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똘똘 뭉쳐 에코프로·포스코 끌어올렸지만… ‘배신자’ 나올 때마다 곤두박질
올 한해 주식시장의 특징을 꼽으라면 개인 투자자들이 특정 종목을 집중적으로 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이른바 ‘개미 주도 장세’가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국내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투자 주체는 자금 동원력이 큰 외국인과 기관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개인 자금이 몰리는 종목 주가가 오르고 해당 종목 상승에 힘입어 지수 전체가 움직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상반기 개인이 집중 매수한 에코프로그룹주가 오르면서 코스닥지수를 끌어올린 데 이어 최근에는 포스코그룹주에 개인 자금이 쏠리면서 코스피지수가 오르는 식이다.
개인들은 기관과 외국인을 이겼다며 환호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폭탄 돌리기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은 개인 자금이 계속 유입되면서 주가가 오르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 가면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매도할 시기에 물량을 받아줄 주체가 없다면 주가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개인과 달리 기관, 외국인은 에코프로 관련주의 과열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개인이 끌어올린 주식을 받아줄 투자 주체가 없는 셈이다.
이런 조짐은 26일 확인됐다. 에코프로 주가가 장중 150만원을 훌쩍 넘었다가 개인 투매가 나오면서 다시 120만원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한 증권사 광화문 지점의 큰손 개인이 8000억원을 한꺼번에 팔아 급락 전환했다는 지라시가 돌기도 했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개인 투매에 일시적으로 급락한 것은 사실이다. 기관, 외국인이 받아주지 않는 이상 개인 투자자 중 ‘배신자’가 나올 때마다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입증됐다.
◇ 2차전지 업종만 집중 매수하는 ‘진격의 개미’
올해 한국 주식시장을 주도한 것은 단연 2차전지 업종이다. 연초 11만원이던 에코프로 주가는 1000% 넘게 폭등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됐다.
“에코프로만 답이 아니다”라며 ‘제2의 에코프로’를 찾아 나선 개인 투자자들이 최근 주목한 것은 포스코그룹주다. 포스코가 그룹의 핵심 사업을 철강에서 2차전지 원료·소재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하자 지주사인 POSCO홀딩스뿐 아니라 그룹 계열사 전체에 개인 자금이 쏠렸다. ‘제2의 POSCO홀딩스’로 입소문이 난 LS그룹 주가도 25일부터 26일 오후까지 급등했다. 2차전지와 해상풍력 등 LS그룹이 추진하는 신사업에 대한 정보가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확산된 결과다.
과거 개인의 투자 방향은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 쉽지 않았다. 개인들이 접하는 정보는 제한적이고, 외국인과 기관에 비해 거래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 보니 개인의 투자 성과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 이후 개인의 투자 행태는 크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자금 동원력이 커졌다. 한국은행이 추산한 2020~2022년 기간 가계의 초과저축은 100조~129조원으로 추산된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이 기간, 가계는 늘어난 소득만큼 소비를 늘리지 않는 대신 대출을 상환하고 예금과 주식 등 현금성 자산 보유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특히 올해 ‘에코프로 신드롬’이 이어지자 가계 자금이 대거 주식시장으로 유입됐다.
게다가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빠르게 유통되는 정보가 수많은 개인 투자 자금의 응집력을 높이면서 개미는 외국인, 기관과 경쟁하는 ‘큰 손’이 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1월 2일~7월 25일) 개인은 에코프로를 9257억원어치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1197억원)과 기관(7837억원)은 순매도했다.
POSCO홀딩스의 주가 상승을 주도한 것도 개인 투자자다. POSCO홀딩스 주가는 이달 12일부터 상승세를 보이면서 보름 동안 주가가 두 배 수준으로 올랐는데 이 기간(12~25일) 개인은 2조7555억원 순매수했고, 외국인은 2조7624억원 순매도했다. 포스코퓨처엠이나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함께 급등한 그룹주 역시 외국인과 기관이 순매도하는 사이 개인이 순매수해 주가를 끌어올렸다.
개미들은 잇따라 제기되는 ‘과열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우리가 팔지 않으면 주가는 더 간다” “(에코프로 주가가) 200만원 갈 때까지 보유”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일부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에코프로그룹주에 대해 ‘매도’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주가가 되레 상승하자 개인들은 더 힘을 얻었다.
◇ “주가 끌어올리긴 쉽다… ‘엑시트’가 관건”
그런데 26일 오후, 주식시장 분위기가 급격하게 냉각됐다. 오후 들어 2차전지주 상승세가 꺾이고 코스피·코스닥 지수 하락 폭이 커진 것이다. 에코프로는 이날 오전 중 153만9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오후에 하락 전환해 122만8000원에 마감했다. 전날에 이어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던 포스코, LS그룹주도 일제히 하락했다.
업계는 에코프로가 150만원이라는 상징적인 주가를 기록하면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고, 이것이 증시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날 증시에 영향을 줄 만한 특별한 뉴스가 없었고, 2차전지 관련주를 중심으로 개인 매도세가 지수를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드디어 거품이 꺼졌다”라는 평가와 “단기 조정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일부 종목에 쏠린 개인 자금이 주가를 급등락시키는 상황이 반복되자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 같은 환경에서는 주가를 끌어올리기는 차라리 쉽다”며 “중요한 것은 정말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당장은 개인 자금이 밀물처럼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높은 주가가 지지되고 있지만, 주식을 무한정 보유할 수는 없기 때문에 차익 실현 물량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모든 투자자가 고점에서 주식을 매도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폭탄 돌리기 가능성이 있다. 이 관계자는 “어느 시점에 투매가 나타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기업의 성장성이 높고, 재무 상태가 좋다고 해도 주가가 너무 오른 상태라면 소위 ‘작전주’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증권 전문가는 “작전주의 특징은 주가가 급등한 이후 뒤늦게 들어온 투자자가 주가 하락의 피해를 본다는 것”이라며 “개인 자금이 주가를 급격하게 끌어올린 주식들을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가 높은 가격에 사주지 않는다면 결국 나중에 들어온 개인 투자자가 폭탄을 떠안게 될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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