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 원액으로 남편 살해한 아내, 대법원 “유죄 의문…다시 재판”

전형민 기자(bromin@mk.co.kr) 2023. 7. 27.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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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증거들, 적극적 증거로 불충분”
“공소사실, 충분히 증명되지 못해”
대법원 전경. [사진=연합뉴스]
남편에게 치사량의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을 먹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아내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고, 이를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다”며 “추가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21년 5월26일과 27일, 남편에게 3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 흰죽, 찬물을 먹여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남편은 26일 A씨가 건넨 미숫가루와 흰죽을 먹고 속쓰림과 흉통 등을 호소해 그날 밤 응급실을 다녀왔다. 남편은 귀가 후 A씨가 건넨 찬물을 받아마신 후 1시간∼1시간30분 뒤 사망했다.

압수된 A씨 소지품 중에는 전자담배 기기와 액상 니코틴이 포함돼 있었는데, A씨는 재판에서 범행을 부인하며 남편이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1심은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통한 3번의 범행을 모두 인정,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남편이 금연한 지 오래됐고 니코틴 패치를 사용하거나 따로 주사한 흔적이 없는데, 부검 결과 위와 혈액 등에서 과량의 니코틴이 검출된 점이 근거가 됐다. 2심은 남편이 응급실을 다녀온 후 받아마신 찬물을 통한 범행만 유죄로 인정했다. 형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찬물을 통한 범행에 대해서도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원심판결에 의문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부검 결과와 감정 의견은 피해자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과 피해자가 응급실을 다녀온 후 과량의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라며 “피고인이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피해자에게 마시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후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또 “A씨가 피해자에게 줬다는 물컵에는 3분의 2 이상 물이 남아있었다”며 “피해자가 피고인이 준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니코틴 원액은 마실 때 혀를 심하게 자극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몰래 먹이기 어려운 점 △남편이 사망하기 약 두 달 전 A씨의 외도 사실을 알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 점도 유죄를 확정하기 어려운 정황으로 꼽았다.

이어 “살해에 고농도의 니코틴 원액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피고인이 어떤 경로로든 니코틴 원액을 구매하거나 확보해 준비했다고 볼 만한 정황도 뚜렷이 확인되지 않는다”며 “수사기관은 피고인이 사전에 범행을 준비·계획했다고 볼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하급심이 짚었던 A씨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내연관계 유지 및 경제적 목적이 계획적으로 배우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로 작용했는지에 관해 의문이 있다”고 했다. 남편이 사망해도 A씨가 받을 보험금과 상속재산이 많지 않은데다 범행 당시 A씨가 살인을 결심할 만큼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설명이다.

A씨는 내연 관계로 지내던 남성이 있었고, 이를 남편에게 발각되기도 했다. 앞서 1·2심은 A씨가 남편의 재산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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