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위에서 당내 비주류 택한 ‘일잘러’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
책상 하나를 달랑 들고 이미지 컨설팅 회사 ‘예라고’를 창업한 20대 후반, 허은아 의원은 “네가 성공하면 장을 지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두고 보자, 이것들.”
허은아(51)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이 "‘흙수저’ 집안 출신"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항공 승무원을 거쳐 정재계 리더들의 PI(President Identity) 전략가로 활동한 화려한 커리어와는 사뭇 다른 고백이다. 그는 2020년 1월 당시 자유한국당에 '이미지 전략가’ 영입인재로 발탁됐다. 그리고 제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9번에 공천됐고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최근 그가 다시 회자된 것은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치르면서다.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천하람 국민의힘 전남 순천갑 당협위원장, 김용태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과 함께 '천아용인’으로 불리며 보수 개혁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았다. 허 의원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체제에서 수석대변인을 맡으며 그와 인연을 쌓았다.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바람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고위원 당선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해 국민의힘 서울 동대문을 당협위원장 공모에 탈락하고는 "‘친윤’(친 윤석열)이 아니면 다 나가라는 것"이냐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기도 했다.
최고의 이미지 전략가 커리어에서 택한 정치. 그런 그가 당내 비주류 노선을 타기로 한 데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7월 17일 만난 허 의원은 "짧은 정치 생활 중 수석대변인 시절과 지난 전당대회에서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국민의힘이 자유와 공정의 정신을 강조해온 만큼 말한 대로 지키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장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삶에 대해 물었다.
"바닥부터 시작한 창업"
어릴 적 꿈이 승무원이었나요.사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어요. 집이 가난해서 비행기라는 걸 타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선생님이나 PD가 되고 싶었는데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요(웃음).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항공운항과를 권유했어요. 취업도 잘되고,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셨죠. 인하공업전문대학에 차석으로 합격해 졸업 전 대한항공에 입사할 때까지 학교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대학에서 제대로 못 논 게 한입니다.
승무원 경험은 어땠나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과거로 돌아가서 같은 선택을 할 거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아요. 지금으로 말하면 흙수저 집안에서 자라 소풍에 사이다 한번 들고 간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승무원 일을 하면 해외를 다니게 되잖아요. 당시는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보편적이지 않을 때라 자연스럽게 트렌디한 사람이 됐어요. 서비스에 대한 개념도 많이 배우게 됐고요. 또 서비스직 아르바이트를 해보신 분은 공감하실 텐데 멘털이 많이 강해졌어요. 그 경험들이 나중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5년의 승무원 생활을 마치고 성균관대 철학과로 편입했습니다.
승무원을 계속하고 싶었는데 허리 디스크가 터졌어요.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야 했는데 어릴 때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게 떠오르더라고요. 강사가 되려면 학위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죠. 브랜드나 매너에 대한 강의를 하고 싶었는데, 철학과를 선택한 건 잘한 일이었어요. 지금 딸이 대학생인데 철학 수업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권하고 있죠. 승무원 일은 기술적인 측면이 더 강했어요. 철학 수업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우리 사회가 만들어진 데 철학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이미지 컨설팅 회사 '예라고’ 창업에도 도움을 줬나요.
‘뭐든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도움을 줬죠. 철학 이론은 같은 현상을 다르게 판단하고 그 다른 판단을 깊이 고민하면서 나오는 거잖아요. 사업하면서도 내가 하는 일은 나만의 철학을 담을 수 있어야 하고 고민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창업을 선택한 이유가 뭔가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창업밖에 길이 없더라고요. 당시는 학교도 다니고 있었고, 기혼자로 회사에 다시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었어요. 5명의 승무원이 뜻을 모았죠.
반응이 바로 왔나요.
아니죠(웃음). 처음 시작할 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이 뭉쳤으니 서비스업계는 꽉 잡겠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죠. 하루 100군데 넘는 곳에서 영업을 했어요. 6개월이 지나서야 수백만 원을 처음 벌었는데 정말 행복했습니다.
여성 창업자가 드문 시대였습니다.
얕잡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진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여성이기도 했지만 저는 전문대 출신이기도 하잖아요. 그래도 무시나 차별에 집중하기보다는 "이것들, 두고 보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얕잡아보는 게 싫어서 목소리도 더 크게 하고 자세도 꼿꼿하게 했던 기억이 납니다. 누구나 취약한 점은 있잖아요. 상처만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이겨냈습니다.
주위의 평가에 굴하지 않는 편인가요.
그럴 이유가 없죠. 모두에게 놓인 장애물은 다 있어요. 저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걸 좋아해요. 집이 못 산다고, 학벌이 안 좋다고 스스로 감옥을 만들고 기죽을 필요는 없어요.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그걸 채워나가면 되죠.
"만들어낸 가짜 이미지는 들킨다"
이미지 컨설팅 사업은 잘될 거라고 확신했나요.
