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0년 '니코틴 살인' 파기 왜?…대법 "범행계획·동기 다시 규명"

박승주 기자 2023. 7. 27.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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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에 원액 섞어 살해한 혐의…"농도·양 규명 안 돼"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 동기인지 다시 살펴야"

(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대법원이 니코틴 원액으로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아내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지 않은 것은 범행 준비와 실행, 동기에서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간접증거만으로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데 대법원은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5월 남편 B씨에게 니코틴 원액을 섞은 음료와 음식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 음료음식에 니코틴 원액 주입해 살해…1·2심 징역 30년

A씨는 출근하는 B씨에게 니코틴 원액에 미숫가루와 꿀, 우유를 섞은 음료를 햄버거와 함께 건넸다. 미숫가루를 마신 B씨는 "가슴이 쑤시고 타는 것 같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A씨는 "꿀이 상한 것 같다"고만 답했다.

귀가한 B씨가 식사를 거부하자 A씨는 흰죽을 만든 뒤 다량의 니코틴을 넣어 먹게 했다. B씨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면서 응급실로 이송됐고 치료받은 뒤 귀가했다.

그러자 A씨는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B씨에게 다시 건넸고 이를 마신 B씨는 결국 숨졌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나왔다.

수사기관은 A씨가 내연남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B씨의 재산과 사망보험금 등을 취득하기 위해 B씨를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평소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A씨는 음료나 흰죽,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넣은 사실이 없고 살해 동기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B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나 실수로 니코틴 원액을 복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나 1심은 공소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B씨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니코틴이 경구 투여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B씨가 응급실에 다녀온 뒤 A씨가 준 물을 마신 직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

B씨 지인들은 B씨가 오래전 담배를 끊었고 전자담배를 피우거나 기기를 소지한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B씨가 니코틴 원액을 갖고 있었을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됐다.

재판부는 "B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므로 자연사했을 가능성은 배제된다"며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A씨가 B씨를 살해했을 가능성만 남고 B씨의 극단선택, 제3자에 의한 타살, 사고로 인한 니코틴 원액 음용 등의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하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심은 살인 공소사실 중 일부, 즉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와 흰죽을 먹게 한 부분은 무죄로 봤지만 "B씨가 숨지기 직전에 섭취한 것은 A씨가 건넨 찬물밖에 없으므로 사인의 원인을 찾자면 마지막으로 마신 찬물일 가능성이 크다"며 1심과 같은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 News1 DB

◇ 대법, 범행동기·과정에 의문점 남아

그러나 대법원은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는다며 하급심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추가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원심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부검결과나 감정의견은 B씨의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라는 점과 응급실을 다녀온 뒤 니코틴 경구 투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는 '증거방법'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 '피고인이 찬물에 니코틴 원액을 타서 피해자로 하여금 음용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A씨가 B씨에게 피해자에게 찬물을 준 뒤 밝혀지지 않은 다른 경위로 B씨가 니코틴을 먹게 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A씨가 B씨에게 줬다는 물컵에는 2/3 이상 물이 남아있었다는 점도 짚었다. 결국 B씨가 찬물을 거의 마시지 않고 남긴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컵의 용량, 물의 양, A씨가 넣은 니코틴 원액의 농도와 양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A씨가 단순히 니코틴 원액의 일반적 위험성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니코틴의 치사량, 사망에 이를 만한 투입량, 투입 방법 등에 대한 정보와 분석이 필요했다"며 "그런데 수사기관은 A씨의 사전 범행 준비와 계획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압수된 니코틴 제품이 B씨를 살해한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거나 범행 준비 정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A씨는 평소 전자담배를 피워 온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동기에도 의문점이 있다고 봤다. 살인을 감행할 만큼 강렬한 범행 유발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내연관계 유지나 경제적 목적이 살인 동기가 됐다고 볼 정도인지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par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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