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장벽 옆에 선보인 DMZ 철조망…"장벽 언젠간 무너져"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어머, 진짜 철조망인줄 알았는데…"
2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장벽기념관 인근을 거닐던 관광객 세실리아와 후앙호는 장벽 옆에 나란히 설치된 한국 비무장지대(DMZ) 휴전선의 철조망을 재연한 차주만 작가의 작품이 고무로 된 것을 알아차리자 철조망을 이리저리 잡아당겨 늘려보면서 감탄했다.
아르헨티나에서 4박5일간 베를린 장벽을 보러 왔다는 이들은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도 이민자들을 막기 위한 장벽이 세워졌다"면서 "장벽은 사라져야 마땅한데 국가는 장벽을 세우고, 사람들은 장벽을 넘다가 죽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1.4km 구간에 걸쳐 베를린 장벽의 흔적이 보존된 베르나우어가에는 42m에 걸쳐 차 작가의 작품 '믿음만 있으면 건널 수 있다'가 설치됐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분단된 한국과 통일된 독일 간 역사적 유사성을 부각하기 위해서다. "예술을 통해 경계선이 극복될 수 있느냐"는 질문과 함께다.
베르나우어가는 베를린 장벽 구간 중에서도 거리 자체가 동서독을 가르는 경계가 됐기에 특별히 슬프고 기가 막힌 사연이 많았던 곳이다. 이 거리의 베를린 장벽에 면한 집은 동독, 그 아래 보도블록은 서독으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차 작가는 연합뉴스에 "한반도에 물리적 장벽이 있지만, 평화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남과 북이 서로 믿음을 갖고 계속 접촉하고 만나고, 시도해야 한다는 취지"라면서 "우리 자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은 많은 관람객이 역사를 배우러 오는 현장이기 때문에 한반도를 상징하는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많이 각인되고 생각하게끔 해서 우리를 좀 더 지지하고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가 성사된 배경에는 베를린장벽의 역사를 알리는 베를린장벽재단의 측면지지가 있었다.
악셀 클라우스마이어 독일 베를린장벽재단 이사장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분단의 역사가 있는 베를린, 내지 독일에서 한국의 분단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전 70주년을 맞는 한국전쟁은 독일에 직접적 영향을 줬고, 대리전쟁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역사와 대결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클라우스마이어 이사장은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는 더는 장벽이 없다"면서 "그 어떤 장벽도 영원한 것은 없다. 만리장성도 기능을 잃었다. 모든 장벽은 무너진다. 이는 DMZ 철조망에도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은 희망을 상징하는 장소인 만큼, 냉전 시대 마지막 경계선인 남북 간 장벽도 무너지기를 바란다"면서 "북한과 같은 독재도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장소는 말해주고 있지만, 장벽이 무너지면, 수만가지 문제가 발생한다는 게 독일이 겪은 교훈"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옛 동서독 사이에도 초기에는 DMZ에 설치된 철조망 같은 철조망이 설치됐었다고 설명했다. 베를린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베를린을 벗어난 동서독 간 경계에 주로 철조망이 설치됐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차 작가의 작품은 이곳을 비롯해 동서독 간 장벽이 가로질렀던 포츠담 바벨스베르크성에 30m, 포츠담 쿤스트라움에 10m가 각각 설치됐다.
차 작가의 작품 외에 내달 27일까지 열리는 포츠담 쿤스트라움의 '유토피아·평화전(展)'(UTOPIA·PEACE)에는 이건용, 이승택, 에이미 J.클레멘트 등 한국과 독일, 미국 작가 18명이 한반도 분단에 관한 시각과 경험을 표현한 작품을 전시했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프레데릭 크라우케 작가 겸 큐레이터와 함께 이번 프로젝트를 조직한 정선경 한독문화예술교류협회 대표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은 한반도의 분단으로부터 출발해 독일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시선들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면서 "1년 반의 준비기간 끝에 힘들게 성사됐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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