당시엔 사람들이 이미지에 대한 중요성을 몰랐지만 점차 달라질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이 업계에선 1.5세대쯤 될 겁니다. 사실 모든 게 브랜드와 이미지입니다. 지금 한국이 전 세계에서 오고 싶어 하는 나라가 된 것도 K-팝과 K-드라마 덕분이잖아요. 이미지는 ABC로 만들어진다고들 해요. Appearance(외양), Behavior(행동), Communication(소통)이죠. 하지만 결국은 내면의 철학입니다. 겉모습만 바꾼다고 이미지가 달라지진 않아요. 사람들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다 알거든요. 첫인상은 분명 중요하지만 없는 걸 만들어내려고 하면 결국 들키게 됩니다. 제가 했던 일도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내면 어딘가에 있는 걸 발굴해서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것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나요.
우선 나와 대화해야 합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야 해요. 그래야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정할 수 있죠. 저는 이미지, 그중에서도 PI 업계에서 1위를 해야겠다고 목표를 정했어요. 그다음 어떤 선택을 할지가 결정됩니다.
이미지를 잘 구축하려고 할 때 피해야 하는 건 뭔가요.
단점을 먼저 고치려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시간에 강점을 부각하는 게 중요해요. 가령 면접 준비를 한다고 해보죠. 평소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 단기간에 말을 잘하게 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걸 고치려고 힘을 투자하면 오히려 시간 낭비죠. 장점을 찾고 자신감을 갖는 게 먼저입니다. 또 단점을 고치려다가 사람의 색깔이 옅어질 수 있어요. 또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기죽는 겁니다.
기가 죽지 않는 건 타고난 성격 아닌가요.
지금이야 제가 국회의원이지만 20년 전엔 그렇지 않았잖아요(웃음). 기가 안 죽을 수가 없죠. 엄청 힘든 시간을 보냈고 그걸 지나오니 결국 자신감 하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기가 잘하는 거에 집중하다 보면 작은 성공을 거둘 수 있거든요. 그러면 자신감이 생기게 돼 있어요. 단점에 집중하다 보면 오히려 지체됩니다.
요즘 말로 '일잘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일 잘하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아니지만 31년 차 사회인으로서 가진 원칙은 있어요. 우선 주인 의식이 필요해요.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욕심이 생기고 디테일을 고민하게 됩니다. 물론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겠지만 성취감도 커요.
"월급은 같은데 왜 내 일처럼 해야 하냐" 반문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럼 그 월급만 받으면 됩니다. 주인 의식 없이 성공한 사람은 없어요. 플러스알파를 고민해야 합니다. 보통은 조직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데 지시받은 영역 안에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어요. 사실 보고받는 상사 입장에서도 뾰족한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고민의 흔적은 상사에게 큰 도움이 되죠. 회사에서 '일잘러’ 소리를 듣고 싶다면 이를 추천합니다.
"‘이준석계’ 족쇄? 항상 좋은 게 좋은 건 아니다"
정치 입문 제안을 많이 거절했다고요.
제 일을 못 하게 되니까요. 저는 행복 지수가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정치를 시작하면 많은 걸 내려놓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입당을 결정한 이유가 있나요.
당시 보수는 낡은 거라는 이미지가 있었죠. 지지율도 지금보다 낮았습니다. 제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보수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싶었죠. 또 조국 사태를 보며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가 무너졌다고 느꼈어요. 저는 바닥부터 제 실력으로 성장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사업하면서 공정과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조국 사태로 그게 망가졌다는 걸 안 거죠. 부모가 누구인지, 어떤 성별인지, 어디서 태어났는지 상관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드는 게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간의 의정 생활에 점수를 준다면요.
스스로 점수를 매기는 건 염치없는 일 같아요. 다만 이제 청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단계를 넘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천아용인’ 멤버 중 한 분으로 3월 전당대회를 치렀습니다.
너무 재밌었어요. 비교적 젊은 정치인과 활동하다 보니 많은 분이 저도 청년인 줄 알더라고요. 물론 최고위원 당선까지 이어지면 좋았겠지만요. 사실 전당대회 중반쯤에는 제가 당선되지 못할 걸 알았어요. 하지만 열심히 뛰었습니다. 개혁 세력으로, 새로운 보수가 살아 있다는 걸 당원들이나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죠. 정치는 하는 사람도 즐겁고, 함께해주는 분들도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준석계’로 분류되는 게 족쇄로 작용하지 않나요.
노자 철학에도 이런 내용이 있어요. '좋은 게 늘 좋은 게 아니고 나쁜 게 늘 나쁜 게 아니다.’ 그 족쇄가 어쩌면 나중에 저에게 아주 큰 강점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치인의 삶은 계속되나요.
저는 보통 후회를 잘 안 해요.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이 결정을 후회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말로 그만둘 생각도 했었어요. 저는 제 일을 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어요. 당의 꼰대 이미지를 바꾸고 새로운 보수의 이미지를 만드는 거였죠. 그런데 기득권과 싸워야 하는 상황에만 놓이게 되니 이걸 이겨낼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오히려 이 전 대표가 물러나는 과정을 보면서 정치를 계속 해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졌어요. 당 혁신과 미래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구나. 또 계란으로 바위 쳐보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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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동아일보DB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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