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르네상스 역사…'피렌체 사람들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혁명은 특정 장소에서 시작한다. 우주의 기운 같은 특별한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야 위대한 도약을 이뤄낼 수 있는데, 일정한 부, 자유로운 분위기, 상상력 같은 것들이 한곳에 모여야 가능하다. 그런 곳은 세계사에서도 한 줌에 불과하다. 디지털 혁명이 발생한 미국 캘리포니아, 산업혁명의 진원지 영국 런던, 그리고 르네상스의 발판을 놓은 이탈리아 피렌체 같은 곳들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폴 스트래던이 쓴 '피렌체 사람들 이야기'(원제: The Florentines)는 르네상스를 일군 피렌체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논픽션이다. 단테부터 시작해 갈릴레이까지 열전 형식으로 인물과 시대의 흥망을 담았다.
서머셋몸상을 수상한 소설가답게 저자는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 재능을 발휘한다. 가문 간의 정략결혼과 경쟁, 황제당과 교황당으로 나눠진 피렌체의 정치 지형, 은행가의 대두, 그런 가운데 밑바닥부터 성장하는 천재들의 이야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인물은 단테였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18세 때 아버지마저 죽자 혼자 힘으로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갔다. 한때 정치가로서 성공했으나 패배 속에 오랜 유랑생활을 해야 했다. '신곡'은 그가 유랑기에 쓴 작품이다. 누구나 라틴어를 쓸 때, 그는 피렌체 토스카나 방언으로 글을 쓰며 위대한 시기의 시작을 알렸다. 그의 시는 현실, 상징, 알레고리, 신학이라는 네 차원에서 의미 작용을 하며 긴밀하게 연결되어서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졌다. '신곡'이 여전히 고전 중의 고전으로 추앙받는 이유다.
바통을 이어받은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도 단테처럼 피렌체 방언으로 글을 썼다. 단테가 하늘과 인간세계를 동시에 바라봤다면 보카치오와 페트라르카는 더한층 인간세계에 천착했다. 흑사병이 지나간 폐허를 응시하며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통해 무너져가는 사회의 타락상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페스트로 죽은 시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예절과 규범을 내팽개치고 방탕한 생활에 몸을 맡겼다. 어떤 이들은 알몸으로 거리를 뛰어다니며 몰상식한 행동에 빠져들기도 했다. 일종의 자포자기 속에 빠져든 삶의 추락을 보카치오는 재치 있지만 냉정한 문체 속에 담아냈다. 페트라르카는 도서관을 전전하던 중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서한집'을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키케로의 글은 언어의 순백한 아름다움과 자유의 정신, 공과 사의 구별을 유럽 대륙에 전도하는 계기가 됐으며 그의 글에 영향을 받은 페트라르카는 시를 통해 인본주의를 유럽 곳곳에 퍼뜨렸다.
브루넬레스키는 거의 1천년 만에 돔 양식을 부활시킨 주인공이었다. 돔을 만드는 방법은 로마 제국의 멸망과 더불어 유실됐기에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기베르티 같은 경쟁자들이 건축 기량을 뽐낼 때, "은밀한 성격"의 그는 피보나치가 남긴 '산술교본'과 '실용 기하학'을 탐독하면서 수학 능력을 키워나갔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으로 잘 알려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건축 공모에서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프레젠테이션으로 돔 건설을 따냈다. 그는 가장 먼저 원근법을 발견했고, 건축에 이를 적용했으며 가장 규모가 큰 돔을 성공적으로 건축했다.
그 외에도 저자는 명멸하는 수많은 인물을 그린다. 그저 그런 은행가 가문이었던 메디치 가문을 특유의 처세술과 조심스러운 태도로 탄탄한 반석에 올려놓은 조반니 메디치, 포악하지만 형세 판단이 좋았던 용병대장 호크우드, 밝은 눈으로 사물을 관찰하며 회화 예술을 한 단계 도약시킨 조토, 초월적 예술혼을 추구한 미켈란젤로, 곤란한 질문으로 교수를 난처하게 했던 갈릴레이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급변하는 시대 속에 녹여냈다.
저자는 "피렌체인들이 생소한 고대의 이교도 문화를 전수하면서 갈등을 겪은 뒤에 그것을 수용하고 동화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적응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자신들의 사회를 확 바꾸어 놓았다"고 말한다.
책은 시대순으로 서술됐지만, 열전 형식이기에 아무 편이나 펴놓고 읽어도 된다. '사기 열전'이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같은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듯하다. 인물들의 삶 안에 꿈틀거리는 시대의 격동과 주름을 담아내는 저자의 드라마틱한 서사 방식도 주목해서 볼 만하다.
책과함께. 이종인 옮김. 528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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