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대법원 “사법개편 법안 위헌심사하겠다” 네타냐후에 맞불

손우성 기자 2023. 7. 2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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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회 끝나는 오는 9월 심사 개시
지금까지 기본법 폐기 사례 거의 없어
위헌 판단 시 이스라엘 사회 혼란 불가피
극우 연정 “정부에 대한 쿠데타” 반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예루살렘 의회(크네세트)에서 진행된 사법개편 법안 표결에 앞서 긴장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대법원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극우 연정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사법부 무력화 법안에 대해 위헌심사(사법심사)를 진행하기로 26일(현지시간) 결정했다. 이스라엘 권력 두 축인 사법부와 행정·입법부의 갈등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의회(크네세트)에서 가결된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위헌심사를 여름 휴회가 끝나는 오는 9월에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결정을 사법부가 제지하지 못하도록 한 사법개편 법안의 위헌성을 따져보겠다는 의미다. 다만 대법원은 직권으로 법의 효력을 즉시 정지시키진 않았다.

성문헌법이 없는 이스라엘은 기본법이 사실상 헌법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대법원이 헌법재판소 기능을 겸한다. 이스라엘 시민단체는 지난 24일 의회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을 비롯한 극우 연정이 사법부에 관한 기본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하자 대법원에 위헌심사를 청구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최소 7건의 청원이 대법원에 접수됐고, 7만7000명의 회원을 거느린 이스라엘변호사협회는 72페이지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독일 베를린 출장 중이던 에스더 하윳 대법원장은 위헌심사 개시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지난 25일 밤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대법원은 심사 일정과 주심 배정 등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대법관 15명 가운데 최대 11명을 선출해 위헌심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극우 연정의 사법개편 법안 처리 강행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예루살렘 의회(크네세트) 인근에서 대형 이스라엘 국기를 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문제는 지금까지 대법원이 사실상 헌법에 해당하는 기본법을 폐기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NYT는 “대법원이 의회를 통과한 일반 법률은 무효로 한 적은 있지만, 기본법을 뒤집지는 않았다”며 “보수 연정이 사법개편을 기본법 개정 방식으로 진행한 이유”라고 전했다.

따라서 대법원이 만약 사법개편 법안을 위헌으로 판단하고 파기를 명령할 경우 이스라엘 사회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NYT는 “대법원이 사법개편 법안 무효를 선언하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 결정을 따를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며 “정부가 대법원 판결을 거부하면 군과 경찰, 공무원, 하급 법원 등 이스라엘 주요 기관은 행정부와 사법부 가운데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고 보도했다.

다만 대법원이 묘수를 발휘할 여지는 남아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스라엘 헌법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법을 파기하는 대신 법의 영향을 무디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전했다. 대법원이 ‘해석 권한’을 활용해 법의 적용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대법원은 2018년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고향’이라고 정의한 기본법에 대해 “아랍 시민을 차별하는 내용”이라며 “인권을 보장한 다른 기본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적용을 허가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한 유대교 신도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지 서쪽 벽에서 기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극우 연정에선 볼멘소리가 쏟아졌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행정부에 대한 대법원의 쿠데타 시도”라고 날을 세웠다. 연정에 합류한 ‘독실한 시오니즘’의 심차 로드먼 의원도 “대법원의 위헌 결정은 아직 가상 시나리오에 불과하다”면서도 “대법원은 권한 밖 일에 개입할 권리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법개편 법안 초안을 작성하는 등 초강경파로 꼽히는 야리브 레빈 법무장관은 지난 3월 관련 질문에 “이 법이 무효가 된다면 우리는 모든 한계선을 넘을 것”이라며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었다.

NYT는 “사법부와 행정부는 사법개편을 반대하는 국민과 찬성하는 국민 사이에 벌어진 전투의 대리자가 됐다”며 “대법원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한쪽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WSJ 또한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순간 이스라엘의 진짜 위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하레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집권 리쿠드당 소속 의원 11명은 전날 검찰총장의 각료 조사 및 기소 권한을 박탈하는 내용의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 리쿠드당은 성명을 내고 “일부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추진한 법안”이라며 “지도부와 협의 없이 입법 절차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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