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문학에 선구적이던 종로서적, 여직원 역할은 ‘시중’으로 한정

김종목 기자 2023. 7. 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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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서울역사박물관 학술대회
서평 계간지에 ‘페미니스트’ 활동 부각
시대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한 시도
사내선 복장·언어 등 여성 신체규율 강조
서평 계간지이자 사보인 ‘종로서적’ 창간호(1978년 10월 가을호) 표지. 출처: ‘종로서적과 한국 현대 서점 문화사’ 학술대회 자료집

‘불꽃 같은 인생을 살다간 페미니스트, 나혜석’ ‘운동으로 문학으로 여성억압의 현실을 고발한 백신애’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임순득’. 종로서적이 동명의 서평 계간지이자 사보 1991년 가을호, 1992년 봄호, 겨울호의 ‘재조명/한국의 여성’이란 코너에 각각 실은 기사 제목이다.

정종현(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은 ‘계간 종로서적과 출판·서평·문화’에서 여성 작가들에 관한 관심을 잡지 ‘종로서적’의 기민한 시대 변화 반응의 근거로 꼽는다. “201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고조와 기존의 남성 중심 문학사를 비판하며 한국 근대 여성 문학자에 대한 새로운 조망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이 잡지의 시도는 선구적이라고 정종현은 평가한다. ‘종로서적’은 1992년 여름호부터는 ‘세계를 이끈 여성’이란 연재물을 신설한다.

‘종로서적’ 여성 연재 목록. 출처: ‘종로서적과 한국 현대 서점 문화사’ 학술대회 자료집

페미니즘이나 젠더 측면에서 주식회사 종로서적 운영이나 회사 안팎의 문화는 선구적이지 못했다. 여직원들은 “종로서적을 서울 대표 서점으로 만든 주역이자 서점문화의 상징적 존재” “ ‘움직이는 도서 목록’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뛰어난 업무 역량을 가진 전문 직업인”이면서도 “아름다운 유니폼을 입은 판매원” “한결같이 마음씨가 아리따운 처녀들”로 여겨졌다.

정종현은 성균관대 국문학과 BK21교육연구단과 서울역사박물관 주최로 지난 21일 열린 ‘종로서적과 한국 현대 서점 문화사’ 학술대회에서 이 글을 발표했다. 학술대회는 1949년 ‘종로서관’이란 이름으로 개점(예수교서회가 1907년 종로2가에 낸 서점을 시작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한 뒤 한국 서점 대명사로 이름을 떨친 종로서적의 문화사적 의미와 역사를 조명했다. 종로서적은 2002년 문을 닫았으나 2016년 같은 이름의 서점이 종로타워빌딩에 문을 열었다. 당시 장덕연 옛 종로서적 대표가 ‘종로서적 부활이라니?’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고 “(이 서점은) 종로서적과는 전혀 무관하다. 종로서적의 역사와 상징성을 이용해 시민들을 거짓으로 호도하는 짓을 그만두라”고 하는 바람에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향신문 1949년 3월 8일 자에 실린 종로서관 개점 광고.

여직원에 관한 문제는 박숙자(서강대 전인교육원 교수)가 ‘1970~80년대 서점의 문화사: 종로/서적의 지식과 노동’에서 젠더와 가부장, 노동과 신체 규율 문제를 짚으며 이어갔다.

종로서적은 초창기부터 복장예절, 행동예절, 언어예절, 전화예절 등 ‘사원’의 신체 규율을 강조했다. 사원들은 당시 ‘교양 강좌’ 명목으로 영어 회화, 꽃꽂이, 무용 등을 들었다. 박숙자는 “종로서적 노동조합이 결성된 다음 제일 먼저 (여성) 노동에 대한 법을 교양으로 익혔던 것과 비교해보면 노동자의 생활과 유리된 교양을 종로서적의 ‘교양’으로 안내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종로서적의 지식/노동을 둘러싼 이중 잣대이다. ‘엘리트 지식’/‘섬기는 노동’의 위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손님들께 시중들고 있습니다”. 1979년 판매 4과의 민진순이 요약한 자기 역할이다. 박숙자는 “ ‘시중’은 여성 사원의 역할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서비스’와 ‘예절’ 등을 ‘교양’으로 교육하지만 실제 역할은 ‘시중’이나 ‘심부름꾼’”이라고 말한다. 그는 “‘엘리트’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백화점에 준하는 예절이자 교양으로 여사원들의 역할을 ‘시중’ 정도로 교육한 것은 결과적으로 노동하는 여성 신체를 지워낸 것이다.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서적의 물신성이 결과적으로 여성 노동을 저당 잡아 가족 내 역할로 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종로서적 ‘사원교육과정’( 1995). 출처: ‘종로서적과 한국 현대 서점 문화사’ 학술대회 자료집

고객도 마찬가지였다. 종로서적을 ‘여인의 향기로 그득 찬’ 공간으로 비유했다. ‘전 매장이 봄 처녀 옷차림만큼이나 곱고 산뜻하게’ 같은 표현으로 공간을 묘사했다. “종로서적 내부의 장소성은 성차별적 위계가 공고”했다.

