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똥 사진’ 왜 안 보내줘”…‘악성 민원’ 시달리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
아동학대 무고 민원 발생해도 피해는 보육교사가 떠안아
업무 부담도 커…”휴게 시간에도 사진 정리·알림장 작성”
전문가 “업무 부담 완화를 위한 실질적인 행정 지원 필요
서울 강남구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로 근무 중인 30대 A씨는 이달 초 자신이 맡고 있는 반 아이의 부모로부터 대변 사진을 찍어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A씨는 “자녀의 건강 상태 확인이 목적이라고 했지만 난감했다”라면서도 “거절하려니 민원이나 안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구역질이 나지만 매번 찍어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임 모(54) 씨도 부모들의 민원에 난감할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임 씨는 “올해 초 동요·동시 발표회를 연 뒤에 행사 사진을 부모님들에게 돌렸는데, 어머니 한 분이 아이마다 동영상을 찍어 보내지 않았다고 강하게 항의했다”라며 “한 달간 선생님들과 열심히 준비한 발표회였는데 허탈했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발생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사망 사건으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이 도마 위에 오르는 가운데 어린이집 보육교사들도 부모들의 과도한 요구와 악성 민원에 노출돼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가 있어도 교사에 대한 보호막이 없어 소극적인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
◇ 보육교사 30% “권리침해 당했다”... 보호 대책 부실
보건복지부의 전국 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보육교사 3300명 중 30.1%가 권리침해를 당한 적이 있고 그 주체는 부모가 71.9%나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권리침해 문제가 발생했을 땐 소극적인 대처로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보육교사 81%가 원장 및 동료 교사들과 상의하고 14.4%가 참거나 모르는 척한다고 답했다. 가족 또는 친구와 상의한다고 밝힌 보육교사는 2.9%였다.
악성 민원이 이어져도 적극 대응이 어려운 것은 권리침해가 발생해도 실질적인 보호막이 없기 때문이다. 보육교사는 보건복지부에서 관리하지만 권리침해에 대한 별도 구제·지원 기관이나 매뉴얼이 존재하지 않는다. 초·중·고등학교 교사의 경우 여전히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교육부 차원에서 2012년부터 교권 보호 종합 대책을 발표하고 관련 법령 개정, 교원치유지원센터 운영 등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반면 보육교사에 대해선 그 마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약 학부모가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는다면 경찰 조사까지 받아야 하고, 소송이 이어지면 변호사비 등 부담이 오롯이 교사에게만 전가되니 결국 학부모들의 과도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인 20대 B씨는 “실제로 아동학대가 아니더라도 일단 관련 신고가 들어가면 최소 6개월 동안은 경찰서와 법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무고 민원인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그 피해는 온전히 보육교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아이들 마다 키즈노트(알림장)를 작성하면서 학부모들의 개별적인 민원을 수용하다보니 업무 부담도 크다. B씨는 “8시간 근무를 하면서 휴게시간을 갖기엔 처리해야 할 서류가 너무 많다”라며 “낮잠 시간에 키즈노트(알림장 애플리케이션)를 작성하고 사진을 보낸 뒤에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휴게 시간을 챙기기 어렵고 초과 근무를 하는 일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키즈노트는 카카오에서 만든 알림장 애플리케이션으로 현재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85%에서 사용하고 있다. 아이의 상태와 활동을 개별적으로 기록해야 하는 것인데 학부모들이 게시 횟수를 기준으로 평가를 한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시간에는 작성이 어려워서 주로 낮잠 시간이나 휴게 시간에 짬을 내거나, 작성을 위해 아예 초과 근무를 해야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보육 개선을 위해선 부모들이 과도한 요구를 자제하고 실질적인 행정 지원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민정 서원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일례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활동사진 등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우, 교사가 아이마다 사진을 찍느라 보육에 지장이 생기는 어려움이 있다”면서 “부모들이 보육을 ‘교육’의 일환이 아닌 보육 서비스로 여겨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보조교사 지원 확대 등 업무 부담 완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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