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숨은영웅] '기억하라 7·27' 명예손녀의 긴 여정…"더는 잊힌 전쟁 아니다"
2008년부터 매년 7·27 기념식…올해는 한국계 美 연방하원의원 4명 등도 명예주최
전세계 30개국·미국 50개주 찾아 1천200명 참전용사에 큰 절…"한국서도 참전용사 기억하길"
(워싱턴=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통일(reunification)로 가기 위해서는 그 전에 기억(remember), 인정(recognition), 화해(reconciliation)라는 3R이 필요합니다"
한국전 참전용사의 '명예 손녀'로 불리는 한국계 한나 김(40)씨는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진행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전과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일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한국전 참전용사로 잘 알려진 찰스 랭걸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수석 보좌관을 지낸 김씨는 보건복지부 공보 담당 부차관보에 이어 백악관 비서실장실 아시아태평양계 정책 고문을 포함해 다양한 직책을 거치며 바이든 행정부에서 일하고 있다.
한나 김씨는 지난 2007년 워싱턴 DC의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처음 방문한 것을 계기로 2008년 개인 자격으로 '리멤버 7·27'이란 단체를 조직, 지금까지 자발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은 평화라고 하면 어렵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지 모르지만, 기억하는 것이 평화를 염원하는 것이다"고 밝혔다.
처음에 '한국전쟁화해연합회'라고 붙였던 이 단체의 이름을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을 기억하자는 의미의 '리멤버 7·27'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화해로 가는 첫 단계가 기억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다.
김씨가 이를 위해 처음 한 일은 7·27 기념식 행사를 만든 것이다. 이 기념식은 2008년 '한국전 참전용사 추모 촛불의 밤'이란 이름으로 처음 개최된 뒤 매년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영 김, 앤디 김 등 한국계 미국 연방하원의원 4명이 명예 공동 주최로 참여하는 가운데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등과 함께 연방 의회 건물인 레이번 빌딩 로비에서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와 함께 김씨는 한국전 정전일인 7월 27일을 미국 연방정부 청사에 국기를 게양하는 기념일로 지정해달라는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안'을 의회에 청원했으며 2009년 해당 법안이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통과되기 전까지 435명의 미국 연방 하원의원 가운데 법안 발의에 참여한 6명을 제외한 429명의 하원의원실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고, 그 결과 법이 통과 됐을 때 "한나 김 덕분"이라는 찬사를 참전용사들로부터 받았다.
김씨는 이 일을 계기로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랭걸 당시 하원의원실에 보좌관으로 합류하며 랭걸 전 의원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전 참전용사이자 친한파인 랭걸 의원이 2017년 1월 은퇴하자 그는 '참전용사 찾아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김씨는 "'리멤버 7·27'을 시작할 때 한국전 참전용사 인정법안 통과와 기념식 개최, 참전용사들의 사연 수집 등 3가지 목표가 있었는데 세 번째는 못 했다"면서 "랭걸 의원이 2015년 은퇴 계획을 밝혔을 때, 더 늦기 전에 이를 나머지를 하기로 결심했다. 참전용사들의 연세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30개국, 미국 50개 주 등을 돌면서 '한국전 참전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한국전 참전용사 1천200여명을 직접 만났다.
김씨는 "제가 일일이 모든 계획을 사전에 세우고 찾아간 게 아니라 페이스북 등에 일정을 올려놓고 '재워주실 분', '차 태워 주실 분', '통역해주실 분' 등을 구하면서 (무작정) 갔다"면서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갔는데 참전용사와 한인회, 주민들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된 것"이라고 돌아봤다.
김씨가 참전용사들을 만나 "여러분 덕분에 한국 국민들이 자유를 만끽하고 있는데 한국 국민들이 다 올 수는 없고 제가 그분들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면서 큰절을 하면 참전용사들은 "죽기 전에 하나 된 한반도를 보고 싶다"고 한결같이 말했다고 한다.
김씨는 "참전용사분들께는 한민족의 감사를 전했고 한국 국민에게는 참전용사들의 염원을 전달하는 메신저가 된 것 같았다"고 밝혔다.
김씨는 방문지 가운데 기억에 남는 곳을 묻자 수리남을 꼽았다.
2018년 영국 웨일스를 방문했을 때 '참전국으로는 마지막 방문지'라고 했더니 한 참전용사가 수리남을 얘기하면서 그 존재를 알게 됐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수리남은 한국전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였기 때문에, 이들의 참전은 네덜란드 소속으로 이뤄졌다.
김씨는 "한국이 일본 식민지였을 때 강제로 전투에 나가면 어떻겠느냐"면서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감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20년 자신이 방문한 한국전 참전 기념비와 그동안 만난 참전용사들의 사진과 인터뷰 등을 정리해 인터넷에 '한국전쟁기념관(koreanwarmemorials.com)' 사이트를 개설했다.
'리멤버 7·27'은 지난해 건립된 '추모의 벽' 모금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 15년간 한국전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체감하는 변화를 묻는 말에 "한국전쟁은 더는 '잊힌 전쟁'이 아니다"라면서 "주변에서 사람들이 7월 27일이 되면 올해는 7·27 행사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이 있었구나'를 넘어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고 더 관심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어 "미국에서는 7·27이 공식적으로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는 날인데 한국은 아직 아니다"라면서 한국에서도 참전용사를 기억하길 희망했다.
또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한국을 두 번째 조국, 한국 사람을 두 번째 가족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를 잊지 않았다"면서 "정말 멀리 계신 분들도 그런데 우리는 (그분들을) 잊고 사는 것 같다"면서 한국 내 더 많은 관심을 당부했다.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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