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박정민 "다양한 역할? 시키는 대로 하니까요"
허술한 악역으로 코미디 담당해
류승완 감독 디테일한 디렉팅에
"긴장 못 늦춰…시키는 대로 연기"
[서울=뉴시스]추승현 기자 = 배우 박정민(36)은 '연기 천재'라는 별명을 달고 살지만 겸손하다. 툭툭 내뱉는 말에 칭찬에 들뜨기보다 자신만의 평정심을 지키려 하는 속내가 비친다. 실수는 과감하게 인정하고 듣고 보고 배우려고 하는 자세도 보인다. 영화 '밀수'의 장도리가 그의 그런 마음가짐에서 탄생한 캐릭터다.
장도리는 가상의 바닷가 마을 군천에서 해녀 누나들을 보필하던 막내였다가 밀수 중간책을 꿰차는 야망가다. 한껏 찐 살은 덕지덕지 붙은 욕심 같고, 자신을 보살펴주던 진숙(염정아)을 비롯한 해녀들을 대하는 태도는 배은망덕하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만 없는 건 영민하지 못한 그의 허술함 때문이다.
"장도리는 순전히 자신의 이득에만 눈이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눈이 멀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못된 행동을 하는 거고요. 악하게 연기해야 한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어요."
욕심이 앞선 장도리는 의도치 않게 코믹한 상황의 주인공이 되고는 한다. 본인은 카리스마 있다고 생각하면서 돌려차기를 하지만, 휘청이는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이 터진다. 자존심을 부리다가도 강자 앞에서 꼬리 내리는 모습도 그렇다. 반면 박정민은 "장도리가 웃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웃겼다면 다행이지만 상황마다 감정의 폭을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태도의 다양함을 생각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치닫는 감정들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장도리가 매력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건 류승완 감독의 철저한 디렉팅이 더해져서다. 류 감독은 장도리의 말투, 행동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정해 줬다.
"인물이 단단하게 보이기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향이 있잖아요. 그게 어느 방향인지 알 수 없는 거니 하나 하나 정해준 거예요. '네가 못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잘 알아서 주문하는 거다. 잘 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똑같이 디테일한 디렉팅을 받지만 수월했던 옥분 역의 고민시는 박정민의 부러움 대상이었다. 박정민은 "민시가 현장에서 부러웠다. 민시는 뭐 하면 감독님이 다 오케이였다"며 "나는 이렇게 저렇게 더 해보자였다. '쟤는 왜 이렇게 천재지?'라고 부러워했다"고 했다. 잘 해보고 싶은 마음에 생긴 귀여운 질투다.
그럼에도 류 감독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감독의 그림을 신뢰해서다.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면서 귀감이 되는 류 감독의 에너지에 매료됐고, 기분 좋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이 디렉션 해준 것이 제가 준비한 것보다 훨씬 좋았어요. 제가 준비한 것도 해보고 감독님이 이런 걸 더 해보면 좋겠다고 하면, 그때그때 받아먹어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죠."
"물론 캐릭터에 대해 많이 생각한 건 배우일 수 있는데, 대본을 가장 많이 보고 전체 그림을 가장 많이 그리는 건 감독님을 이길 수 없어요. 감독님의 머릿속에 있는 장면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듣고 뭐가 안 되면 그땐 이야기해요. 대체로 감독님들이 시키는 게 맞아요. 시키는 대로 하면 연기가 잘 돼요."
자신만의 방식대로 캐릭터를 이해해야만 연기할 수 있다며 로직(logic)을 강조했던 과거와 사뭇 다르다. 그에게 과거에 밝혔던 연기 방식 발언에 대해 묻자 단박에 "로직은 핑계였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람이 다 로직 할 수 있느냐'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저의 경험이 굉장히 미천하기 때문에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납득한 거죠."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이럴 수도 있다 저럴 수도 있다'라는 게 학습됐어요. 예전보다 조금 더 유연해진 느낌이 들죠. 조금 더 카메라 앞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됐어요."
좀처럼 자신에게 관대하지 않은 박정민은 자신만의 자부심을 하나 꼽아달라고 하자 "편견이 없는 것 같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좋게 말하면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다"며 "말을 잘 듣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트랜스젠더, 서번트증후군, 래퍼 등 누구보다도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왔다. 단지 특이한 역할이어서 선택한 건 아니고 재밌게 할 수 있는 것, 함께하는 사람들을 고려한 것이었다.
"(저에게 다양한 역할을 주는 이유는) 시키는 대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활동한 기간에 비해 '박정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어서일지도 몰라요.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죠.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역할을 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미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세월이 알아서 해주겠죠."
☞공감언론 뉴시스 chuch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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