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70주년 경북 칠곡서 울려퍼진 미국 국가…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무슨 일이?
‘오! 말해주오. 성조기는 여전히 휘날리는가.’
27일 오전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전적기념관.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에 건립된 유일한 전쟁기념관에서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가 울려 퍼졌다. 이날 이곳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 참석한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이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 등은 높이 4.2m의 거대한 두 동상을 감싸고 있던 흰 천이 벗겨지자 손뼉을 치며 축하의 인사를 나눴다.
반면 기념관 정문 앞에서는 민족문제연구소·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등 17개 시민사회단체가 ‘영구분단 설계자 트루먼 동상 웬말이냐’ 등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집회를 벌였다. 이들은 “이승만은 독선과 아집으로 독립운동 진영을 분열시켜 대한민국 임시정부로부터 탄핵을 당한 인물”이라며 “친일파를 등용하고 반민특위를 해체해 민족 정통성을 훼손한 인물을 순국선열이 잠든 곳에 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작성한 ‘임시대통령 이승만 심판서’에는 “순국선열들이 눈을 감지 못하고 살아있는 독립투사들이 바라이므로 임시 대통령 이승만을 면직한다”고 적혀있다.
이 단체는 “이승만은 권력 장악 12년 만에 4월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는 탄핵 이후 이승만에게 내려진 두 번째 심판이며 최종적 평가”라며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 계승’이라고 쓰여있다”고 밝혔다.
두 동상은 민간단체인 ‘이승만·트루먼 동상건립추진 모임’이 2017년 제작했다. 애초 계획된 서울의 전쟁기념관과 주한미군마저도 영내 설치를 거부하면서 갈 곳을 잃었던 두 동상은 경북도의 기획으로 7년만에 다부동에 세워지게 됐다.
경북도는 2021년 두 동상 설치 여부를 논의했다. 이 때 광복회 경북지회는 트루먼 전 대통령은 극동방위선 보호구역에서 남한을 배제해 김일성이 남침할 구실을 줬고, 이승만 전 대통령도 대전으로 피신할 당시 한강 다리를 끊어 수많은 국민을 수장시킨 잘못이 있다며 동상 설치에 반대했다. 이에 기념관 소유권과 관리 권한이 있는 칠곡군은 지역 이장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고 그 결과 찬반이 팽팽히 나뉘자 동상 설치는 더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자 경북도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국가현충시설로 승격시킨다는 목표를 내세워 올해 1월부터 직접 기념관 운영을 맡았고 이후 7개월 만에 두 동상 제막식을 강행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이날“두 동상이 이제야 제대로 된 호국의 성지에 안착하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밝혔다.
친일 행적이 있는 백선엽 장군에 이어 두 동상이 다부동전적기념관에 세워지게 되면서 기념관이 정치적 장소로 변질할 것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누구나 찾아 추모해야 할 공간이 특정 보수정당의 선전 무대가 될 것이란 우려다. 실제 이날 동상건립추진위 대표인 극우 언론인 조갑제씨는 동상건립 및 취지보고 자리에서 “오늘 이 자리에 한국사 정통세력이 다 모였다”고 말했다.
우대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상임대표는 “이승만 일당은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을 팽개치고 김구를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과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한 광복회 인사들에 대한 테러를 자행하는 악행을 저질렀다”며 “윤석열 정부와 보훈부의 행태에 대해 저항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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