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 여보, 나 죽으러 가네' 비 오는 밤 11시, 등산화를 신다

윤성중 2023. 7. 27.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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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 러닝 훈련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밤, 산이 나를 불렀다. 그림=윤성중 기자

나는 1년에 딱 하루 운동 선수가 되기로 했다.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하기로 한 것이다. 트레일러닝 선수가 되려면 운동을 좀 해야 한다. 달리기 업계 말로 '마일리지' 좀 쌓아야 한다. 마일리지를 쌓는 방법은 산에서 혹은 일반도로에서 많이 달리는 것이다. 하루에 대략 10km씩 달려 한 달에 최소 누적 거리 100km쯤 쌓고, 이런 방식으로 세 달 훈련하면 그럭저럭 선수로서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대회에 나가 기권할 확률을 낮출 수 있다).

나는 올해 초 6월에 거제도에서 열리는 '거제100K' 50km 종목에 접수했다. 그리고 나서 약 석 달 전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돌입했다'고 썼지만 바빠서, 게을러서 마일리지를 많이 쌓진 못했다. 마일리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회 참가 일주일 전 주말을 맞았다.

짧은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마일리지를 쌓으려면 LSDLong Slow Distance(20km 이상 긴 거리를 느리게 달리는 훈련 방법)를 해야 한다. 즉, 대회에 나가기 전, 산에서 꽤 먼 거리를 진이 빠지게 달려야 별 무리 없이 대회를 마칠 수 있다.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능선을 종주하면서 LSD 훈련을 하자고 계획했다. 하지만 거리 약 42km에 이르는 불수사도북 종주는 꽤 부담스러운 일. 매번 나 자신과 타협하면서 망설였다.

이런 식이었다. 우선 아침에 눈을 뜨면 새 기분으로 다짐했다. '그래, 바로 오늘이야! 오늘 불수사도북을 하자!'고 마음먹었다가 1시간 뒤 '아, 오늘은 무리야. 내일 하자.' 10분 뒤 또 '아니야, 오늘 할 수 있어. 지금 더우니까 저녁에 출발하는 거야.' 저녁이 되면 또 '아니야, 오늘은 도저히 무리야.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서 시도하자.' 그야말로 머릿속은 연필로 쓴 계획표였다.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반복하면서 마음은 너덜너덜해졌다. 그렇게 거의 한 달을 흘려 보냈다.

한 달 후, 그날은 낌새가 이상했다. 바깥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냥 비가 아니라 소나기였다. 열린 창문으로 짙은 숲 냄새가 들어왔다. 그 냄새가 나를 쿡쿡 찔렀다. 산이 부르는 것 같았다.

"답답하네, 도대체 언제 올 거야. 빨리 뛰어 나와!"

나는 트레일러닝화를 신고, 바람막이를 입고, 트레일 베스트를 착용하고, 헤드랜턴을 머리에 뒤집어 썼다.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시간은 밤 11시. 불암산, 수락산, 사패산을 거쳐 최소한 도봉산까지 가보자고 결심했다. 종주를 마치는 시간은 다음날 아침 7시나 8시로 잡았다. 산이 잡아 끄는 방향으로 나는 발길을 옮겼다.

출발하면서 산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에 젖은 바윗길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절벽 아래로 떨어지거나, 깜깜한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저체온증에 걸리거나, 달리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꼼짝 못 하고 조난을 당하거나.

일본의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해외 원정기를 엮은 책 <아내여, 나는 죽으러 간다>가 생각났다. 원정지에서 그가 아내에게 쓴 편지 내용은 절절하다. 책 서문에 이렇게 쓰여 있다.

'당신의 수명을 여지없이 단축시키고, 결혼하고 나서 줄곧 마음 고생만 시키고 있는데, 무엇으로 당신에게 진 이 많은 빚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여행하는 도중에도 문득문득 떠올리곤 하오.'

나오미는 바보라고 나는 여러 사람에게 떠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심기를 거스르고 혼자 원정을 떠나다니! 당시 우에무라 나오미의 상황과 이날 나의 입장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였지만 심적으론 그와 유사하다고 나는 속으로 우겼다. 그러면서 우에무라 나오미에게 바보라고 욕한 것에 대한 용서를 구했고, 쿨쿨 자고 있는 아내를 떠올리며 중얼댔다.

'아내여, 나는 죽으러 간다.'

