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고향’… 애끊는 ‘실향’… 애타는 ‘망향’ [정전 70주년 특집기획]
죽는 날까지 ‘북녘땅’ 그리다 눈감아... 市, 조례 제정 ‘망향제’ 등 실향민 보듬기
“부모님은 도망치듯 떠나온 고향을 항상 그리워 하셨습니다.”
인천 중구 율목동에서 사는 박오규씨(81)는 북녘 땅을 그리워한 부모님을 기억하면 마음 한편이 좋지 않다. 박씨의 부모님은 1943년 평안북도 선천에서 박씨를 낳고,1947년 공산당의 습격을 받으면서 살기 위해 남쪽으로 향했다.
이후 박씨의 부모님은 중구 신흥동의 적산가옥에 자리 잡았다. 박씨는 “부모님은 ‘북쪽에서는 내 땅만 밟고 다녔다’고 우스갯 소리를 할 정도로 그리워 했다”며 “부모님 평생의 숙제인 고향에 가보는 것은, 결국 눈을 감으실 때까지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박씨와 그의 부모님은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1·4후퇴 때 열차를 타고 다시 피난길을 떠났다. 박씨는 “열차 안에는 자리가 없어, 열차 지붕에 걸터 앉아서 부산까지 갔다”며 “부모님이 잠에 들어 잠시 날 놓쳐 정말 죽을 뻔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박씨의 부모님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 공무원으로 일을 하면서 박씨를 키웠다.
박씨는 “북녘 땅 중 평양, 개성을 가보긴 했어도 부모님이 나고 자란 선천을 단 1번도 가보지 못한 것이 마음에 응어리로 남았다”고 했다. 이어 “뉴스에서 전쟁이 날 것만 같은 위태로운 남북관계가 이어질 때 마다 그때의 시절이 자꾸만 생각나 마음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국내 정세와 6·25 한국전쟁으로 고향 땅을 등지고 내려온 이북5도민(실향민)들은 인천 현대사를 이끌고 있다. 이들에게 고향은 그리움으로 남은 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터를 짓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다.
26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인천시 이북5도민 관련단체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하고 실향민들을 위한 망향제와 통일안보교육 등을 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시는 이북5도위원회 인천사무소를 통해 해마다 설날과 한식·추석·고향의 날에 고향을 그리워 하는 실향민들의 마음을 담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시는 타 시·도에 있는 실향민과 북한이탈주민의 교류를 이어가면서 미래 통일교육에도 힘쓰고 있다.여기에 시는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졸지에 이북지역으로 묶이면서 고향을 잃은 황해도 실향민들을 위한 ‘황해도민 교류사업’도 하고있다. 이를 통해 시는 황해도 출신 실향민들 간의 만남을 만들고 있다.
특히 시는 오는 9월16~17일 이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평화와 종전을 기원하는 ‘실향민 문화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시는 중구 상상플랫폼 앞 8부두 인근에서 전국 15개 시·도의 실향민들이 함께 문화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다만 시의 현재 조례에는 실향민 실태조사에 대한 의무 조항이 없어,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시는 이산가족 신청을 한 통계로 실향민의 수치를 가늠하고 있다. 인천지역의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수는 2023년 6월 기준 3천230명이고,이는 전국에서 서울·경기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시 관계자는 “실향민들의 이산과 고향을 잃은 마음에 대한 애환을 이해하고, 통일에 대한 교육과 의식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실향민들이 남북교류와 통일에 있어 주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지혜 기자 kjh@kyeonggi.com
이시명 기자 sm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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