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의 아름다운 변주곡 연주… 불면의 밤을 달래준다[이 남자의 클래식]
‘아리아’주제로 시작해 마무리
‘불면증’백작 위해 작곡 일화
‘3의 배수’변주곡 음정1도 올라
수학적 구조 발견 재미도 쏠쏠
장마가 지나가고 무더위가 절정인 ‘잠 못 이루는’ 요즘이다. 지금처럼 열대야에 잠들지 못해 몸을 뒤척이거나, 여러 가지 잡념으로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불면의 밤을 달래 줄 클래식 음악이 있다. 바로 1742년 작곡된 바흐(1685∼1750)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이다. 독일 출신의 음악사학자 포르켈(1749∼1818)이 저술한 ‘바흐 최초의 전기’ ‘바흐의 생애와 예술, 그리고 작품’에 따르면, 이 곡에 얽힌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러시아 대사로 독일 드레스덴에 파견됐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백작은 고육지책으로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의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 악기) 연주자를 채용해 밤마다 ‘수면용 음악’을 연주케 해 잠을 청해 보려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 했다. 백작은 평소에 친분이 두터웠던 바흐를 떠올렸고 “나의 불면증이 심하니 선생께서 부디 잠을 청하기에 좋을 만한 작품을 하나 써 달라”며 바흐에게 간청했다.
카이저링크 백작은 바흐가 작센(sachsen)주의 궁정 작곡가가 되는 데 큰 도움을 준 인물로 바흐는 백작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바흐는 바로 작업에 착수해 백작을 위한 ‘2단의 손 건반을 가진 하프시코드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개의 변주곡’이라는 제목의,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긴 길이의 작품을 완성해 건넸다.
백작은 자신의 전속 연주자인 골드베르크에게 바흐에게 건네받은 이 ‘수면용 변주곡’을 연주케 했고 효과는 실로 만점이었다. 백작은 크게 흡족했고, 금잔에 금화를 가득 담아 바흐의 연봉을 웃도는 큰 금액의 사례금을 바흐에게 하사했다. 이후 백작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마다 골드베르크가 이 작품을 연주했다고 하는 것에서 유래해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우정을 담은 흥미로운 일화이지만 이 이야기를 전적으로 신뢰하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들이 있다. 첫째로 과연 바흐가 이 작품을 카이저링크 백작에게 헌정했느냐는 점이다. 당시의 관례로는 누군가의 주문으로 완성된 작품일 경우, 작곡가는 악보의 표지에 ‘누구에게 헌정함’이라는 구체적인 문구를 기입해 주문자의 이름을 밝혔기 때문이다.
둘째로 백작의 전속 연주자였던 골드베르크가 이 작품을 매일 밤 백작을 위해 연주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당시 골드베르크의 나이는 14세로 이 어렵고 방대한 변주곡을 연주하기엔 피아노 실력이나 연륜이 그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란 추측이다.
최근 음악학자들이 내놓은 합리적인 추론은 이렇다. 드레스덴에서 카이저링크 백작을 만난 바흐는 평소 친분이 깊었던 그에게 이 변주곡을 들려줬을 것이고, 작품에 크게 감동한 백작은 큰 액수의 금화로 바흐의 업적을 치하했을 것이라는 것. 이후 백작은 특별히 좋아했던 이 작품을 잠 못 이루는 밤이든 깨어있는 대낮이든 종종 연주를 청했을 것이고, 백작을 위해 늘 연주하고 있었을 골드베르크의 이름을 붙여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별칭이 붙게 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오늘의 추천곡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과 함께 음악 사상 가장 위대한 변주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첫 주제인 ‘아리아’를 시작으로 주제에 의한 30개의 변주가 뒤따르고 다시 처음 등장했던 주제로 마무리를 짓는 수미쌍관의 구조로 되어 있다. 작품은 크게 처음부터 15변주까지의 전반부와 16변주부터 마지막까지의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품엔 캐논, 푸게타, 환상곡, 서곡 등의 다양한 악곡 양식들이 녹아 있어 청자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다채로운 음악 양식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 3의 배수인 변주곡(3곡, 6곡…27곡)에선 음정이 1도씩 올라 음악의 수학적 구조를 발견하는 재미 또한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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