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부림 학생 말린 교사에 책임 물은 부모…“그 아이, 누가 키웠습니까?” [긴급점검-교사들의 호소③]
구청에 민원 넣듯 쉽지만 교사 보호 장치 없어
’학폭’이 ‘맞폭’으로 번져…결국 ‘교사·학교 책임’
민원 처리에만 급급한 당국 “강력한 변화 필요”
서울 2년차 초등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에 전국 교사들의 애도와 분노가 들불처럼 일고 있다. 그의 죽음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관련 있을 것이라는 추정에 교사들은 거리에 나와 “터질 게 터진 것”이라며 “우리 모두의 일이다. 현장에서는 더한 일이 매일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말 그렇게까지 많을까?’ 의구심이 들어 초등교사인 지인들에게 물었다. 하나같이 ‘정말 그렇다’고 했다. 그중 한 교사는 “동료들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보내온 A4용지 20페이지 분량에는 상상 이상으로 암울한 현장이 담겼다. 이 교사들은 “이제는 제발 바꿔달라”며 절절하게 호소했다. 모든 문장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교육당국과 정치권 등이 부랴부랴 내놓고 있는 개선안, 대책 등이 얼마나 현장과 동떨어진 공염불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통상의 기사나 인터뷰로는 그들의 진정성을 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 끝에 교사 7인이 보내온 답변을 그대로 독자에게 전하기로 했다. 문답형식으로 각자 답변한 내용만 정리했다.
1.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교권 침해, 각종 과도한 학부모 민원 내용이 실제 일선 학교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인지요?
“새발의 피밖에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관내 초등학교 5학년 학급에서 학생이 커터칼로 칼부림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교사가 붙잡고 말리면서 상황이 종료됐는데, 이후 학부모가 교사탓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례는 학교 현장에 정말 수도없이 많습니다.”
2. 과도한 학부모 민원이 많아진 이유가 뭐라고 보시는지요?
“학부모가 학교에 민원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교 또는 교사가 학부모의 민원에 대처할 수단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학교가 교사를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없을뿐더러 민원을 접수하는 교감, 교장도 아무런 힘이 없기 때문에 학부모 민원 해소에 급급하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니 학교를 더 쉽게 보고 학교를 무조건 민원을 들어줘야하는 기관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졌다고 봅니다. 그냥 구청에 민원 넣는 것처럼 학교에 민원 넣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풍조인 것입니다.
교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교육활동은 담임교사 재량으로 이루어져 매뉴얼대로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에도, 일부 학부모는 그런 사소한 실수조차 인정하지 않고 학교 또는 담임교사를 꼬투리 잡습니다.”
3. 가장 많은 민원 내용은 무엇입니까?
“학생들간의 다툼으로 인한 민원이 가장 많습니다. 사소한 장난으로 인한 다툼 때문에 부모들도 감정이 상하고, 만약 부모가 생각했을 때 적절한 조치(가해학생의 사과, 상대 학부모의 사과, 담임선생님의 사과 등)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그 화를 담임이나 학교에 풉니다. 사실 초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다툼에 일방적인 폭행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서로 장난치다가 감정이 상해 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딱 잘라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고 처리할 수 없는 부분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학부모는 “우리 아이는 잘못 없다, 상대 아이가 잘못한 거다” 등의 자기 아이만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교와 교사는 그 사이에서 양쪽의 불만을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교육기관은 말 그대로 ‘교육’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원처리 기관으로 전락했습니다.”
“양방의 학부모의 불만을 다 들어주고 결국 돌고 돌아 교사 책임, 학교 책임으로 귀결됩니다. 학교폭력 담당교사는 본인이 직접 목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쪽 학생들이 진술한 내용을 기록에 남겨 매뉴얼대로 처리합니다. 사안을 조사 후 양쪽 학부모에게 전화를 해 상황을 설명하고 일이 잘 처리되지 않으면(누군가가 먼저 사과하지 않으면) 학교폭력위원회에 회부된다고 전달합니다. 그러면 학부모는 아이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자기 아이를 지키기 위해 맞폭(맞 학교폭력 고소)을 신청합니다. 그렇게 학폭 사건이 진흙탕이 됩니다.”
5. 교사에 대한 민원이 발생했을 때 학교 관리자들은 어떤 도움을 주는지요?
“교감, 교장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도움을 주지는 않습니다. 교권보호위원회, 위기관리위원회라는 제도가 있는데 교사가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구해도 으레 ‘참고 지나가자’는 식으로 넘기자는 관리자가 허다합니다. 교사의 권리 보호를 위해 나섰다가는 본인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모습이 99%입니다. 관리자의 이런 행동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게 아니지만, 평교사와 달리 관리의 책임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봅니다.”
6. 학부모와 교육당국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학생은 교사가 키운 게 아닙니다. 학생을 십수년 키운 것은 부모입니다. 학생의 잘못은 교사가 아닌 학부모의 가정교육 문제 가능성이 더 큰데 왜 교사에게 책임을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사와 학교에 잘못을 따지기 전에 부모들의 행동을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교육현장 일선에서 이런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돼 왔는데 교육당국은 그저 학생인권 강화, 민원 처리에만 급급했습니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정말 강력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리=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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