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성찰은 없고 “일본은 최선 다했다” 말하는 ‘더 데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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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뭔가를 잘못했던 걸까,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넷플릭스 일본드라마 '더 데이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을 진두지휘한 요시다 소장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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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끝나지 않은 재앙]
“우리는 뭔가를 잘못했던 걸까,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을까.”
넷플릭스 일본드라마 ‘더 데이스’는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장을 진두지휘한 요시다 소장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드라마는 8부작이라는 긴 시간 동안 그날을 되짚으며, 어찌 됐든 일본은 최선을 다했다고 결론짓는다. 드라마 내내 흐르는 이런 기조는 ‘더 데이스’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지난 20일 한국에 공개된 ‘더 데이스’는 원자력발전소 현장 인력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에 집중하며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본질적 문제에는 눈감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관료들은 우왕좌왕했지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큰 사고를 막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뤄서다. 사고 당일 비번인 직원도, 피난을 갔던 협력업체 직원도 “후쿠시마에 내 가족이 있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발전소에 돌아와 기꺼이 목숨을 건다. 한국 시청자 호평 중에도 현장 인력의 노력이 감동적이었다는 내용이 많다. 원전 사고를 다룬 미국드라마 ‘체르노빌’ 역시 현장에서 헌신한 이들이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다.
문제는 요시다 소장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영웅주의적 서사가 후쿠시마 원전 참사의 본질을 가리는 데 활용됐다는 점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더 데이스’에는 원자력에 관한 성찰보다 재난서사 장르 문법을 빌려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면서 핵 방사능의 공포를 자연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연민으로 전이시키는 서사 전략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본 온라인 매체 ‘제이비(JB) 프레스’도 “‘더 데이스’는 사고의 원인을 입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요시다의 또 다른 모습을 언급하지 않고는 원전 사고의 진상을 드러내어 밝히기는 어렵다”고 짚었다.
이 드라마는 요시다의 증언을 담은 ‘요시다 조서’와 도쿄전력이 정리한 ‘후쿠시마 원자력 사고 조사 보고서’, 저널리스트 가도타 류쇼가 현장 관계자 90여명을 인터뷰한 책 ‘죽음의 문턱을 본 남자’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이후 수년이 지나 요시다가 지진해일(쓰나미) 대책이 논의될 때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의 문제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체르노빌’과 달리 ‘더 데이스’는 자국의 문제를 스스로 다룬 드라마인 만큼 밝혀지지 않은 사실을 담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취재를 통해 더 많은 사실들이 드러나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들을 반박하는 듯한 내용도 담겨 있다. 매뉴얼 대로만 움직이는 일본 특유의 문화나 정부가 해수 투입을 지연시킨 점 등에 대한 것들이다. 이 드라마에서 요시다 소장은 ‘벤트’(환기)를 시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세계 최초로 벤트를 했어. 해수 주입도 세계 최초야. 매뉴얼은 없어. 우리의 판단으로 하는 거야.” 총리와 관료들의 대사를 통해 당시 언론 보도가 억측을 끼워맞춘 가짜뉴스라는 장면도 나온다.
일본 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후쿠시마 원전 관련 드라마가 나온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아베 정부의 비리를 다룬 영화 ‘신문기자’를 2019년 만든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도 라디오 홍보조차 거절당하는 등 여러 제약과 압력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더 데이스’에서 주연을 맡은 야쿠쇼 고지는 지난 5일 일본 외신기자클럽과의 인터뷰에서 “지상파였다면 드라마 내용이 100%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며 “이 드라마를 보고 더 많은 사람이 에너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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