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니코틴 살해’ 혐의 여성 다시 재판받는다···대법 “증명 부족”

김혜리 기자 2023. 7. 27. 11: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심과 2심서 징역 30년 선고
대법 “살해동기도 살펴봐야”
서울 서초동 대법원. 경향신문 자료사진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음식을 먹여 살해한 혐의를 받는 여성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공소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7일 살인 및 컴퓨터 등 사용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21년 5월 남편 B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니코틴 원액이 섞인 음식물을 먹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출근하려는 B씨에게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를 건넸다. 이를 마신 B씨가 ‘가슴이 쿡쿡 쑤시고 타는 것 같다’고 하자 A씨는 미숫가루에 넣은 꿀이 상한 것 같다고만 대꾸했다. 이후 A씨는 집에 돌아온 B씨에게 다량의 니코틴을 넣은 흰죽을 먹게 했다. 흰죽을 먹은 B씨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응급실로 이송됐다.

B씨가 치료받은 뒤 귀가하자 A씨는 B씨에게 또 니코틴이 든 찬물을 건네 마시게 했다. B씨는 또다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부검 결과 B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A씨는 범행 이후 B씨의 계좌에 접속해 300만원을 대출받아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혐의도 받는다.

1·2심은 A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B씨에게 세 차례에 걸쳐 니코틴을 탄 음식물을 먹여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일부 공소사실은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A씨가 B씨에게 니코틴을 탄 찬물을 마시게 함으로써 B씨가 사망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A씨의 살인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살인 혐의가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A씨가 B씨에게 니코틴을 탄 찬물을 마시게 해 사망하게 했다는 공소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수사기관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B씨의 시신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된 원인이 확인되지 않으며, 범행에 사용된 니코틴 원액이나 도구도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문제의 찬물에 치사량의 니코틴이 들어있었다면 물을 마신 뒤 B씨의 행적이 쉽게 설명되지 않으며, 니코틴 원액에선 매우 특이한 맛이 나 의식이 뚜렷한 사람에게 몰래 먹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했다.

대법원은 A씨가 B씨 사망 직후 수사기관에 부검을 요청하고 문제의 니코틴 제품을 그대로 갖고 있는 등 “독극물을 이용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엔 석연치 않은 사정들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A씨가 B씨를 살해할 동기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A씨가 다른 남성과 내연관계에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기는 했지만,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본인의 생활기반까지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아주 강력한 범행 동기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