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피자헛이 적자 경쟁할 때 4P’s가 웃는 이유[가깝고도 먼 아세안](15)
베트남에선 한국 대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반면 작은 식당으로 시작한 소기업이 글로벌 기업을 제치고 최고 실적을 거두는 ‘반전 드라마’를 쓰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브랜드들의 무덤인 베트남 피자 시장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피자 브랜드들의 무덤, 베트남
세계 최대 커피 브랜드인 스타벅스나, 햄버거의 대명사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베트남에선 고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주간경향 1408호 ‘스타벅스 커피는 왜 인기가 없을까’). 미국의 패스트푸드 전문 매거진인 ‘QSR’은 해마다 미국 최상위 50개 패스트푸드 체인의 점포 수와 매출 현황을 보도하는 ‘QSR 50’을 발표한다. ‘QSR 50, 2022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도미노피자는 미국 전역에서 6560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연매출 86억4000만달러(약 11조2000억원), 피자헛은 6548개 매장으로 연 매출 55억달러(약 7조1500억원)를 기록한 초대형 기업들이다. 이 두 브랜드는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글로벌 위상에 어울리지 않게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글로벌 유명 브랜드라 하더라도 베트남 시장에 적합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음을 보여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 기준 피자헛은 베트남 전역에 128개 점포를 운영하며, 7490억베트남동(약 37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미국 1위 도미노피자를 운영하는 베트남 IPP사는 버거킹과 파파이스도 함께 운영 중인데, 도미노피자 실적을 별도로 분리해 공개하지 않는다. 다만 도미노피자 점포 수가 피자헛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 47개 매장인 점에 비춰 연간 200억원이 채 안 되는 매출을 기록 중일 것으로 추정한다. 고급 호텔과 여러 글로벌 패스트푸드 브랜드를 거느린 태국 마이너 그룹의 피자 브랜드이자 태국 시장점유율 60%인 ‘더피자 컴퍼니’는 베트남에서 75개 매장을 운영하며, 6170억베트남동(약 308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베트남에서 2위다. 피자헛과 더피자 컴퍼니, 도미노피자는 경쟁적인 할인과 1+1 프로모션으로 연간 500억~1000억베트남동(28억~56억원) 적자를 기록 중이다.
반면 눈여겨봐야 할 브랜드로 피자 4P’s가 있다. 2019년 5680억베트남동(약 284억원) 매출을 기록했다. 베트남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 사이에서도 유명한 피자 4P’s는 2012년 30대 초반 일본인 부부가 호찌민에 개업한 일본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시작했다. 2023년 7월 현재 베트남 전국에 3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프놈펜에도 1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2019년 글로벌 피자업계 1·2위 브랜드들이 저가 할인 경쟁을 벌이며 적자를 기록할 때 이 무명의 브랜드는 흑자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매장 운영에 어려움이 발생해 2020~2022년은 적자를 기록했지만 적자 금액이 연간 5억~10억원 내외로 회사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2022년에는 흑자로 돌아섰다. 게다가 주요 4개 피자 브랜드 중 점포 수는 가장 적지만 매출 규모는 점포 수가 2배 가까이 차이 나는 브랜드와 비슷했다. 영업이익도 흑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브랜드도 베트남 굴지의 대기업 브랜드도 아닌 일본인 개인이 창업한 이 브랜드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폼나게 먹는 레스토랑 피자 4P’s
피자헛과 도미노피자, 더피자 컴퍼니는 미국식 배달 피자다. 베트남 사람들은 집에 머물기보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피자헛이나 도미노피자는 배달 중심의 매장을 운영하다 보니 외식을 선호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1990년대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에서도 50대 이상보다는 30대 미만의 어리고 젊은 사람들이 피자를 선호한다. 피자 브랜드 매장이 집중된 호찌민과 하노이 같은 대도시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주거 공간은 비좁고 냉방시설도 잘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기엔 불편한 환경이다.
이에 반해 피자 4P’s는 합리적인 가격의 고급 레스토랑이다. 화덕에 구운 피자 가격이 16만~30만베트남동(8500~1만5500원), 스파게티는 15만~20만베트남동(7800~1만1000원)이다. 주머니 사정이 얇은 젊은 층일지라도 가끔 외식하는 데 큰 부담이 없는 가격이다. 게다가 현대적인 디자인에 고급스럽고 깔끔한 인테리어가 멋있게 옷을 차려입고 외식을 할 수 있도록 이끈다. 친구들과 어울려 먹으면서 멋진 인테리어와 이국적인 음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개인 SNS에 자랑하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미국식 배달 피자가 아닌 화덕에 구운 정통 이탈리안 피자가 베트남 사람들의 입맛에 맞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베트남에도 이탈리아인 셰프가 직접 반죽해 화덕에 구운 피자를 파는 가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고급 정통 이탈리안 식당들은 현지 못지않은 높은 가격대라 일반 베트남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피자 전문점은 식당 인테리어가 볼품이 없었다. 이에 반해 피자 4P’s는 ‘일본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일본식 불고기 피자와 토마토 크림소스에 게 내장과 게살을 넣어 볶고 스파게티 위에 게딱지를 통째로 올렸다. 이 스파게티가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다. 또한 여기서 사용하는 치즈는 모두 피자 4P’s가 베트남의 대관령이라 불리는 달랏에 있는 직영 목장에서 생산한 것이어서 신선하다. 복주머니 모양의 신선한 부라타 치즈를 얹은 샐러드나 연어 치즈 스시는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다. 일본 식당 특유의 섬세함과 친절함이 여기서 근무하는 베트남 직원들에게도 제대로 교육이 돼 있어 손님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글로벌 표준이 채 정립되지 못한 신흥 시장에서 현지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추지 못하면, 글로벌 공룡 기업이라도 무너진다. 또 소자본으로 시작한 작은 기업이라도 강점을 현지 시장에 맞춰 풀어내기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베트남 진출 기업들이 꼭 숙지하길 바란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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