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굴욕…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석 저조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4년 만에 아프리카 국가들과 정상회의를 열며 세 과시에 나섰지만, 정작 아프리카 정상들의 참석률이 저조하다고 뉴욕타임스(NYT)·워싱턴포스트(WP)·더타임스 등 미국과 영국 언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7∼28일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제2회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아프리카 정상 21명이 참석한다고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이 밝혔다. 나머지 국가에서는 장관이나 고위 공무원이 참석한다고 덧붙였다.
2019년 열렸던 제1회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정상 45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아프리카에 외교적 노력을 쏟아부었던 러시아에 큰 실망을 안겨줬을 것이라고 외신은 진단했다.
러시아는 과거 냉전 시절 아프리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는 그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최근 몇년 사이 아프리카에서 서방의 입김을 억제하고 영향력을 키워왔다. 특히 지난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아프리카에서 영향력 확대를 추진했다.
분석가들은 미국의 독주를 막고 다극적인 세계 질서를 만들자는 푸틴의 메시지가 서방에 불만을 품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의 아프리카 영향력 확대 중심에는 지난달 말 반란을 일으킨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이 있다.
바그너그룹은 아프리카에서 권위주의 정권을 보호하면서 각종 이권을 챙겼다. 또 리비아, 수단,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등에서 정부군이나 유력 군벌에 군사적 지원을 제공,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말리가 지난달 유엔평화유지군 철수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바그너그룹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반면 경제적 지원은 미미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제1회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당시 푸틴 대통령은 5년 안에 아프리카와의 연간 교역 규모를 158억달러에서 400억달러으로 두 배 이상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2021년 교역 규모는 177억달러에 불과했고, 이는 같은 기간 유럽연합(2천950억달러), 중국(2천540억달러), 미국(837억달러)의 아프리카 교역 규모와 비교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인도주의적 지원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외신은 전했다.
특히 이번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의 참석이 저조한 배경으로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파기가 거론된다.
러시아가 이달 17일 흑해곡물협정의 4번째 기한 연장을 앞두고 협정 파기를 선언했고, 이는 곡물 가격 상승과 우크라이나 곡물 공급 감소로 이어져 우크라이나 곡물에 크게 의존해온 아프리카 국가들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됐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밀 가격이 2배로 치솟았다가 작년 7월 체결된 흑해곡물협정으로 가격이 4분의 1가량 떨어져 그나마 숨통이 트이던 상황이었다.
아프리카 55개국 연합체인 아프리카연합(AU)은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중단에 유감을 표했으며 케냐 외무부는 "뒤통수를 쳤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도 곡물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푸틴 대통령은 정상회의 전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족분을 러시아산 곡물을 무료로 제공해 보충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저조한 참석률이 서방의 간섭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미국, 프랑스와 다른 국가가 아프리카 국가들의 외교 사절을 통해 절대적으로 명백하고 뻔뻔하게 개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신은 아프리카 각국 대표단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그가 여전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려 할 것이며, 그들이 실망한 채로 정상회의장을 떠난다면 러시아가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잃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캐머런 허드슨 연구원은 더타임스에 "아프리카와 푸틴 대통령과의 관계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말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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