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삼성 이건희 회장이 가장 사랑한 '애장품 1호' 청주에서 만나다

2023. 7. 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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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소장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그저 모으는 사람과는 다르다"

조선의 문인 유한준이 전설적인 서화 수집가 석농(石農) 김광국이 평생을 수집해 만든 화첩인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쓴 발문(跋文)이다. 유한준은 책 끝에 간략히 쓴 발문을 통해 "김광국은 그저 모으기만 한 사람이 아닌 진정 아는 자"라고 평가했다. 제대로 알면 그림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끝내는 소장하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석농 김광국이 어떤 수집가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본다. 김광국의 수집가 다운 면모가 기업가인 고(故) 이건희 회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진 건 아닐까.

석인상(조선, 화강암, 높이 130cm, 폭 35.0x38.0cm)


2021년 4월 고인이 세상에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품 등 23,000여 점은 세기의 기증이라고 할 정도로 큰 화제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건희 컬렉션의 추정 감정가는 3조 원, 시가는 10조 원이다. 그중 국보와 보물 등 지정 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미술품 2만 16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여기에는 아트홀릭 독자들도 잘 아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를 포함해 국가지정문화재(국보 14건, 보물 46건) 60건이 담겨있다. 또 단원 김홍도의 그림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를 비롯해 서적과 도자기, 고지도 등을 포함하고 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한국 고고 미술사를 망라하는 A급 기증품이고 박물관 개관 이래 최대의 경사"라고 밝힌 바 있다.

이렇듯 미술사적 가치와 규모가 큰 이건희 컬렉션이 지금 충북 청주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중이다. 고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에서 말이다. 이달 25일 시작된 특별전에서는 앞서 언급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를 비롯해 서화, 도자, 금속 공예품 등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다. 한마디로 국보(國寶)와 보물(寶物)의 대향연(大饗宴)이다. 국가지정문화재 18건을 포함해 총 201건 399점의 기증품을 모았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을 수집한 고미술품(古美術品)과 고고 미술사 분야의 작품들이다. 혹여나 하는 노파심에 말하지만 이번 국립청주박물관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은 한국 근현대작가들의 회화와 조각 등을 전시하는 경기도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 특별전과는 결이 다르다.

구담봉도(윤제홍,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먹, 28.2x42.1cm)


그렇다면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의 관람 포인트는 무엇일까. 전시를 기획한 국립청주박물관 김동완 학예연구사는 지난 24일 본인과의 전화 통화에서 "기존 전시품 이외에도 구담봉도(龜潭峰圖), 충주반 등 충청도의 특색이 살아있는 전시물을 포함시켰다"라며 "특히 박물관 야외 정원 전체에 석조물(문화재)로 정원을 조성했는데 이는 광주, 대구와는 다른 큰 차이점"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청주는 광주와 대구에 이어 세 번째 개최 도시다. 2022년 국립광주박물관이 첫 시작이었고 2023년 국립대구박물관 그리고 이번에 국립청주박물관의 차례가 된 것이다. 이는 각 시립과 도립 미술관의 이건희컬렉션이 그랬듯 지방 문화의 향유권을 확대하기 위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속 박물관의 순환 전시다.

고 이건희 기증 석조문화재 야외 정원


나는 국립청주박물관을 전시 오픈날(25일)에 찾았다. 약간 먹구름이 낀 흐린 날이었지만 박물관 정원에서 반겨주는 다양한 석조물들이 어서 오라며 환영해 주는 듯했다. 풍화(風化)가 진행되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석조물들. 정원을 산책하며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크고 작은 석조물들이 일렬로 서 있는 모습은 참 귀여웠다. 마을을 지켰던 돌 장승, 관복을 갖춰 입고 손을 가슴에 모은 듯한 문인석(文人石) 등 각양각색의 석인상은 그동안 국립청주박물관의 별도 시설에서 관리되어 왔다. 국립청주박물관에 따르면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836점의 석조문화재 가운데 210여 점을 박물관 정원과 로비 그리고 입구에 배치했다고 한다. 박물관 측은 야외 정원을 거닐며 무심하게 서 있는 석상의 얼굴을 바라보고 손에 쥔 물건들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거라고 밝혔다.

