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바가지 상혼'은 없다
상점주는 마치 잘못된 일을 하다 들킨 것처럼 이리저리 둘러대느라 곤욕을 치른다. 뉴스는 바가지 상혼을 엄히 다스리겠다는 정부 당국의 엄포로 끝맺는다. 전형적인 편파적 뉴스다.
근본적으로 바가지라는 말 자체가 편파적이다. 바가지라는 용어는 이미 그 자체에 가격에 대한 사전적 판단이 들어가 있다. 평상시 가격이 적절한 것이고 성수기 때의 가격은 폭리를 취하는 잘못된 행위라고 이미 결론을 내리고 쓰는 용어다.
성수기 때 가격 상승은 음식업이나 숙박업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모든 업종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반도체 가격은 호황기 때 가격이 수백퍼센트 씩 오른다. 그렇다고 반도체 업체가 탐욕스럽게 바가지를 씌운다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는다. 동일한 상품이나 서비스라도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수요가 적어지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시장경제의 이치다.
꼭 성수기 때의 바가지 논란이 아니더라도 물가가 오를라치면 외식이나 숙박, 개인서비스 등과 같은 생활서비스 업종이 질타의 도마 위에 오른다. 마치 이들이 물가상승의 주범인 양 몰아간다. 과연 그럴까. 이들이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받으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니 정반대다. 정부 공식통계를 봐도 음식업이나 숙박업, 개인서비스업 등의 영업이익률은 다른 업종들에 비해 형편없이 낮다. 폭리를 취했다면 나타날 수 없는 결과다.
이들 이익률이 낮은 생활서비스 관련 업종들이 주로 자영업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크게 벌어져 있는 자영업 부문과 비자영업 부문 간 소득 격차는 날이 갈수록 더욱 확대되고 있다.
소위 ‘바가지 상혼’은 생활서비스 업종의 수익성이 지나치게 낮다 보니 기회가 있을 때 수입을 더 올려야 한다는 절박감이 투영된 결과다. 따라서 ‘바가지 상혼’을 없애는 일은 일방적인 가격통제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수익성 개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외식업이나 숙박업 등 생활서비스 관련 정책의 초점은 가격이 아니라 서비스의 질에 맞춰져야 한다. 억지로 통제된 가격은 지속될 수 없다. 가격은 가능한 한 시장에 맡기고 서비스의 질 제고 유도를 통해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위생, 안전, 소비자 보호 등 감독 기능과 함께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한 정책지원 기능이 균형 있게 강화돼야 한다. 서비스의 질적 개선을 도모하는 것만이 소비자와 공급자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이다.
하지만 현실의 정책은 생활서비스 물가를 통제하는데 과도하게 몰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지방물가 안정관리 추진실적 평가’ 시책이다. 이 시책에 따라 매년 행안부가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을 대상으로 물가안정 실적을 평가하고 그 성적에 따라 지자체에 차별적인 교부금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평가의 주요항목은 개인서비스 요금 안정 실적이다. 한마디로 지자체 간 생활서비스 가격 통제 독려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물가당국인 기획재정부도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물가가 들썩일 때마다 장·차관이 나서서 생활물가 안정을 독려하는 노골적인 가격통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런 물가정책의 밑바탕에는 제조업이나 수출산업 경쟁력을 위해 서비스업, 특히 생활서비스업의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수십년간 별 의문 없이 가져온 관성적인 생각이 깔려 있다.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언론 역시 정부 장단에 맞춰 자영업자가 마치 물가상승의 주범인 것처럼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이제 구태의연한 바가지 상혼 뉴스가 더이상 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최훈길 (choigiga@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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