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니코틴 살해' 아내 징역 30년 원심 파기…대법 "증거 부족"

민경진 2023. 7. 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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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보험금·재산 노리고 남편 살해 혐의
法 "간접증거로 공소사실 뒷받침 어려워"
살인 동기도 합당한지 다시 심리해야
사진=연합뉴스


남편에게 치사량의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여성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대법원이 파기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했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쟁점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는 2010년 5월 남편과 결혼해 아들 1명을 출산했다. 2015년부터는 내연남 B씨를 만나기 시작해 2020년경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B씨를 머물게 했다. 또 그와 함께 외국 여행을 다녀오는 등 내연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A씨는 대출 상환 부담과 공방 매출 감소, 각종 공과금 연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남편이 사망할 경우 사망보험금, 남편 소유 부동산 및 예금 등을 상속받고 B씨와도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 자신이 평소 피우던 전자담배용 니코틴 원액을 이용해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A씨는 2021년 5월 26일 아침 출근하려는 남편에게 미숫가루, 꿀, 우유에 니코틴 원액을 섞은 음료를 주고 먹게 했다. 남편이 속쓰림을 호소할 뿐 사망에 이르지 않자 같은 날 저녁에는 흰죽을 만든 후 그 안에 다량의 니코틴을 넣어 국그릇 반만큼 먹게 했다. 이후 남편은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A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치료를 받은 후 상태가 호전되자 다음날 새벽 귀가했다.

A씨는 집에 도착해서도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탄 찬물을 다시 남편에게 건네 마시도록 했다. 결국 남편은 이날 새벽 3시경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했다.

A씨는 남편이 사망하자 B씨와 함께 거주할 집의 보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명의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C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한 다음 자신이 마치 남편인 것처럼 본인 인증을 거쳐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검찰은 남편의 사망 전날 아침 ①미숫가루 음료를 먹게 한 행위, 같은 날 저녁 ②흰죽을 먹게 한 행위, 사망 당일 새벽 ③찬물을 먹게 한 행위에 대해 살인죄를, 남편 명의를 도용해 대출받은 행위에 대해선 컴퓨터 사용 사기죄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공소사실에 대해 전부 유죄를 인정하고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살인 혐의 관련 공소사실 중 ③찬물을 먹게 한 행위와 컴퓨터 사용 사기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했다. 나머지 공소사실은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미숫가루 음료나 흰죽을 섭취하고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음용에 따른 것이 아닐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해자가 니코틴을 음용한 정황은 응급실에서 귀가한 후 피고인이 건네준 찬물 한 컵을 마신 때뿐이라는 부검의 등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도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살인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해 1심과 마찬가지로 A씨에 대해 징역 30년 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③ 행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해당 증거들은 남편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과 남편이 병원에 다녀온 후 과량의 니코틴을 경구 투여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을 뿐 ③ 행위에 대한 공소사실을 증명하기엔 부족하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남편의 체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이르게 되는 시각에 휴대전화 로그기록 등 활동 흔적이 남아있고, A씨가 남편에게 건넸다는 물컵에 물이 3분의 2 이상 남은 점도 석연치 않다고 봤다. 이에 재판부는 "니코틴 제품이 피해자를 살해한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거나 그 존재가 피고인의 범행 준비 정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또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이 살인 동기가 됐다고 볼 정도인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원심에서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부분을 파기하면서 해당 부분과 경합범 관계에 있는 나머지 무죄 인정 부분까지 전부 파기환송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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