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민이 ‘형사록’에서 그린 ‘김택록論’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3. 7. 2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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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그는 충분히 늙었다. 운동화나 뜀박질과 어울리는 나이가 아니다. 그래도 뛴다. 왜? 저 앞의 놈이 뛰고 있으니. 심장이 과부하에 삐걱대고 폐조직이 당장이라도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지경이라도 뛰어야만 한다. 그렇게 뛰면서 벼른다. “퇴직하면 절대 안뛴다. 죽어도 걸어만 다닌다!”

디즈니+의 오리지널 시리즈 '형사록 시즌2'의 주인공 김택록(이성민 분)은 고시원에 산다. 당연히 혼자다. 한때 가족도 있었다. 지금은 없다. 멀리서 외동딸의 행복을 기원해줄 뿐이다.

그래도 직업은 있다. 경찰이다. 아내와 딸을 떠나보낼지언정 포기하지 못했던 천직. 범죄자에게 위협받는 경찰 일을 놓지 못해 가족의 손을 놓아야 했다.

그렇다고 경찰로서 무슨 대단한 영화를 누린 것도 아니다. 만년 경위다. 후배들이 경감 달고 팀장하고, 경정 달고 과장하고 하다못해 총경 달고 서장하도록 그는 경위다. 이유는 동료 잘못 제가 쓰고, 부당한 압력 거부하고, 체질적으로 상명하복에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신껏 살았으면 속 편히 살 만도 한데 밤잠도 제대로 못잔다. 지나간 시절의 악몽이 수시로 꿈 속을 들락거린다. 잘 아는 의사 하나는 “남들보다 죄책감에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스스로는 경찰 옷이 맞지 않는 캐릭터라 이해한다. 그럼에도 경찰로서 그는 범인을 잘 잡는다. 끝장을 보는 오기와 근성 덕분이다.

그런 그에게 ‘친구’입네 전화를 걸어오는 놈이 있다. 그리고 놈은 친동생 같은 후배 우현석(김태훈 분)을 죽였다. 놈은 과거 택록의 잘못된 수사를 꼬집으며 협박해왔다.

택록이라고 흠없는 경찰은 아니었다. 사회를 위협할만한 살인범을 격리시키기 위해 증거를 조작한 적도 있다. 혐의가 미심쩍은 방화 피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한 동료의 수사를 방관한 적도 있다. 예의 ‘친구’라는 협박범 덕에 택록은 그같은 과거의 잘못을 되돌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친구’의 저의는 불순했다. 천문학적인 이권이 달려있는 금오시 재개발 프로젝트가 놈의 목표였다. 택록의 압박에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친구’는 경찰 동료 국진한(진구 분)였고 그 앞에서 택록은 무너졌다.

후배 현석과 배영두(유승목 분)를 살해한 국진한이지만 더 이상 경찰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기 싫은 택록은 “그만하자”며 겨눈 권총을 내려놓는다. 더 이상 수사의 목표도, 범인 검거의 의지도 사라졌다. 이때 택록은 경찰을 그만둘 결심도 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 직후 누군가의 저격에 국진한이 죽는다. 또다시 택록의 눈 앞에서 경찰이 죽어간 것이다. ‘친구’는 하나가 아니었다. 포기하려던 택록을 다시 일으켜 세운 그 총알 한 방. 물면 안놓는 개 같은 근성 탓에 별명도 ‘택견’인 택록을 자극한 그 한 방은 시즌 2에서 예의 ‘친구’의 파국을 예고했다.

시즌2의 택록은 시즌1의 파트너 이성아(경수진 분), 손경찬(이학주 분)에 더해 새롭게 여성청소년계 신임 팀장으로 합류한 연주현(김신록 분)과 힘을 합쳐 ‘친구’의 정체를 밝혀내며 금오시를 둘러싼 암운을 걷어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택록은 마침내 경감이 되어 바닷가 시골마을 파출소장 일을 보고 있다. ‘이장 집에 난리났다’ 제보하는 동네 주민을 안경너머로 건네보는 택록의 시선은 공허하다. 그리고 빨리 오라는 주민의 채근에도 느릿느릿 운동화를 고쳐 신고 나서던 택록은 몇걸음 못가 다시 뛰기 시작한다.

뛰기 싫다면서도 뛸 수밖에 없는 택록이다. 경찰과는 맞지않는다면서도 그 경찰 대신 차라리 가족을 놓아버린 택록이다. 이런 이율배반적 성격으로 택록의 본질은 배타적이고 고독하다. '과거의 인연'이란 부채의 압박에 현실적으로 시달리면서도 '경찰의 소명'이란 허구적 가치를 내세워 지급을 거절한다. 늙은 형사 김택록이 숭고해 보이는 이유다.

현실에만 매몰된 사람들로만은 사회가 건강할 수 없다. 얼핏 뜬구름같은 이상(理想)에 인생을 바치는 이들이 있어야 세상이 살만해진다.

김택록은 주먹이 빠른 성마른 성격에, ‘내 탓’ 하며 가슴치는 연민 많은 캐릭터다. 연기자 이성민은 고독하고 아름다운 김택록의 영혼을 세밀한 연기로 완벽하게 그려냈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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