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재편, 일본이 주목받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러 국가와 대륙에 걸쳐 있는 공급망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소비자 입장에선 필요한 상품을 더 저렴하게 살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원거리 공급망은 여러 요인에 의해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단점도 있다.
장기간의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하고,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이 제품 생산 방식과 생산 거점을 재고하도록 강요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리스크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G7 정상들은 지난 5월 일본 히로시마에 모여 주요 광물, 반도체, 배터리 같은 핵심 상품에 대한 탄력적인 공급망 관리에 협력하기로 약속했다.
지금 당면한 문제는 단기적인 경제성 그 이상이다. 공급망 관리는 친환경 기술, 의약품, 인공지능, 반도체 등 사람들의 생활과 복지에 필수적인 산업 소재와 부품에 대한 접근성의 문제다.
이 때문에 공급망 투자의 효율성과 균형감을 고려할 때 정치적 안정성이나 법치주의, 널리 합의된 무역 규칙의 준수 등의 요소까지 중요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세계 공급망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국가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교육 수준이 높은 노동력과 R&D(연구개발) 분야의 강점, 우수한 제품 품질로 잘 알려졌다.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핵심 부품의 공급망에 일본을 포함하면서 일본에 대한 새로운 투자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본 정부의 탄탄한 지원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지난 6월 2030년까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업의 총매출을 15조엔(145조원)으로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 새로운 반도체 산업 성장 전략을 발표했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일본에 대한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기업 TSMC는 규슈 구마모토에 생산시설을 건설 중이며, 두 번째 공장 구축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는 지난 5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만난 뒤 일본에 5000억엔(약 4조8400억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첨단 반도체의 90%가 대만에서 공급되는 상황에서 주요 반도체 기업이 일본에 투자를 늘리는 것은 의미 있는 변화로 볼 수 있다. 많은 반도체 관련 기업이 일본 구마모토와 히로시마에 모여들고 있는데, 대학과 연구기관이 밀집해 있어 인재와 연구·개발 역량을 확보가 쉽기 때문이다.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미니쉬 바티아 글로벌운영총괄 부사장은 “마이크론은 일본의 반도체 생태계와 일본 정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히로시마에서 최첨단 1베타 DRAM을 생산하는 기술 고도화의 선도적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며 “이런 협력을 통해 글로벌 공급망을 강화한 것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미국의 반도체 산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가바시마 이쿠오 쿠마모토현 지사는 “구마모토현은 반도체 공급망의 탄력성 확보, 안정적인 반도체 전문 인력 육성, 반도체 혁신 생태계 구축이라는 세 가지 정책을 바탕으로 반도체 인프라에 대한 지원과 도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 시장에서 일본의 매력은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다수 기업이 정보 공급망의 핵심으로 데이터센터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 개인정보 관리를 포함한 지정학·보안 문제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데이터센터를 어디에 세우느냐가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 문제로 대두했다.
이 때문에 영국의 콜트 데이터센터서비스(DCS) 같은 주요 데이터센터기업은 아시아 지역의 허브를 구축하기 위해 일본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콜트 DCS는 오사카 인근 게이한나에서 최첨단 데이터 센터를 구축했다. 패드레이크 맥콜게인 콜트 DSC 부사장(아시아태평양지역 책임자)은 “연중무휴로 24시간 운영되는 데이터 센터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처리 가능한 숙련된 기술 인력의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며 “일본은 물리적 위치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뛰어난 네트워크 인프라, 고도로 숙련된 인력, 안정적인 정부 정책 등 데이터 센터 설립에 필요한 모든 요건을 충족한다”고 했다.
일본의 데이터 인프라는 점점 개선되고 있다. 일본 열도를 도는 새로운 해저 케이블이 설치되고, 북미를 연결하는 새로운 케이블을 건설 중이다. 이 해저 케이블 설치가 마무리되면 아시아와 미국을 연결하는 탁월한 데이터 허브가 될 전망이다.
세계 경제에서 글로벌 공급망과 데이터 인프라의 중심지로 주목받는 가운데 일본 정부와 민간 모두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디지털 기술 등 핵심 분야에 대한 각종 심사 절차를 간편하게 바꾸고, 보조금과 세액 공제를 제공하는 등 투자 유치를 촉진하고 있다.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역시 세계 각국 기업이 일본에 투자하고 일본 내 파트너와 연결되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이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꾀하는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효율적인 투자처로 일본을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민관과 공공의 공동의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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