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가 물에 빠져 죽었다믄 믿겄어요?”…폭우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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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가 물에 빠져 죽었다믄 사람들이 믿겄어요? 오리만 20년 키웠는디, 요런 일은 첨입니다."
"23일 자정쯤이었어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길래 농장에 와봤더니 저 옆 농수로에서 물이 넘쳐 농장으로 흘러들더라고요. 그때까지도 물이 종아리 높이밖에 차지 않아 별 걱정 안 했어요. 암만 그래도 오리가 물에 사는 동물인디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던 거죠."
농장 안은 진흙밭이었고, 살아남은 오리들도 온몸이 흙탕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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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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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가 물에 빠져 죽었다믄 사람들이 믿겄어요? 오리만 20년 키웠는디, 요런 일은 첨입니다.”
25일 전남 무안군 일로읍에서 만난 박성진(47) 태두농장 대표가 오리 사체가 담긴 포대 자루를 가리키며 안타깝게 말했다. 포대 18개에 담긴 오리는 500마리가 넘는다고 했다. 농장에선 2700㎡ 면적의 천막 세동에 오리 1만5천마리를 키웠다. 그런데 지난 23일 밤부터 24일 새벽 사이 폭우가 쏟아져 천막 두동이 침수됐다.
“23일 자정쯤이었어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길래 농장에 와봤더니 저 옆 농수로에서 물이 넘쳐 농장으로 흘러들더라고요. 그때까지도 물이 종아리 높이밖에 차지 않아 별 걱정 안 했어요. 암만 그래도 오리가 물에 사는 동물인디 별일이야 있겠냐 싶었던 거죠.”
다음날 아침 농장에 나온 그의 눈앞에 죽은 오리 수백마리가 천막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그날 새벽 1시부터 2시 사이 무안에는 시간당 40∼57㎜의 폭우가 쏟아졌다. 농장 안은 진흙밭이었고, 살아남은 오리들도 온몸이 흙탕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이날 하루에 수거한 오리 사체만 300마리였는데, 하루가 지나자 500마리를 넘어섰다. “오리가 계속 죽어 나자빠지는디, 어째야 쓰까 어째야 쓰까, 이 말밖에 안 나오드라고요.” 박씨가 긴 한숨을 토해내며 말을 이었다.
죽은 오리들은 대부분 부화한 지 18일 된 새끼들이다. 아직 털갈이를 하지 않아 머리 부분에 노란색 솜털이 남아 있었다. 오리는 부화 후 45일이 되면 출하한다.
박씨는 “살아남은 오리도 면역력이 약해졌는지 발열 증상을 보여 걱정”이라며 “해열제를 먹이고는 있지만, 시름시름 앓는 꼬라지를 보니 모두 죽을 거 같다”고 말했다. 농장 안은 배수로를 새로 팠음에도 여전히 물이 덜 빠진 곳이 있었다. 물이 빠진 땅엔 선풍기를 있는 대로 틀어 습기를 제거하는 중이었다.
“500마리 죽은 우리 농장은 암것도 아니랑게요. 바로 옆 닭농장은 5천마리가 죽어부렀어요.” 박씨가 전하는 인근 양계농가 피해는 더 심각했다.
전라남도는 현재까지 무안에서만 가축 폐사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리농장 2곳에서 2만1800마리, 닭농장 2곳에서 6만2500마리가 죽었다. 범위를 국내 전체로 넓히면 닭과 오리를 합쳐 91만8천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박씨는 “여름 보양식으로 오리와 닭에 대한 수요가 1년 중 가장 많은 시기다. 이때만 바라보고 1년을 준비했는데 너무 힘이 빠진다”고 했다.
김태원 전라남도 축산정책팀장은 “오리는 생후 25일이 지나면 웬만한 폭우 피해는 견디지만 박씨 농장 오리는 너무 어렸고 인근 닭농장도 태어난 지 11일밖에 되지 않은 병아리들이 주로 죽었다”며 “지자체와 협의해 축사 청소, 악취제거제, 소독제와 함께 살아남은 가축을 위해 면역 증강제와 스트레스 완화제 등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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