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아이콘’ 아일랜드의 삭발 여가수 시네이드 오코너 별세

조성호 기자 2023. 7. 2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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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3일(현지 시각) 덴마크 남서부 톤더에서 열린 톤더 포크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서 시네이드 오코너가 열창을 하고 있다./AP 연합뉴스

아일랜드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 시네이드 오코너(57)가 26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일랜드 음악가 겸 활동가인 밥 겔도프가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오코너의 사망을 알렸다. 유족들은 “사랑하는 시네이드의 죽음을 알리게 돼 슬프다”고 전했다.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오코너는 1987년 ‘사자와 코브라(The Lion and the Cobra)’로 데뷔했다. 그의 1990년 2집 앨범에 실린 ‘낫싱 컴페어스 투 유(Nothing Compares 2 U)’가 전 세계적 인기를 얻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 곡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후 그는 2014년까지 총 10장 이상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활발한 음악 활동을 펼쳤다. 삭발한 머리와 무대에서의 잔뜩 찡그린 표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는 저항 정신의 활동가로 유명했다. 1991년 미국 그래미 어워즈의 수상자가 됐지만 이 상이 걸프전을 옹호하는 위치에 있다며 수상을 거부했으며, 미국 국가를 의무적으로 연주하는 공연장이 미국 우월주의를 상징한다며 무대를 거부했다.

오코너는 1992년 미국 예능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에서 밥 말리의 ‘워’를 부르면서 ‘인종차별’이라는 가사를 ‘아동학대’로 바꿔 부른 뒤 미리 준비해 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을 찢기도 했다. 당시 가톨릭계의 아동 성추행 사건에 대한 항의의 표시였다. 2018년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름을 바꿨지만 활동명은 그대로 유지했다.

개인적인 삶은 비극적이었다. 어린 시절 아동학대를 당한 후유증으로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했으며, 1999년 남편과 결별한 후에는 양육권 관련 분쟁으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에는 17살 아들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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