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귀', '웰메이드 장르물' 호평…1%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은 숨은 공로자들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악귀'를 웰메이드로 만드는 숨은 공로자들이 드라마 제작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SBS 금토드라마 '악귀'(극본 김은희, 연출 이정림)가 TV-OTT 드라마 화제성 부문 1위와 한 주간 전채널에서 방영된 미니시리즈 시청률 1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무엇보다 민속학을 접목해 오컬트 장르를 한국화 하는 데 성공하고, 치밀하게 반전을 거듭하는 미스터리까지 절묘하게 결합시킨 웰메이드 장르물로 연일 호평 세례를 받고 있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1%의 디테일도 놓치지 않은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바로 홍승혁 촬영감독, 양홍삼 미술감독, 김준석 음악감독이다. 세 명의 감독이 '악귀'와 함께 했던 지난 여정, 그리고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포인트에 대해 직접 전해왔다.
사실 오컬트는 대중적 장르는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는 데다가, '무섭다'는 편견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감독은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최대한 진짜 같은 그림을 보여주려고 했다"면서, '돌직구 정면돌파'를 택했다고 밝혔다. "순간적인 장르의 쾌감을 위해 공포감을 극대화하거나, 잔인한 장면을 거칠게 묘사하는 걸 자제했고, 카메라 워킹을 진중하고 묵직하게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미술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대본을 보고, 이정림 감독과 논의 끝에, 공간이나 악귀가 허구처럼 보이는 순간 사람들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양감독은 "공부하지 않고 고증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답이 없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화원재를 만들 때, 서까래 크기까지 재고 고증했다는 그는 "리서치의 첫 번째 목적은 일본과 중국풍 소품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차이점을 공부하는 게 먼저였다"며, 전문가에게 의뢰했더니, 찾아봤던 '신당' 이미지가 일본의 잔재로 밝혀져 배제했다는 일화를 들려줬다.
시청자들을 배려한 디테일도 돋보였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 한국적 요소를 담아야겠다는 생각과 대중성을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는 김감독은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에 한국적 음악을 사용했고, 특히 악귀에 씐 산영이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중점을 뒀다"고 한다. 그래서 "극 초반에는 국악적 요소를 감추고 있다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시청자들에게 어느 정도 정보가 쌓인 중간 부분부터 국악적 요소를 살렸다. 연출, 촬영, 편집, 배우들의 신들린 연기에 도움을 주려 노력했다"는 포인트를 전했다. 이렇게 서사가 쌓여가며 인물들의 감정이 고조되거나, 미스터리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풍물 소리는 몰입도를 높이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악귀'에 등장한 공간은 그 디테일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감독은 특히 화원재와 해상(오정세) 본가의 대비를 강조했다. 화원재가 민초들의 세월을 쌓은 공간이라면, 해상 본가는 부를 지키려는 권력자의 아집의 공간이라는 것. "화원재는 미로처럼 길을 헤매다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공간, 옛 민초들의 사연을 켜켜이 쌓아 놓은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라는 양감독의 설명대로, 화원재엔 민속학자 강모(진선규)가 지역 조사와 연구로 모아 놓은 각종 자료와 물건이 쌓여 있고, 긴 복도 등의 복잡한 구조는 미스터리를 극대화시켰다.
반면, "일본 근대 건축이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조선 말기 그런 일본에 영향을 받은 권력자들의 가옥 형태를 모티브로 삼아 해상 본가가 탄생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해상 본가의 기업인 중현캐피탈의 시초가 된 중현상사는 일제 강점기 면화와 미곡 등 지역 물산 매매와 알선을 하던 회사였다. 그리고 서민들이 살고 있는 장진리의 아이를 죽여 악귀를 만들고, 그 힘을 종교처럼 신봉하며 대대로 부를 유지해 왔다. 해상 본가는 이와 같은 할머니 병희(김해숙)의 욕망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여기에 양감독은 "앞으로 남은 2회에서, 악귀가 된 '향이'와 관련된 공간이 나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혀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배우들의 명불허전 연기와 엄청난 에너지를 고스란히 전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홍감독은 이를 위해 "배우들의 섬세한 표정을 좀 더 가까이서 보는 느낌으로 라지포맷의 카메라를 사용하고, 망원렌즈 사용비율을 줄여 카메라와 배우 간의 물리적 거리를 가깝게 했다. 또한 콘트라스트를 높게 유지해, 배우들의 얼굴에 지속적으로 음영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이 산영과 해상의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느끼고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씨네페이드(Cinefade)'를 이용한 특별한 기법도 시도했다. 이는 렌즈 조리개와 ND필터를 연동시켜 '피사계심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장비다. 쉽게 말해 인물샷에서 배경의 포커스가 맞았다, 안 맞았다 하게 하는 것이다. "악귀에 씐 산영이 떼를 쓰던 아이의 인형을 칼로 망가뜨리는 장면에서 사용했는데, 배경 포커스가 상당히 뭉개졌다가, 산영의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 선명해지면서, 좀 묘하면서도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처럼 전문적 능력과 노고를 아끼지 않고 쏟았던 세 감독에게 '악귀'는 좀 더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다. 홍감독은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안 남는 작품은 없다. 하지만 '악귀'를 작품 전체적으로 보자면 120% 만족한다. 유난히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고, 유난히 멋진 배우와 믿음직한 연출자와의 작업이었다. 그래서 내 필모그래피에 '악귀'라는 글자가 좀 깊게 박힐 것 같다"고 밝혔다.
"고향이 전남 진도다. 대대로 가업으로 이어진 무속인들이 의술행위를 하듯 굿을 한다. 그런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다"는 양감독은 "시각적으로 의도했던 바가 잘 전달돼 작품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김감독은 "음악이 강요하기보단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에 보탬이 될 때 아무도 몰라주더라도 만족감을 느꼈다. 현대사회에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하며 이겨내 보자고 격려하는 메시지가 담긴 작품이라 여겨져 의미 있는 작업을 해냈다는 생각이 든다"는 소감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편 '악귀'는 매주 금, 토 밤 10시 방송된다.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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