온 것. 이 청원은 닷새 만에 5만명이 뜻을 같이하며 화제를 모았다. 현재 엔허투는 보험 적용이 안 되고 있어 연간 약값 부담이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한국다이이찌산쿄의 창립 33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은 마나베 스나오 다이이찌산쿄 회장은 최근 서울 롯데호텔에서 진행한 매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내 엔허투의 승인에 대해 감사의 마음과 더불어 엔허투를 기다리는 많은 환자에게 우리의 결의를 전하고 싶다"며 엔허투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이이찌산쿄는 연 매출 1조엔 규모의 일본 4대 제약사로, 엔허투와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이 시장의 관심을 받으면서 올 들어 일본 제약사 중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마나베 회장은 "지난해 6월 미국 임상종양학회(ASCO)에서 엔허투의 유방암 임상 3상 결과를 발표해 20년 만에 기립박수를 받았다"며 "엔허투는 HER2(인간 표피 성장인자 수용체)가 과발현된 유방암 환자뿐 아니라 그간 항암화학요법 외 사용할 수 있는 약제가 없었던 HER2 저발현 환자를 대상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다이이찌산쿄는 유방암 외에도 기존의 항암화학요법으로 치료 효과가 좋지 않았던 HER2 양성 위암, 폐암, 대장암 분야에서도 ADC 연구를 진행 중이다.
엔허투는 다이이찌산쿄가 개발한 2세대 ADC다. ADC는 암세포 표면의 특정 표적 항원에 결합하는 '항체'와 세포 사멸 기능을 지닌 '약물(페이로드)'을 링커로 연결해 만든 바이오의약품이다. 약물이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해 치료 효과는 높이고 부작용을 줄일 수 있어 최근 항암제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특히 엔허투의 기반이 된 다이이찌산쿄의 ADC 기술은 링커와 페이로드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다. 다이이찌산쿄의 링커는 암세포에 ADC가 흡수된 이후 절단되기 때문에 약효를 보다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또 하나의 항체에 결합 가능한 페이로드가 3~4개에 불과한 타사의 ADC와 달리, 8개까지 결합할 수 있다는 점도 차별점으로 꼽힌다. 마나베 회장은 "다이이찌산쿄는 저분자 의약품 개발에 있어 우수한 기술적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어 자사만의 ADC 기술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엔허투는 한국에서 건강보험 적용 절차를 밟고 있다. 마나베 회장은 "아직 건강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들의 치료 부담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혁신적인 효과가 입증된 치료제이기 때문에 조속히 정부와 합의해 많은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엔허투와 자체 ADC 기술은 연구개발을 최우선으로 하는 다이이찌산쿄의 '뚝심'의 결과물이다. ADC 역시 최근에서야 결실을 봤지만 회사에서 연구를 시작한 건 10여 년 전부터다. 마나베 회장은 연구개발의 자율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다이이찌산쿄는 연구개발의 연구 주제 선정 시 상부 하달이 아닌 연구원 주도의 보텀업 방식을 중시한다"며 "2007년부터 회사 소속 연구원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R&D 평가 시스템을 통해 의사결정을 신속히 하고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꾸준한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다이이찌산쿄는 지난해 코로나19 mRNA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메르스(MERS) 발발 당시부터 mRNA 백신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온 결과 코로나19에도 발 빠르게 대응이 가능했다. 마나베 회장은 "자사 코로나19 mRNA 백신은 냉장 상태에서도 안정적으로 간편한 수송이 가능하다"며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1가 백신으로서 일본에서 조만간 승인이 예상되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2가 백신으로서도 최근 임상 3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나베 회장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위한 조건으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과 인력 양성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기업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며 "아울러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적절한 보상 체계 등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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