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부상→또 최전선... 총알받이 된 러시아 죄수 용병들

이혜진 기자 2023. 7. 2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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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죄수 용병 세르게이(가명·왼쪽)와 안드레이. /CNN 보도화면 캡처

한 죄수 용병은 두 번이나 총에 맞았지만, 다시 최전선으로 보내졌다. 그곳엔 물도 없었고, 눈을 녹여 마셔야 했다. 그는 수류탄을 맞고 잠시 실명될 때까지 우크라이나 진지를 공격해야 했고, 참호에서 겨우 구해졌다. 마약 혐의로 수감돼 전선으로 보내진 한 죄수 용병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장에 투입돼 3주만에 사망했다. 이들은 러시아 국방부가 운영하는 소위 ‘Storm-Z(스톰-Z·전과자로 이뤄진 부대)’에 사면을 약속받고 전쟁에 합류했다.

◇최전선→부상→또 최전선... 기강 잡으려 ‘처형’도

25일(현지 시각)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의 주도 하에 일정기간 참전 후 사면을 약속받고 전장에 투입된 러시아 죄수 용병이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증언했다. 이들은 전차와 장갑차 없이 보병으로만 구성된 스톰-Z에 소속돼 제대로 된 훈련조차 받지 못한 데다 낡은 무기만 지급받은 채 투입됐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죄수 용병 중 한 사람인 세르게이(가명)는 CNN에 최전선에서 8개월간 근처에 떨어진 포탄에 맞아 9번이나 뇌진탕을 앓았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그는 다리에 총상을 입고 10일간의 치료 끝에 다시 전선으로 보내졌다. 전선에 재투입된 이후 어깨에 총을 맞고 또 치료를 받았지만, 병력 부족으로 두 달만에 다시 최전선에 투입됐다. 무전 임무를 수행한 세르게이는 방탄조끼조차 없이 최전선에 다시 배치됐다고 한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포격 정확도는 매우 높았다. 하지만 우리(러시아군) 포탄은 고작 서너번 밖에 발사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정확도가 떨어졌다”고 했다.

죄수 용병들은 참전 초기 ‘총알받이 부대’로 불렸을 만큼 병력이 약했고, 전사자는 속출했다. 세르게이는 “2022년 10월에 모집된 전과자 용병 600명 중 아직 살아있는 사람은 170명 정도에 불과하고, 생존자 중에서도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3~4차례의 부상을 입었다”며 “포탄에 동료들이 쓰러지는 걸 봤고, 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고 했다.

세르게이는 러시아 참호의 열악한 상황도 폭로했다. 가장 힘든 것은 물을 구하는 일이었고, 물을 얻으러 3~4㎞를 걸어야 했다. 며칠 동안 먹지 못한 날도 부지기수, 겨울에는 눈을 녹인 물을 마셔야 했다. 그는 러시아군에서 ‘처형’을 통해 규율이 유지됐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사령관은 참호에서 싸움을 벌인 죄수 용병의 머리에 총을 쐈다”며 “그가 도망치려 했을 때 이미 총알이 그의 뒤통수를 관통했다. 그들은 그를 데려갔다”고 말했다.

세르게이는 현재 전장을 떠나 가족을 부양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상에 대한 군 보상을 기다리고 있다. 포탄 충격으로 밤이 되면 귀가 울려 적막 속에서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한다.

◇소년티 못 벗은 아들, 3주만에 전장서 사망

전장에 투입된 지 3주만에 사망한 안드레이(23)의 어머니 율리아도 CNN 인터뷰에 응했다. 율리아에 따르면 제복을 입어도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안드레이의 마지막 모습은 햇볕에 그을린 얼굴로 헬멧을 쓰고 군용 트럭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 5월 8일, 안드레이는 율리아에게 이번 전쟁의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으로 보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율리아는 안드레이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며 “나는 아들이 죽을 것 같았고, 아들은 모든 것을 알고도 전장으로 떠났다”며 “아들에게 매일 ‘안돼(가지마)’라고 말했지만 아들은 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다. 율리아는 “(아들이 참전한다고 했을 때)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들이 누군가를 죽인 후 살인자로 나에게 돌아올까봐 두려웠다”며 “아들이 비록 마약 중독자였지만, 살인자 아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후 율리아에게 들려온 소식은 한꺼번에 러시아군 60명이 전사했다는 말이었다. 그는 “아들은 다른 죄수 용병과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면서 “국방부는 아들이 사망했다는 편지만 보냈을 뿐, 시신이나 소지품을 가족에게 돌려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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