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 류승완 감독 "김혜수가 눈 뜨니 화면 밝아져" [인터뷰]
김혜수·염정아 향한 팬심
현장 모니터 화질이 지금만큼 좋진 않던 시절이 있었다. 어두운 밤, 화면 속 배우 김혜수가 내리깔고 있던 눈을 떴는데 류승완 감독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모니터 밝기가 순식간에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단다. 류 감독이 갖고 있는 연출부 시절의 기억이다. '밀수'는 두 사람의 재회를 성사시킨 작품이다.
류승완 감독은 2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밀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생기는 일들을 그린 영화다.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새롭지만 마냥 낯설진 않은 작품을 만드는 것은 많은 영화감독들의 숙제다. 류 감독에게도 그렇다. 그는 "좋게는 (대중의) 기대치, 부정적으로는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성공에 기대어 재탕하는 일만큼 위험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는 만큼 류 감독은 전작과 다른 영화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익숙한 매력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새로움으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 동시에 고민한다. 그런데 밸런스 조절이 어렵다"는 게 류 감독의 설명이다. 수중 액션은 그가 신선한 매력을 안길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번 해볼 만한 가치가 있겠다. 잘 하면 큰 의미가 생기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류 감독은 물속에서 펼치는 대결을 그려내면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물의 저항을 받게 되니까 지상에서 빠른 사람도 방법이 없을 수 있다. 물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몸이 슬로모션이 되기도 한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생소한 시도인 만큼 어려움도 있었다. 류 감독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그러다 수중 발레 코치를 하시는 분께서 들어오시면서 확 달라졌다. 물속에서 가능한 움직임, 시도해 볼 만한 움직임들을 해봤다"고 밝혔다. 수중발레 팀이 보여주는 동작들, 해녀들의 자문은 명장면의 탄생을 도왔다.
장기하 손잡은 류승완 감독
류 감독에게는 밀수에 대한 기억이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현대의 밀수와 과거의 밀수가 다른 듯하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지금은 개방돼 있어 해외 배송으로도 물건을 살 수 있다. 예전에는 통제돼 있었지만 잘 사는 집 가면 학용품, 가전제품이 일제였다. 바나나도 밀수품이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007 가방에 담겨 있는 밀수품들을 파는 모습을 보기도 했단다. 류 감독은 "남대문 시장 가면 그런 게 많았다. 부산에도 비슷한 시장이 있었다. 지역마다 밀수한 물건들을 팔았던 기억이 있어서 친숙하다"고 전했다. 당시의 기억이 자신을 '밀수'라는 작품으로 끌어당겼던 듯하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가수 장기하는 '밀수'를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해 그 시절에 대한 기억을 더욱 잘 떠올릴 수 있도록 도왔다. 큰 노력을 들여 작업에 임한 장기하는 "두 번 다시 영화 음악을 안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단다. 장기하와의 협업은 류 감독에게도 도전이었을 터다. 이와 관련해 류 감독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구성될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 부담이 덜했다. 밴드 음악 감성이면 좋겠다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장기하의 활약에 대한 만족감을 내비쳤다. 관객들 사이에서도 '밀수'의 음악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중이다.
김혜수·염정아 향한 팬심
김혜수 염정아와의 호흡은 류 감독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류 감독은 자신이 두 사람의 팬이라고 했다. 염정아를 좋아하는 마음은 1990년대에 방영된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을 본 후부터 시작됐다. 류 감독이 바라본 염정아는 힘을 많이 주지 않은 채 연기를 하지만 뚜렷한 각인을 남기는 배우다. 김혜수와는 조금 더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류 감독은 "연출부 시절 김혜수 선배와 일한 적이 있다. 당시엔 현장 장비들이 열악했다. 현장 모니터 화질이 안 좋았다. 밤에 클로즈업을 찍는데 선배가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들어 올리니 모니터 밝기가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놀랐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더라"고 말했다. 그는 '밀수'의 대본을 쓸 때부터 김혜수 염정아와 함께하길 원했다.
류 감독은 일할 때 고수하는 원칙이 있다. 자신이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는 "내가 경험한 대부분의 배우들은 인물에 대해 감독보다 많이 연구한다. 사람이 한계가 있지 않나. 내가 묘사하는 인물이 30명 정도 된다면 (분석이) 깊게 들어가지 못할 텐데 배우들은 맡은 역할이 하나다"라고 설명했다. 각종 행동, 설정들을 생각해온 배우들의 아이디어가 자신에게 감동을 안기곤 한단다. 특히 조, 단역의 제안에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배우들에게 열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기에 그가 지금처럼 관객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된 게 아닐까.
류승완 감독의 새 작품 '밀수'는 이날 개봉했다.
정한별 기자 onestar1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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