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타임] '클라이밍 맘'된 암벽여제 김자인, "포기하지 않는 엄마 되고 싶었어요"
[스포티비뉴스=수유동, 조영준 기자/이충훈, 김한림 영상 기자] "여러 가지 계기로 계속 선수 생활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는 딸 때문이었죠. 나중에 (딸) 규아가 '엄마는 왜 은퇴했어?'라고 물으면 '너를 출산하면서 은퇴했다'라는 말보다 '내가 도전해 보고 싶을 때까지 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김자인(35)이 20대 시절, 그의 별명은 많았다. 스포츠클라이밍의 '살아있는 역사'인 그는 '암벽여제'로 불렸다. 또한 암벽을 오르는 등반 동작이 매우 우아해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고도 했다.
그런 김자인이 지금은 '클라이밍 맘'으로 불린다.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의 환한 미소가 여전한 그는 최근 국제스포츠클라이밍(IFSC) 월드컵 리드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처음 취재했을 10년 전에도 김자인은 IFSC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였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서 30대 중반, IFSC 월드컵 정상에 오른 경우는 매우 드물다. 2019년 10월 일본 인자이 월드컵 우승 이후 4년 만에 정상을 탈환한 김자인은 자신의 월드컵 우승 횟수를 '31'로 늘렸다.
김자인은 주 종목인 리드에서 월드컵 금메달을 30개나 따냈다. 또 볼더링에서도 한 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IFSC 월드컵 사상 단일 종목에서 30개의 금메달을 따낸 이는 김자인밖에 없다. 한국 스포츠클라이밍의 역사를 홀로 갈아치운 그의 등반 여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엄마의 이름으로' 돌아온 암벽 여제
김자인은 2021년 딸 오규아(2)를 출산했다. 엄마가 된 뒤 1년이 지난 작년 3월에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지만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그러나 철저한 자기관리로 전성기에 버금가는 기량을 회복했고 지난 3월 3년 만에 태극마크를 탈환했다.
IFSC 월드컵 출전 기회를 잡은 김자인은 누구도 믿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는 지난 10일(한국시간)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린 2023 IFSC 월드컵 9차 대회 여자부 리드 결승에서 43+를 기록, 일본의 구메 노노하(38+)를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예전 우승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 느낌이 달랐어요. 출산한 이후에 다시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얼떨떨했고 저한테는 큰 선물이었죠."
20대 시절, 김자인은 쟁쟁한 선수들과 IFSC 월드컵에서 메달을 놓고 경쟁했다. 당시 경쟁자들은 모두 은퇴했고 서른 중반에 선수로 암벽에 오르는 이는 김자인뿐이다. 지금은 지도자가 된 옛 경쟁자들은 김자인에게 존경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우승하면 또래 해외 선수들은 그냥 '축하한다'라고 해줬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저도 감사하게 '축하한다'와 더불어 'Respect(존경)'라는 말도 해주셨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도 김자인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세계 정상을 지켰다. 여자 운동선수로는 매우 힘든 출산도 경험했지만 그의 기량은 녹슬지 않았다. "20대 시절과 비교해 힘든 점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몸 자체나 컨디션보다는 코스 추세를 따라가는 게 힘들다"고 말했다.
"출산한 지 2년이 지났는데 지금 느끼기에는 몸 자체와 컨디션은 예전과 비교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대회에 나가면 어려움을 느끼는 점은 코스 트랜드가 계속 바뀐다는 점이죠. 과거에는 정적이고 기술과 체력을 요하는 코스가 많았는데 지금은 매우 동적이고 화려한 코스가 많아요."
육아와 운동은 병행하기에 훈련 시간도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김자인은 "운동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짧은 시간에 고강도로 효율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틈새 시간도 활용한다"라고 말했다.
김자인은 지난 4월 서울 강북구 수유동에 암벽장을 열었다. 과거 친오빠인 김자하(39) 김자비(36)와 암벽장을 운영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건 훈련장이자 사업장의 대표가 됐다.
김자인의 하루 일과는 오전 딸 규아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뒤 이곳 암벽장에 도착해 훈련에 집중한다. 이후에는 다시 육아를 하는 등 바쁜 '워킹맘'의 일상을 보내고 있다.
'평생의 꿈' 올림픽 도전, '암벽 여제'가 다시 등반을 시작한 또 하나의 이유
김자인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선물인 규아를 얻은 뒤 그는 은퇴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다시 암벽을 등반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가장 큰 이유는 '딸' 규아 때문이었다.
"나중에 규아가 '엄마는 왜 은퇴했어?'라고 물으면 '너를 출산하면서 은퇴했다'라는 말보다 '내가 도전해 보고 싶을 때까지 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런 어머니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번 IFSC 샤모니 월드컵에서 우승한 뒤 김자인을 향한 찬사는 곳곳에서 터졌다. 특히 운동선수가 엄마가 된 이후에도 국제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점을 몸소 증명했다. 한국 여성 스포츠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엄마 선수'의 지속적인 활약 여부다.
스포츠 선진국인 서구 국가와 비교해 한국은 여전히 출산 이후에도 마음껏 기량을 펼치는 선수들은 드물다. 이런 현실에서 김자인은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제가 엄마 선수로 우승하면서 이미 출산을 하신 운동선수뿐만이 아닌 모든 어머니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됐으면 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고 많이 응원해 주신 점도 감사드려요."
스포츠클라이밍의 '전설'이 된 김자인은 여전히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다. 바로 항상 꿈꿔왔던 '올림픽 출전'이다.
"파리 올림픽 출전을 향한 마음도 계속 선수 생활을 하는 큰 이유입니다. 지도자나 해설위원이 아닌 선수로 올림픽에 서보는 것은 오랜 꿈이었죠.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 힘으로 (올림픽에) 가고 싶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다음 달 1일부터 12일까지 스위스 베른에서 IFSC 스포츠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 컴바인(볼더링 + 리드)에서 입상하면 내년 열리는 2014 파리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다. 만약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놓쳐도 내년 열리는 올림픽 선발전과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다시 노릴 수 있다.
김자인의 최종 목표는 파리올림픽 출전이다. 내년에는 가장 큰 무대인 올림픽 출전에 도전하고 이후에는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다.
김자인은 "개인적인 로망은 규아와 취미로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적인 선수로 키워볼 마음이 없냐는 질문에는 "만약 자기가 원해서 하겠다고 하면 뜯어말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규아가 크면 함께 이 종목(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고 싶어요. 그런데 만약 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뜯어말리지는 않겠습니다.(웃음) 저도 이 운동을 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행복도 느꼈기 때문이죠.(웃음)"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