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역대 최다'의 연속…마약과의 전쟁, 이길 수 있을까

강민우 기자 2023. 7.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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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필로폰 수출국'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세계 최대 필로폰 수출국'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불과 30여 년 전의 일입니다. 필로폰을 밀조하는 전문 조직이 전국에 있었습니다. 타이완에서 '필로폰 원료'라 할 수 있는 염산에페드린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일본으로 수출하는 식이었습니다.
 
"일본경찰은…(중략)…재일교포 이 모 씨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한국산 필로폰 분말 21kg은 일본시가로 4억 2,000만 원이나 되어 전후 (戰後) 최대의 마약 사건으로 알려지고 있다.
- 1970년 7월 4일 자 동아일보 中

1970년 일본의 '태평양전쟁 이후 최대 마약사건'도 한국에서 넘어간 필로폰에서 비롯된 것이었을 정도로 70~80년대 일본 경찰에게 '한국산 필로폰'은 크나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일본 전체 밀매량의 90%가 한국산이었던 해도 있었습니다. 태평양 건너 미 서부로도 한국산 필로폰이 유입됐습니다.

'한국산 필로폰'이 자취를 감추게 된 건 1989년 대검찰청에 마약과가 신설된 직후 집중적인 단속이 이뤄진 이후였습니다. 2년 동안 마약 밀조 조직에 대한 집중 단속을 펼쳐, 최재도파, 이시수파, 피터팬파 등 대규모 밀조조직 18개 파를 검거했습니다.
 
일본 경찰청 관계자는 1982년 일본 전체 밀매량의 88.3%(약 2,000kg)이던 한국산 필로폰이 1983년 70.2%, 1988년 37.5%, 1989년 12.2%로 급격히 줄어들어 지난해(1990년) 한 건도 적발되지 않은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 1991년 3월 11일 자 동아일보 中

당시 국내 언론은 이를 두고 '20여 년 동안 필로폰 세계 최대 수출국이라는 국제사회의 오명을 벗어던진 분수령 사건'이라고 평했습니다.
 

그 후 30년…'역대 최다'의 연속

우리나라가 '마약청정국'(이 용어 자체의 출처와 근거 모두 불명확하기는 하지만)이라고 자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마약류 사범 검거나 거래량 추세를 볼 때 청정국이라고 지칭할 만한 시기가 없었던 것도 사실입니다만, 적어도 대낮 학원가에서 누군가 건네주는 음료에 마약이 들어있지는 않을까, 그걸 우리 아이들이 모르고 마시지는 않을까 걱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역대 최다'라는 수식어가 끊이지 않는 최근 마약 관련 통계 수치를 보면 걱정이 더 커집니다. 관세청이 지난 25일 밝힌 2023년 상반기 마약 밀수단속 규모는 '역대 최다'인 329kg으로 집계됐습니다. 마약류 밀반입의 대형화도 포착됐는데, 올해 처음으로 건당 적발량이 평균 1kg을 넘어섰습니다.

지난 5일,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 사범은 5년 전보다 45.8% 늘어난 1만 8천395명에 달했습니다. 이 가운데 다크웹 사이트 등 인터넷과 가상화폐 사용에 익숙한 30대 이하가 전체의 60%에 육박했습니다. 2018년과 비교했을 때 젊은 층 마약 사범은 109%, 2배 이상 폭증했습니다.

이러한 마약류 사범 증가의 원인을 두고 여러 분석이 있습니다. 과거 마약 전과자들을 중심으로 마약상을 소개하고 서로 암거래로 이뤄지던 마약 거래가 다크웹과 보안메신저 발달로 '해외 직구'를 하는 등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 걸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습니다. 마약범죄가 단일 국가가 대응하기에 벅찬 초국가적 범죄가 됐고, 마약 조직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수사기관 추적을 따돌리고 있습니다. 마약에 그토록 엄격하다는 미국조차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에 즐비한 '마약 좀비'에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마약과의 전쟁, 승리할 방도는 없는 걸까요?
 

"늦었다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장기전 준비해야"


마약 관련 수사 일선에 있는 이들의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신준호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은 다변화한 마약 유통·거래로 수사가 어려워진 점 자체는 일부분 인정하면서도 '현저히 떨어진 마약에 대한 경각심과 죄의식'을 지적했습니다. 마약에 손을 대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을 거라는 인식이 꽤나 팽배해졌다는 겁니다. 신 부장검사는 활발한 수사를 통해 경각심을 다시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관이 자주 순찰하는 지역에 범죄가 덜 일어난다. 마약 수사를 활발하게 하면 그런 예방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믿는다."

김보성 대검찰청 마약과장은 "실제로 올해 초 '마약범죄특별수사본부'가 출범했을 때 일시적으로나마 마약류 거래 등이 줄어드는 추세가 보였다"며, 수사 의지에 따라 마약 범죄의 증감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마약수사는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며, "마약 범죄의 국제 트렌드를 읽고 그에 맞는 수사기법과 장비를 개발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하며 노하우를 쌓는 게 중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마약류 밀조 행태를 뿌리 뽑아 '분수령'이 됐다는 1990년대 초에도 마약류 사범 수는 증감을 거듭하며 일진일퇴를 거듭했습니다.
 
지난 1985년 1,190명이던 마약류 사범이 1987년 2,016명, 1989년 3,876명, 1990년 4,222명 등으로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1991년 6월 23일 자 조선일보 中
 
1990년 이후 감소추세를 보이던 전체 마약류 사범수가 올 들어 지난해(1992년) 같은 기간보다 2.5배나 급증했다.
- 1993년 7월 23일 경향신문 中

마약류 사범 수 통계 변화를 보면 좀 더 명확히 드러납니다. 국내 마약류 사범 수는 1999년 처음 연간 1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2002년도까지 매년 1만 명을 상회하다가 2002년 필로폰 밀수조직 강력 단속으로 2003년도부터 2006년도까지 4년 간 연간 7천 명대로 감소했습니다. 2010년도부터 2014년도까지 매년 1만 명 미만을 기록하다가 2015년도에 다시 1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처럼 밀고 밀리는 마약과의 전쟁이기에 최근 마약에 대한 엄정 대응 필요성이 강조되는 게 호들갑 아니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 변화를 보다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2022년도는 1만 8천395명을 기록했습니다. 2023년도는 처음으로 2만 명을 넘어설 거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연간 마약류 사범 수가 처음 1만 명을 넘어선 1999년 이후 16년 간 변화는 크지 않았습니다. 매년 등락은 있었지만 1만 명 안팎에 머무르는 추이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2015년에 다시 1만 명을 넘어선 이후 좀처럼 증가세가 꺾이지 않았고, 올해 2배인 2만 명 대를 기록할 걸로 보입니다. 16년 동안 1만 명 안팎을 유지해 온 국내 마약류 사범 수가 '더블링'되는 데에 절반의 시간, 8년밖에 걸리지 않은 겁니다.

일선 수사관들은 이러한 수치를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놨지만 공통되는 한 의견이 있었습니다. '지금 억제하지 않으면 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지난 4월, "응급처치에도 골든아워가 있듯이, 지금이 우리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마약범죄로부터 지켜야 할 골든아워"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역대 최다'를 기록하는 걸 보다 보면 '혹시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과연 이길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문득 들기도 합니다. 이 질문을 한 부장검사에게 던졌을 때 돌아온 답이 인상 깊었습니다. 머지않은 시점에 마약과의 전쟁에서 승전보를 들을 수 있길 기대합니다.
 
"조금 늦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어쩌면 가장 빠를 때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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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우 기자 khanport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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