인왕제색도(정선, 조선 1751년, 종이에 먹, 79.2x138.0cm, 국보)


본 전시에서는 중∙고등학교 미술∙국사 교과서에도 빠지지 않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가 단연 압권이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조선 1751년)는 한국 전통 회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비가 갠 후 인왕산 분위기를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畫)다. '인왕'은 서울의 인왕산을 말한다. 제(霽)는 '비나 눈이 그치다'라는 뜻이다. 인왕산 인근에서 평생을 살던 정선. 늘 바라보던 인왕산 풍경을 보며 "언젠가 그림으로 꼭 남겨야지" 하고 생각하진 않았을까. 사실 당시에는 상상의 풍경만을 그리는 관념산수화가 주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다른 화가들은 주변 풍경을 그릴 생각조차 없었을 터. 이는 조선 초기부터 몇 백 년 동안 이어져온 중국의 영향이다. 조선 전기의 화가 안견의 대표작인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가 그렇다. 이런 시대 흐름에서 전통을 여지없이 깬 정선의 인왕제색도는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이자 그가 말년에 그린 명작이다. 참고로 국보인 인왕제색도는 1970년대 이건희 회장이 '수집품 1호'로 매입하고 50년 가까이 소장해왔다. 국보로 지정된 건 1984년이다. 이번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에서 인왕제색도는 8월 20일까지 전시되고 그 이후엔 또 다른 고미술품으로 교체되어 전시된다.

추성부도(김홍도, 조선 1805년, 종이에 엷은 색, 55.8x214,7cm, 보물)


그중 보물인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조선 1805년)는 오는 10월 11일부터 만나볼 수 있다. 보물 제1393호인 추성부도는 한마디로 고독한 가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중국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 구양수가 지은 수필인 추성부(秋聲賦)를 주제로 그렸다. 가을바람 소리에서 삶과 죽음의 섭리를 느껴 지은 추성부 '가을바람 소리를 표현한 시'를 그림의 여백에 써서 추성부도를 완성했다. 김홍도의 그림 중 연도가 확인되는 마지막 작품이다. 장진성 교수(서울대 고고미술학과)에 따르면 임금 정조의 후원 속에 그는 화가로서 빛나는 인생을 살았지만, 말년에는 아들의 한 달 치 교육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곤궁했으며 생사를 오갈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매우 위중한 상태에서 김홍도는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추성부도'를 그렸다. 죽음 직전 김홍도는 사력을 다해 추성부도를 완성한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추성부도는 생전 이건희 회장의 '애장품 1호'였다고 한다. 추성부도가 담고 있는 인생 풍경과 기업가로서 자신의 삶에서 오는 감정들이 통했던 걸까. 이유는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김홍도는 조선 최고의 화가임에 틀림없다.

백화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조선 18세기, 높이 41.0cm, 국보)


이외에도 아트홀릭에서 소개하지 못한 진귀한 국보와 보물들이 가득하다. '금동보살삼존입상'(국보 삼국시대 6세기), 반야심경이라 부르는 경전인 '초조본 대반야바라밀다경 권249'(국보 고려 현종), 조선백자의 수준 높은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작품인 '백화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국보 조선 18세기), 한글로 풀어서 쓴 최초의 불경책인 '석보상절 권11'(보물 조선1459년), 충북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윤제홍의 '구담봉도'(조선 19세기) 등 다양하다.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장은 " 특별전을 통해 한 기업가로서 전통문화를 아끼고 수집했던 수집가의 면모를 보여주고자 했다"라며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수집가의 안목과 취향으로 모은 수집품들이 청주를 찾은 손님들이 우리 역사가 만들어낸 명품들을 감상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관람 예약은 '국립청주박물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관람이 가능한 날과 시간을 선택해 예약하면 된다. 시간대 별 예약이 가능한 인원은 선착순 100명. 관람료는 무료다. 관람 시간은 총 1시간. 관람이 종료되는 시간 10분 전쯤 이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더불어 전시 이해를 위한 안내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 시간 여유를 갖고 전시장 초입의 서문도 읽어보고 작품에 대한 설명도 충분히 살펴보길 권한다. 더불어 작품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해설 그리고 시력이 좋지 않은 분들을 위한 큰 글씨 책자도 있다. 국보와 보물의 대향연(大饗宴)인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가 충북 청주에서 아트홀릭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시는 10월 29일까지. 장소는 국립청주박물관.

참고로 오는 8월 19일(토) 아침 6시 CJB라디오 '굿모닝조이FM 정승조입니다'에서는 '전시여행전문가 스미스연(Smith Yeon)'과 함께 국립청주박물관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편을 방송할 예정이다. 많은 청취바란다.

(사진 제공 국립청주박물관)

정승조 아나운서 /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방송인으로 CJB청주방송, TBN충북교통방송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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