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단지에 외부인이 드나들죠?”…펜스 치는 아파트들[부동산 빨간펜]
최근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서울시 각 구청들은 관련 내용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업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준공 및 입주까지 사업 진행을 빠르게 진행시키기 위한 취지입니다.
얼마 전 한 구청 강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강의 후 질의응답 시간에 객석에 앉아있던 한 분이 손을 들고 강연자에게 물었습니다. 질문의 요지는 이랬습니다. ‘구청에서 재개발 이후 아파트 단지를 관통하는 길을 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외부인들이 단지로 자주 드나들게 되어 불미스러운 사고가 날 우려가 크다. 꼭 길을 내야 하나?’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아파트 단지 내에 일반인이 오갈 수 있는 길이 꼭 필요한 것일까요? 없으면 안 될까요? 이와 관련한 이슈를 정리해봤습니다. 이번 부동산 빨간펜의 주제는 ‘공공보행통로’입니다.
Q. ‘공공보행통로’가 뭔가요? 왜 문제가 되는 거죠?
“공공보행통로는 말 그대로 대지 안에 일반인들이 24시간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는 통로를 말합니다. 주로 아파트 단지 규모가 크거나 주변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보행이 원활하지 않을 때 지구단위계획 단계에서 지구 내에 설치하도록 정하는 편이죠.
문제는 주민들이 단지 안에 외부인이 드나다는 통로를 설치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는 점입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디에이치아너힐즈 사례를 보시죠. 이곳은 1320채 규모로 2019년 8월부터 입주를 시작한 곳입니다. 단지가 수인분당선 개포동역과 대모산 사이에 있다보니 등산객이 단지 내부를 자주 오갔다고 합니다. 프라이버시가 침해된다는 민원이 늘어나자 이 단지에서는 출입증을 찍어야만 오갈 수 있는 1.5m 높이의 철제 담장을 총 759m구간에 걸쳐 설치했습니다. 이런 담장은 인근 단지인 개포레미안블레스티지, 개포래미안포레스트에도 같이 있습니다.
다음달 입주를 앞둔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에서도 공공보행통로에 대한 우려는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재건축 과정에서 반포대로변에서 한강까지 잇는 지하 공공보행통로를 기부채납으로 조성하면서 앞으로는 지하철역에서 세빛섬까지 지하로 통행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노영창 원베일리 조합장 직무대행은 이달 24일 현장을 찾은 전성수 서초구청장에게 ”비행 청소년 등으로 우범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 서초구청장도 ”그런 염려가 있을 수 있다“며 ”안전할 수 있도록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입주자, 관리주체등과 서로 의논하며 풀어가겠다“고 답변했습니다.
관광객이 특정 지역에 지나치게 많아질 경우 그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삶이 침범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를 ‘오버투어리즘’이라고 부르죠. 주민들은 비단 관광지뿐 아니라 동네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는 입장입니다. 주민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담장을 설치하거나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합니다.”
Q. 외부인 출입을 제한하는 담장은 주민 마음대로 설치할 수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담장 설치는 일종의 건축행위라 지자체의 기준에 부합해야 합니다. 앞서 거론한 디에이치아너힐즈는 구청과 협의 없이 철제 담장을 설치했고 결국 2020년 5월 건축물대장 상 위반건축물로 등재됐습니다. 담장을 설치한 조합장은 법 위반으로 고발돼 벌금 100만 원을 부과받았죠. 개포레미안블레스티지 역시 구청으로부터 담장 설치와 관련해 의견제출을 요청받은 상태입니다.
이처럼 담장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5분이면 갈 길을 10분 넘게 돌아가는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파트 단지 규모가 크거나 우회로가 경사진 곳이라면 소요시간은 더 늘어나겠죠. 시간이 생명인 배달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닐겁니다.
서울연구원의 임희지 선임연구위원이 발표한 보고서 ‘서울시 슈퍼블록 주택지 유형별 도시근린 재생모델 개발 방안’에 따르면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7단지의 가로변은 약 500×500m 내외 길이로 전체 규모는 약 23만㎡입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4·5구역(한양 1·2·3·4·6차, 현대8차)의 경우 약 300×600m 수준으로 면적이 약 18만4000㎡에 달하죠. 축구장 1개 넓이가 약 7140㎡인 점을 감안하면 2개 단지는 각각 축구장 32개, 26개를 이어붙인 수준입니다. 양천구의 경우 목동7단지와 함께 지어진 신시가지아파트단지만 14곳이 있습니다. 개별 단지마다 통행을 제한한다면 인근 단지끼리도 통행하는데 불편해지겠죠.”