우거진 나무들 덕분에 몸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양이 생각보다 적었다. 이 정도면 죽지는 않겠구나! 하면서 나는 불암산 정상을 향해 달렸다. 산길엔 안개가 가득했다. 헤드랜턴을 켰어도 눈에 보이는 구간은 눈앞 1m 정도에 불과했다. 그래도 무섭진 않았다. 무서운 건 나무뿌리와 돌부리뿐이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발 앞을 살폈다. 집에서 나와 1시간 20분 만에 불암산 정상에 섰다. 아무도 없었다. 빗방울이 두두두두 몸을 때렸다. 그대로 몇 분 더 있다간 정상석처럼 몸이 땅에 박힐 것 같아 수락산 방향으로 도망쳤다. 안개가 능선을 덮었다가 걷었다가 했다. 그래도 캄캄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안개가 걷히면 앞이 더 잘 보였다. 덕릉고개를 넘어 수락산 오르막에 접어들었다. 물 웅덩이에 발을 마음껏 담갔다. 등산로가 계곡으로 변했다. 물줄기가 콸콸 흘러 발을 적셨다. 그래도 나는 계속 올라갔다. 짐승처럼 네 발로 기었다가 서서 비틀댔다. 한참 만에 오르막에서 벗어나 정상부 능선에 섰다. 길이 넓어졌다. 하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안개가 꽉 찼기 때문이다.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헤드랜턴을 비춰도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겨우 쇠난간을 발견했는데, 그것을 따라가니 내리막 계단이 나왔다.

나는 비가 퍼붓는 산길 위에서 아내를 찾았다. 그림=윤성중 기자

'어,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시 올라갔다. 올라갔다가 길을 못 찾아 다시 계단으로 내려갔다.

'하아, 아무래도 여긴 아닌 것 같은데.'

다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 끝에 있는 바위로 올라갔다. 길은 보이지 않고 절벽뿐이었다. 다시 내려갔다. 집으로 다시 돌아갈까? 멈춰 서서 고민했다. 나는 여기에 왜 왔는가? 잠깐 후회했다.

나는 서서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필사적인 이유를 분석했다. 이건 일종의 신분상승에 관한 욕구다. 애써서 훈련한 다음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었다. 좋은 성적을 내면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와!" 박수칠 것이다. 트레일러너로서 등급이 올라갈 것이다. 등급이 올라가면 친구들은 나를 다르게 대할 것이다(여전히 그러지 않을 친구들 얼굴이 몇몇 떠오르지만).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계단을 밟아 올라가 꼭대기 층의 1등 트레일러너 자리에 앉게 된다면, 음, 그건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내 기준으로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게 지금보다 더 나아진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1등 트레일러너가 된다고 권력이나 돈이 생기지는 않을 텐데, 나는 그저 강한 사람들 틈에 끼어 강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 강하다고 인정받는다면 나는 스스로도 강하다고 인정할 것이다. 이 자부심은 나를 거제100K보다 더 험한 곳에 도전할 용기를 줄 것이고, 결국 도전에 나서 이전보다 비교적 쉽게 성취감을 얻을 것이다. 내친김에 나는 세상 구석구석을 살펴볼 것이다. 금의환향한 나에게 사람들은 이것저것 물어볼 것이고, 나의 머릿속은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 찰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언젠가 모두 책으로 나와 보물처럼 도서관에 보관될 것이다. 오래토록. 아, 나는 궁극적으로 우에무라 나오미가 되고 싶은 건가? 아내여, 정말 미안하다.

나는 서서 울 뻔했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아내를 보려면 앞으로 계속 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다시 두리번댔다. 그러다가 바위틈에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이것이 왜 이제야 나타난 건가? 화풀이할 대상이 없어 계단을 쿵쿵 밝으면 올라갔다. 수락산 정상이었다.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다. 나는 재빨리 나무가 우거진 능선으로 도망쳤다. 기차바위는 폐쇄됐다. 오른쪽에 우회로가 있었다. 길 같지 않은 샛길을 따라 갔다. 캄캄한 곳에서 도정봉으로 가는 등산로까지 무사히 왔다. 속도를 냈다. 쉬지 않고 오르막을 기었다. 도정봉에 도착했다. 수락산이 끝나는 동막골초소까지 2km 남았다. 하늘이 점점 밝아졌다. 빗줄기가 약해졌다. 꽤에엑! 멧돼지처럼 달렸다. 새벽 6시 동막골 초소에 도착했다. 계곡이 강으로 변해 있었다. 다 젖었는데 뭔 상관이야. 허벅지까지 차오른 물을 헤치고 아파트 단지로 나왔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계속 갈 것인가?'

사패산을 향해 걸으면서 생각했다. 편의점에 잠깐 들렀다. 김밥과 라면으로 배를 채우고 또 생각했다.

'계속 갈 것인가?'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그칠 기미가 없었다. 추워서 몸이 떨렸다. 사패산으로 간다면 진짜 죽을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엉덩이 아래로 물이 줄줄 떨어졌는데, 모른척하고 전철을 탔다. 사람들이 나를 피했다. 집에 돌아와 옷을 벗고 씻고 살금살금 소파로 가서 누웠다. 아내는 내가 밤새 어디서 뭘 했는지 모를 것이다.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다. 나는 잠이 들었다.

그림=윤성중 기자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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