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의 '양궁 농구' 어디까지 갈까?
신생구단 고양 소노 ‘스카이거너스(Skygunners)’에 대한 농구계 안팎의 관심이 뜨겁다. 데이원 시절의 아픔을 뒤로한채 이기완 단장, 황명호 사무국장, 김승기 감독 체제로 출항의 닻을 올린 소노는 ‘하늘 높이 향하는 대포’라는 팀명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즌 준비에 나선다. KBL은 21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제29기 제1차 임시총회 및 이사회를 열고 소노의 KBL 신규 회원 가입을 승인했다
국내 최고 명장중 한명으로 꼽히는 김승기 감독은 소노라는 새로운 팀으로 맞이하는 다음 시즌에서도 특유의 ‘양궁 농구’를 이어갈 전망이다. 양궁 농구는 말 그대로 장거리슛 위주로 풀어나가는 농구를 뜻한다. 다양한 공격패턴과 전략전술이 필요한 농구에서 오로지 장거리슛에만 의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만큼 많이 쏘고, 그러한 패턴이 중심을 이룬다고 말할수 있겠다.
3점슛의 특성상 한번 몰아치게되면 고득점이 만들어지기 일쑤다. 때문에 적은 점수로 쥐어짜는 방식이 아닌 줄건 주고 그 이상으로 되갚아주는 화력 대결을 통해 상대를 눌러버린다. 이론적으로는 이보다 더 매력적인 공격 방법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2점슛보다 성공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지라 플레이오프 등 큰 경기에서는 수비위주 혹은 높이를 들고나온 팀과의 대결에서 패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KBL도 그랬고 NBA도 그랬다. ‘점프슛 팀은 우승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3점슛이 터지는 날은 어떤 강적도 잡아내지만 항상 폭발할 수는 없는지라 안정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때문에 찰스 바클리 등 골밑에서 터프한 몸싸움을 즐겼던 옛 전설들은 ‘도깨비팀은 될 수 있어도 우승까지는 힘들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밝혀온 바 있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스테판 커리가 현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게된 배경에는 그러한 공식을 깨트렸다는 이유가 크다. 현재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슈터로 불리는 커리와 클레이 탐슨 등 동료들은 경기내내 미친 듯이 3점슛을 몰아치며 상대를 넉아웃시켰고 수차례의 우승을 통해 골든스테이트를 신흥명가 자리에 올려놓았다.
많은 팀들은 그러한 농구도 통한다는 것을 알게됐고 찬스만 나면 과감하게 슛을 던져서 득점을 올리고 공간활용을 넓게가져가는 ‘3점슛의 시대’ 혹은 ‘스페이싱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KBL로 시선을 돌려보면 양궁 농구를 통해 화제를 모았던 대표적 팀으로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준우승까지 차지한 김태환 감독 시절의 LG가 있다.
양궁 농구에 필요한 요소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한 팀컬러의 중심을 잡아줄 에이스 슈터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나머지 선수들도 3점슛을 통해 지원사격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양궁 농구의 묘미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3점슛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격만으로는 한계가 있는지라 활동량 넘치는 수비 또한 필수다.
악착같은 수비를 통해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공격시에는 3점슛 혹은 그러한 상황에서 나오는 공간을 활용해 속공, 컷인플레이 등으로 빨리빨리 점수를 내는 것이다. 당시 LG에서는 조성원과 에릭 이버츠가 ‘쌍포’로 공격을 이끌었다. 팀내 3번째 슈터 역할이자 포인트가드는 조우현이 맡았으며 이정래 등 다수의 선수들이 지원사격으로 뒤를 받쳤다.
하지만 하필이면 탄탄한 수비의 삼성, 높이의 SK, 빠른 농구의 동양 등 동시대에 상성을 이룰만한 팀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LG가 터지는 날은 어떤 팀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과 SK는 수비와 골밑장악을 통해 LG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팀이었던지라 가랑비에 옷젖듯 야금야금 흐름을 가져가버렸다.