남녀 직원의 위계와 차별도 존재했다. 뒷짐을 진 채 서점을 돌아다니는, 나이 많은 남성 ‘책 도둑 감시자’는 여사원 월급의 2배를 받았다. 여성 고객들은 이 감시자에게 위압감을 느끼기도 했다.

박숙자는 “가부장제를 통해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온정주의적 태도”도 지적한다. 종로서적은 여사원들을 가족 내부의 성별화된 노동을 근간으로 소개했다. “여직원을 ‘딸’로 호명하며 결혼과 동시에 집밖의 사람으로 ‘외부화’ 했다. 또한 여사원의 위치를 ‘식구’로 부르면서 여사원들의 역할을 ‘심부름꾼’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가족주의 경영으로 그 차이를 무마했다.”

종로서적 노동조합은 1987년 결성된 이후 (여)직원들의 민주적 권리를 주장했다.

2009년 종로서적. 경향신문 자료사진

천정환(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종로서적을 통해 다시 보는 한국 현대 독서문화: 책을 사고팔고, 사랑하고, 훔치기’에서 “서점이라는 공간 혹은 기업을 통해 이뤄진 독서문화와 지성사”를 분석한다. 1960~80년대 독서문화와 독자층을 다루는 글에서 ‘책을 사서 읽는 소비자 혹은 고객으로서의 독자들’ ‘책 사랑과 독서열’ ‘책도둑 문화’를 살핀다.

여사원의 노동과 관련해 들여다볼 대목은 한 고객이 매대 위치 변경 때문에 책을 못 찾다가 “담당이 아니다”라는 여직원 때문에 기분을 “잡쳐버린” 경험을 잡지 ‘종로서적’ ‘손님의 발언’란에 기고한 것이다. 이 ‘분노한 고객’은 직원 명찰에 소속 부서도 기입하라고 건의했다. 천정환은 “이처럼 종로서적을 드나들던 고객들은 자신의 돈을 내고 상품을 골라 사는 ‘소비자-주체-의식’을 가진 존재이기도 했다. ‘소비자는 왕’ ‘손님은 왕’이라는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정언명령(?)은 본격적인 ‘근대화’의 초입인 1960년대 중반에 한국에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천정환은 종로서적 역사와 한국 서비스업 발전, 그에 얽힌 여성노동 문제를 ‘손님의 발언’에 보낸 ‘갑질 문화’ 지적 글에서 들여다본다. 석영애씨라는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 “예전부터 느껴운 문제점이 머리에 떠올랐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네도 즐겨 쓰게 된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었다. … 책방에 오는 손님들은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그들의 처지를 먼저 이해해 본 뒤에 그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일까?”

1970~1980년대에는 서점 경영에 지장을 줄 정도로 책도둑이 기승을 부렸다. 책도둑 문화는 초등학생에서부터 중고생, 재수생, 대학생에 이를 정도로 만연했다. 지금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언론인이 프로이트, 촘스키, 마르쿠제 책을 훔쳤다고 공개적으로 고백하기도 했다. “다른 것이 아닌 책을 훔침으로써 문명과 역사에 대한 안목을 넓히며 지식과 감성의 이종교배로 유전자를 개량할 수 있다”고 말한 소설가도 있다.

종로서적이 1995년 12월 5·18 특별법 제정 발표 이후 마련한 특별 판매 매대에서 시민들이 책을 읽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천정환은 “그들은 책도둑질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 근거는 자신들이 독서를 사랑하며 그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자기의식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회고’를 두고 “(1970-80년대 청소년·청년·대학생에게) 그것(책도둑)은 일종의 하위문화 또는 반문화였음을 짐작하게 한다”고도 했다.

종로서적은 한때 경영주 방침으로 책을 훔친 좀도둑에게 성경을 주고 타일러 보내기도 했다. 천정환은 “책에 대한 (역설적) 존중심과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동아시아적(?) 관념, 그리고 ‘고학’하는 청년·학생들에 대한 온정주의 등의 사회적 맥락이 존재했다” “책도둑이 ‘가난한 청년’이나 ‘독학자’일 거라는 가정도 작용했다”고 본다.

1973년 5월 대한성서공회 건물에 든 종로서적센터.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이용희(성균관대 강사)는 ‘종로서적과 개발연대 서점 산업 문화사’, 장문석(경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종로서적의 역사와 기독교’를 발표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학술대회 연계 전시인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을 2024년 3월17일까지 연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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