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이 잠시 머무는 공항과 극지는 닮았다…인천공항서 극지 예술 전시

박건희 기자 2023. 7. 27.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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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지연구소, 11월 30일까지 예술가 7명 작품 공개
극지 속 과학을 예술의 시선으로 풀어낸 전시가 26일 열렸다. 극지연구소 제공 

극지에서 온 예술이 한국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남극과 북극을 방문한 7명의 예술가가 그동안 한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작품 7점을 공개한다. 

극지연구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천국제공항공사가 합동으로 주최하는 극지 주제 전시회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이 26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열린다. 전시회가 시작되는 26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전시장을 직접 찾아 전시회의 의미와 작품의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전시 장소는 다름 아닌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전시의 큐레이팅을 담당한 김효정 큐레이터는 "공항과 극지는 많이 닮아있다"라고 말했다. 둘 다 '특정한 국적이 없는' 공간인데다 '특정한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또 두 공간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 떠날 뿐, 이곳에 영구히 체류할 수 없다. 극지에 관한 작품들을 공항 터미널에 전시한 이유다.

전시에는 극지연구소가 2011년부터 추진해온 '극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김승영, 조광희, 손광주, 김세진, 염지혜, 이정화, 홍기원 작가가 참여했다. 각각의 작품엔 아름다운 풍경 뿐만 아니라, 극지라는 험난한 환경에 뛰어들어 극지를 아주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여름을 보낸 예술가들의 경험이 녹아있다. 

김승영 '플래그(flag)' 극지연구소 제공

김승영 작가는 2011년 '노마딕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방문했다. 어떻게 남극을 방문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그는 "한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며 "완전히 다른 공간에 갑자기 던져졌을 때의 경험과 느낌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번역하고자 했다"라고 답했다. 

그가 2015년 완성한 이 작품의 이름은 '플래그(flag·깃발)'이다. 푸른 조명으로 가득찬 사각형 공간 안에 마치 하얀 남극 대륙이 펼쳐져 있고, 눈밭의 끝자락엔 작은 빨간 깃발 하나가 바람에 나부낀다. 김 작가는 "남극에서 목격한 백야의 풍경을 묘사했다"라며 "남극에선 크레바스가 있는 지점을 표시하기 위해 빨간 깃발을 꽂아둔다"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인생 처음으로 자연이 가진 거대한 힘을 실감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며 "남극에 도착했는데, 바다고 하늘이고 온통 잿빛이라 마치 모든 자연이 하나가 된 것 같았다"라며 "어느 순간 나도 그 자연의 일부가 됐으며, 내가 자연앞에선 한없이 작은 존재라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졌다"라고 말했다.  

(왼쪽) 조광희 '아름다운 소멸' (가운데) 염지혜 '검은 태양' (오른쪽) 김세진 '2048'. 극지연구소 제공

조광희 작가는 미디어아트 '아름다운 소멸'을 소개했다. 조 작가 역시 2011년 노마딕 프로그램을 통해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방문해 약 한달간 머물렀다. 

그는 사람 크기만한 빙산들이 여름을 맞아 기온이 오르면서 집단으로 녹고 있는 모습을 스크린에 담았다. 얼음덩어리가 녹으며 생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 안의 결정이 '톡', '톡' 터지는 소리 등이 마치 실제 남극에 와 있는 것처럼 전시 공간을 생생하게 메운다. 

"아파트 10층만한 높이의 거대한 빙산이 하루만에 녹아내리는 광경도 목격했다"는 조 작가는 자연스럽게 '남극이 이대로 소멸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거대한 얼음이 녹아내리는 모습은 일견 아름답지만, 사실 이는 빙산이 소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작품명이 '아름다운 소멸'인 이유다. 

인천공항을 들른 여행객들의 시선이 전시 작품에 머문다. 극지연구소 제공

"과학은 우리가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려준다." 작품을 만든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한 홍기원 작가의 대답이다. 그는 2022년 한국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에 승선해 약 한달 동안 아라온호의 과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그가 출품한 영상 작품의 제목 '마음을 담아라'는 사실 그가 한 과학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기대로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아라온호에 오른 그에게 한 과학자가 "모든 걸 카메라에 담겠다는 욕심은 버리라"며 "대신 자연을 마음에 가득 담고 가라"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 과학자의 말대로 있는 그대로의 극지를 느끼고 돌아왔다.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각 10~14분 분량의 영상 3개를 통해 그는 "과학과 예술의 접점을 찾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각자의 연구 결과를 서로 낱낱이 공유하며 함께 탐구하는 과학자들의 모습이 감명깊었다"며 "과학자와 예술가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며, 불확실성을 연구한다는 점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남극/북극 출발 → 인천공항 도착' 전시에는 남극과 북극의 면면을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해석한 총 7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4개월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 내 전시공간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박건희 기자 wiss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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