수비에서의 LG는 적극성은 돋보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버츠는 공격능력을 보고 뽑은 BQ형 백인 외국인선수였던지라 수비시 탄력좋은 상대 흑인 외국인 빅맨을 감당하기 버거워했다. 거기서 나오는 득점 허용 및 제공권 열세는 중요한 순간마다 발목을 잡았다. 더불어 전체의 흐름을 읽어가며 노련하게 게임을 풀어나갈 야전사령관의 부재 또한 아쉬웠다.
동양과의 가장 큰 차이중 하나가 바로 그 부분이었다. 동양같은 경우 LG처럼 3점슛을 앞세운 팀은 아니었지만 빠른 농구를 우선시하는 화력의 팀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포인트가드가 없었던 LG와 달리 동양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천재 가드 김승현이 버티고 있었고 여기에서 오는 안정감 차이가 컸다.
실제로 LG는 김승현이 결장했을 때의 동양을 상대로는 화력 대결에서 우위를 가져가며 승리를 거두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김승현이 나오게되면 접전 끝에 고배를 마시기 일쑤였다. LG가 골밑약세와 더불어 1번 포지션에 아쉬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어떤 면에서는 그런 불균형적인 전력으로 장점을 살려 강호로 군림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가장 아쉬웠던 카드는 송영진이다. 신인드래프트 당시 대학 최고의 파워포워드중 한명으로 불렸던 송영진은 LG의 약점인 높이에 힘을 실어줄 최적의 카드로 보였다. 김승현이라는 최고 포인트가드를 거르고 송영진을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무리한 증량으로인해 송영진은 대학때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채 LG에서 계륵같은 신세가 되고만다. 만약 막무가내 증량이 아닌 장점을 살려주는 방식으로 성장을 시켰으면 어땠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현재의 소노 또한 당시 LG가 그랬듯 양궁 농구를 통해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팀이다. 무엇보다 현 시점 국내 최고 슈터인 전성현(32‧188.6cm)의 존재가 크다. 전성현은 에이스라는 호칭이 잘 어울리는 슈터다. 단순히 3점슛을 잘 던지는 것을 떠나 상대의 거친 수비를 뚫고 클러치슛을 성공시킬 능력과 배포를 겸비하고 있다. 더블팀, 트리플팀의 압박 속에서도 각종 3점슛 기록을 새로 써내렸던 지난 시즌 활약상이 이를 입증한다.
양궁 농구 시절 LG의 약점이었던 포인트가드 포지션은 외려 강점이다. 현재 소노의 주전 1번은 이정현(24‧187cm)이 예약하고 있는데 그는 양동근, 김선형의 뒤를 이을 대형 듀얼가드 재목으로 꼽히는 선수다. 탄탄한 몸을 앞세워 동포지션 선수들을 힘있게 몰아붙이는 모습은 양동근을 닮았으며 다양한 공격스킬과 완성도는 김선형을 연상케한다.
물론 하나하나 따졌을 때 아직은 레전드 선배들을 따라가기에 갈길이 멀지만 가능성적인 측면에서는 가장 높은 젊은 기수라고봐도 무리가 아니다. 김승기 감독은 포인트가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보이는 선수를 주전급 혹은 전력감 1번으로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본인이 잘하는 것 위주로 플레이할 수 있게 룰을 간소화해주면서 색깔을 만들어준다. 포인트가드로 전향을 시도했던 상당수 선수들이 포지션 차이에서 나오는 역할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비쳐봤을 때 적응적인 부분에서의 부담감을 덜어준다. 아직 공식적인 발표는 안나왔지만 외국인선수와 아시아쿼터 선수 역시 팀컬러와 어울리는 선수들로 낙점했다고 알려져 있다.
더불어 3&D 유형의 김강선을 필두로 활동량과 외곽슛을 갖춘 다수의 선수들이 의지를 불태우고있는 모습이다. 어떤 강팀과 맞붙어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원 시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투지를 불태운 김감독과 선수단이 새로운 팀 소노에서 양궁 농구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해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문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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