Q. 실제로 단지 내로 통하는 길이 없어 주민들이 피해를 본 사례가 있나요?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 맞붙어 있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와 마포더클래시가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네요. 각각 3885채, 1419채 규모 단지인데 지도상으로는 이 2개 단지 바로 옆에 한서초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초등학교에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쪽으로 중문이 있어 이 단지에 거주하는 초등학생들이 오갈 수 있죠.
그러나 현재 마포더클래시에서 한서초로 통학하는 초등학생은 한서초 중문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2개 단지는 맞붙어 있어 어른 걸음으로 100걸음 정도면 오갈 수 있지만 이를 연결하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포더클래시 쪽에서는 2개 단지가 맞붙는 땅에 계단, 경사로까지 설치했지만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쪽에는 텃밭을 설치해 토마토, 오이 등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마포더클래시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은 단지를 벗어난 외부 도로를 따라 통학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마포더클래시 관리사무소 쪽에 문의해보니 2개 단지를 잇는 길을 놓는 논의는 없다고 하네요. 마포래미안푸르지오 관리사무소 쪽에서도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과거에는 이 일대 아현뉴타운 보행과 관련한 마스터플랜이 있었으나 개발이 지연되며 보행 동선이 무너졌다’고 밝혔습니다. 현재로서는 2개 단지가 협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Q. 그렇다면 이런 보행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을까요?
“강남구 개포동 단지에서 조성한 불법 담장 사례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재건축 과정에서는 단지 내 길, 공원, 공공시설 등 기반시설과 관련된 사항은 지구단위계획이라는 틀 안에 담깁니다. 하지만 지구단위계획 규정 상 이를 어기더라도 이행강제금 같은 구속력 있는 수단을 활용할 근거는 없다고 하네요. 앞서 디에이치아너힐즈에서 부담한 100만 원 역시 관할 지자체에 신고 없이 건축행위를 했기 때문에 부과되었다고 합니다.
건축 개방형 단지 조성 계획은 심의 과정에서 공공성을 확보한 근거로 작용해 용적률 인센티브의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정작 단지를 조성한 이후에는 프라이버시를 근거로 말을 바꾼다면 ‘얌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겠죠. 주어진 용적률 인센티브를 회수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아파트는 거래가 자유로워 주인이 바뀌는 만큼 공공과의 협의 사항이 지켜지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공공에서는 구분지상권, 지역권 등 법적 카드를 해결책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상권은 다른 사람이 소유한 토지의 지상이나 지하 공간에 대해 범위를 정해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말합니다. 지역권은 내 땅의 편익을 올리기 위해 타인의 땅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권리이구요. 실제로 돈암동 한신아파트의 경우 재개발로 지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일반 시민이 사용하고 있던 현황도로가 폐쇄될 위기에 처하자 성북구청에서 지역권을 설정해 도로의 기능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처럼 법적 권리를 등기부등본에 기재하면 반대 급부로 공공이 토지에 대한 사용료를 내야 하는데 이 때 용적률 인센티브를 활용하면 될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공공보행통로에 관한 이야기 어떠셨나요? 저는 마포구에서 벌어진 한서초등학교 통학로 사건을 보고 전북 전주의 한 건물주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서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박주현(55)·김지연 씨(50) 부부인데요, 이분들은 2012년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인후초등학교 앞 공터에 단층으로 상가를 지었습니다. 건물을 짓기 위해 쇠파이프를 둘렀는데 하루에만 최소 200명이 되는 아이들이 쇠파이프 아래를 기어 땅을 지나갔다고 하네요. 이 길목이 인후초와 인근 아파트단지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부부는 건물 내에 아이들이 오갈 수 있는 길을 냈습니다. 통학로 면적은 99㎡로 임대를 놓아도 월 100만 원 정도였는데 이를 포기한 것이죠. 통로 양 끝에는 ‘초등학교 가는길’ ‘아파트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도 달았습니다. 부부의 외동딸 역시 이 통학로를 이용해 학교를 다녔다고 하네요. 이런 소식을 접한 전북교육청은 지난 4월 부부에게 교통안전 유공자 감사장과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부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건물 변경할 계획도 없는만큼 앞으로도 통학로를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전주에 지어진 통학로는 훈훈한 미담입니다만 이를 모든 건물주에게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다만 미래를 이끌어갈 어린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본받을만한 행동을 할 필요는 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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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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