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ANO'S REVIEW
서울문화사 2023. 7. 2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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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스럽고 화려한 것에 얽매이지 않고, 본질과 탐구에 충실했던 밀라노 패션위크.
발렌티노가 재정의한 남성상
네 남자가 느끼는 삶의 고통과 공포, 그리고 사랑과 회복의 이야기가 담긴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는 발렌티노의 새로운 컬렉션에 깊숙이 스며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에르파올로 피촐리는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아 구시대적이고 고리타분한 남성상을 새롭게 정의한다. 순백의 수트를 시작으로 깊게 파인 V넥 셔츠, 스커트 수트 등으로 부드럽고 우아하게 완성했으며, 셔츠와 재킷, 코트 등에 꽃을 골고루 수놓아 남자들의 섬세한 감수성을 표현했다. 또한 <리틀 라이프>의 구절을 그대로 프린트해 문학에서 출발한 컬렉션의 내러티브를 이어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전통적인 남성성에 반기를 든 발렌티노의 고상한 도발이자 낭만적인 도전은 밀라노 패션위크의 막을 열기에 충분했다.
에트로식 스타일
확실한 건 마르코 드 빈센초가 에트로에 합류한 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 여전히 페이즐리 패턴, 실크와 자카르 소재 등 에트로의 유산이 넘쳐나지만 이 고풍스러운 재료들을 젊고 쿨한 룩으로 표현할 줄 아는 그의 감각적 재능을 높이 산다. 마르코는 고향을 방문하던 중, 체사레 리파(Cesare Ripa)가 쓴 서적 <아이코놀로지(Iconology)>의 사본을 발견하고. 17세기의 미덕, 자질, 부도덕 등이 묘사된 우화적 이미지를 현재의 것들로 형상화했다고. 왠지 실제로 당시의 창고에서 꺼내왔을 것 같은 두꺼운 담요는 그 모습 그대로 코트가 되었다. 또 실크 소재 풋볼 티셔츠, 낙낙한 버뮤다팬츠, 퍼지한 슬리브리스와 점퍼, 점프수트, 가죽 블루종 등 젊고 웨어러블한 스타일이 가득했던 컬렉션 전반엔 소원(Augurio Buono), 아름다움(Bellezza), 영원(Eternità ), 정욕(Lussuria), 강인함(Tenacità)을 상징하는 고전적 이미지를 적용했다. 버뮤다팬츠에 매치한 고운 양말과 왈라비 슈즈, 조개 목걸이, 스카프를 엮은 체인 목걸이 등 포인트가 되는 액세서리까지, 모든 요소가 결코 과하지 않으면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적절한 균형을 이뤘다. 요란하고 화려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스타일리시했다.
돌체앤가바나의 DNA
실크 크레이프가 재봉틀에 말려 들어가는 모습에서 착안했다는 풍성한 주름이 모델의 탄탄한 몸을 타이트하게 감고 늘어지는 아이보리색 톱은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상처럼 신성해 보였다. 그 고혹적인 톱을 큼직한 포켓이 달린 워싱 카고 팬츠와 매치한 것도 좋았다. 가녀린 화이트를 시작으로 이어진 샌드 베이지, 스톤 그레이, 시칠리아 블랙 등의 차분한 색채들. 순결한 면 소재의 클래식한 탱크톱, 언더웨어, 그리고 부드럽게 감기는 니트웨어, 실제 양말처럼 붙는 삭스 슈즈 등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 엠브로이더리 실크 오간자, 꽃 자수와 꽃 브로치 장식이 가득한 셔츠, 유려한 실루엣의 더블브레스트 더블 더치스 수트 등은 우아함의 정수였다. 이번 컬렉션의 테마는 이탈리아어로 스타일을 뜻하는 ‘스틸레(Stile)’. 자신들의 근원으로 돌아가 다시금 강조하는 돌체앤가바나의 아이코닉한 DNA는 오히려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었다.
프라다의 해방 일지
사방을 메탈로 꾸민 폰다치오네 프라다의 데포지토 천장에서 연두색 슬라임이 폭포처럼 흐르던 순간, 프라다의 해방 일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누구든 옷장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그리고 주로 격식을 차릴 때 입는 곧고 직선적인 셔츠가 수트, 레인코트, 리포터 재킷 등의 유연한 실루엣으로 재탄생한 것. 찰랑이는 프린지와 섬세한 코르사주를 더해 정적인 옷에 장식적인 요소와 움직임을 더한 것도 눈에 띄었다. 셔츠가 지닌 관습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전형적인 테일러링을 벗어던진 이번 컬렉션의 곳곳에는 신체의 자유를 탐구하고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여성이 주로 착용하는 헤어밴드를 활용한 스타일링이 돋보였는데, 이 또한 성별의 경계를 허문 해방의 전조가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빨강과 파랑으로 선보인 리포터 재킷이 투쟁 조끼라는 밈으로 번진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지도.
ZOOOM IN
Editor : 최태경, 이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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